미니픽션
♬ 노련하지는 않았어도, 노련할 수 없어서
잎- 장권을 구매하고 마치
새- 삶을 얻은 것처럼, 표를 받을 주소와 새 이름을 적어 넣었다.
에- 들이 돌아올 시간이 가까워졌고
적- 적한 일상을 위로하던 사람을 생각한다.
은- 생이었다. 금생은 아니어도 나쁘지 않았다.
노- 련하지는 않았어도, 노련할 수 없어서
래- 일이 오기 전에 더 노련해져야겠다는 미련이 남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자- 랑할 만한 게 딱히 없어도
우- 울한 감정에 짓눌리지 않아서. 새 이름을 알아채지 못할, 이제는 먼 옛날을 사는
림- 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어서.
√ 새 이름
“새 이름을 적으셨나요?”
매표소의 직원은 나를 보고 웃으며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입장권 뒷면에 적어둔 이름을 내밀었다.
이름은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언젠가 오래도록 간직한 이름 같기도 했다. 익숙하지 않으면서도 익숙한 것 같은 모순적 느낌은 내가 느끼는 것 같지도 않았다.
“새 이름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직원은 표를 받아들며 말했다. 마치 아주 오래된 비밀 규칙을 알려주는 사람처럼.
조금 전까지도 나 자신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던 이름.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이름을 읽으며 나는 짧은 안도감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입구로 들어섰다.
극장 안은 어두웠다. 무대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고,
객석에는 한 사람씩 띄엄띄엄
앉아 있었다.
모두가 나와 같은 표로 들어온 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면 그들 역시 새 이름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내 옆자리에는 흰 셔츠를 입은 중년의 여성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가방을 뒤적이며 말없이
시간을 보내는 듯 보였다.
“무슨 공연인지 아세요?”
내가 물었다. 평소에는 그러지 못하는 내성적 성격임에도 이상하게도 자연스럽게 묻게 되었다. 그만큼 궁금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아무도 몰라요. 다만, 자신이 적은 새 이름이 공연의 일부가 된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 말을 듣고 나는 내 이름을 떠올렸다.
새 이름,
나의 이름.
그 이름은 내가 어릴 적 불리고 싶었던 이름과 닮아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나를 설명하는 이름이 너무 평범해서, 더 특별하고 의미 있는 이름을 상상하곤 했다.
그런데 그 이름이 뭐였는지
떠올리려 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쨌든
그 이름도 잊은 지 오래였다.
그래서 새 이름으로는 끝내 그 이름을 적지 못하고,
비슷하게 느껴지는 이름을 적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이 꺼지고, 무대가 열렸다.
배우들이 등장했다.
신선하게도 그들의 대사 속에는 내가 적은
새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이름은 원래 처음부터 극 중에 포함되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등장인물은 내 이름을 달고 삶을 살고 있었다. 거기서 자연스럽게 인생 이야기가 굴러가고 있었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인생 이야기가
자꾸만 내 삶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눈시울을 붉어졌다.
그것은 내가 미처 이루지 못한 삶, 내가 선택하지 못했던 길, 그리고 내가 놓쳐버린 순간들로 이루어진
낯설지만 익숙한 이야기였다.
극이 끝날 즈음, 나는 깨달았다. 새 이름은 내 과거와 상관없는 이름이 아니라, 오히려 낯선 이름이라서 나를 닮은 이름이었다.
극이 끝나고
관객들은 하나둘
극장을 떠났다. 모두들 새 이름을 지닌 채, 조금은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걸어갔다.
나 역시 나의 새 이름을 간직한 채 극장을 나섰다.
바람이 불었다. 오늘의 하늘은 특별히 맑았다.
그리고 오늘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처음부터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나는 오늘, 낡은 표 한 장을 들고 오래된 극장에 왔다.
우연히 서랍에서 발견한 표 한 장이었는데, 어째서
거기 들어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표 한 장에는
이미 흘러간 연극 제목이 적혀 있었다.
이것은 꿈이었지만,
깨어나지 않아도 된다고 꿈속에서 생각할 만큼,
고요하고 평안했다.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단골 극장에 앉아 있던 시간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