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대학생활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강의 시간표를 짜는 것부터 어떤 수업에 진심을 다할지 결정하는 일까지,
모든 것이 선택의 문제였다.
선택할 수 없는 필수 과목도 있기 마련이지만, 주어진 대로 들어야 하는 고등학교 시절과는 사뭇
달랐다.
수강 신청 때부터 불꽃 튀는 경쟁이 있었다.
인기 있는 교수님의 강의라면 특히 그랬다.
무엇보다 자기 원하는 대로 요일을 고르고
공강 시간이 많지 않도록
효율적으로 강의 일정표를 짜려면
부지런해야 했다.
집에서 마음 놓고 수강 신청을 할 수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
학교로 와서
속도가 좋은 컴퓨터에 앉아 수강 신청 사이트에 접속해서는
대기해야 했다.
그렇게 학기는 시작되었고,
수업 시간은 어딘가 공허한 시간을 채우는 방편이었다.
시간 죽이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나는 수업에는 성실히 참석했지만,
강의를 성실히 듣지는 않았다.
‘줏대 있게’ 좋아하는 과목과 싫어하는 과목을 철저히
가렸고, 이 선택이 내 성적표에
명확히 드러났다.
예술 관련 수업은
언제나 끌렸다.
고대의 화려한 궁전에 발을 디디는 느낌,
교수님의 목소리가 억양 없이 단조롭게
흐르더라도,
화려한 비잔틴 예술과
르네상스 시대의 정교한 세부 묘사를
떠올리는 순간에는
눈앞에 그림들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나는 강의실 한구석에 앉아 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며,
머릿속에서 피에타와 라스코 동굴벽화 사이를 오가며
나만의 갤러리를 꾸몄다.
그 시간은 무채색 일상에
다채로운 색채를 덧입혔다.
그저 시간을 보내는 지루한 시간이
아니었다.
반면,
컴퓨터 실습 과목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
화면에 떠오르는 복잡한 명령어와 도스 창은
외계어처럼 느껴졌다.
교실의 분위기는 늘 냉랭했고, (내게만 그랬을 거고)
컴퓨터의 윙윙거리는 소리와
교수님의 단조로운 설명은 나를
금세 피로하게 만들었다. (나만 피곤했을 거고.)
다른 학생들이 키보드를 능숙하게 두드리며 코드를 입력할 때,
나는 엉뚱한 행성에 불시착한 사람처럼 허둥댔다.
그런 수업에서는 슬며시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잠시
휴면 모드에 들어가기도 했다. 마음속에서는 이미
퇴근을 알리는 종이 울린 후였다.
이렇다 보니
대학생활 내내
‘좋아하는 과목’과 ‘싫어하는 과목’ 사이의
성적 편차는 클 수밖에 없었다.
미술사, 음악사, 문학 강의는 성적표에 빛나는 A를 새겨주었고, 그 과목들에서는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반면 첫 학기에 들었던 교양인 ‘컴퓨터 실습’ 과목은 그렇지 못했다. 1997년 당시, 컴퓨터 운영체제는
지금처럼 화려한 인터페이스를 자랑하는 윈도우가 아닌,
까다롭고 엄격한 도스였다.
나에게는 그저 검은 화면에 흰 글자가 깜빡이는 낯선 세계였고,
키보드에 손을 올릴 때마다 알 수 없는 압박감이 몰려왔다. 도스의 명령어를 치면서
외계어를 배우는 기분을 느꼈다.
‘C:>’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스스로가 컴퓨터의 포로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도스는 내게 ‘독스(毒s)’라는 별명으로 다가올 만큼
어려운 존재였다.
필수 교양 수업이라 참여했지만, 화면 가득 채워지는
‘DIR’, ‘CD’, ‘FORMAT’ 등의 명령어는 나를 괴롭혔다.
수업 시간에는 결국
머리가 무거워지고 눈꺼풀이 내려앉아
잠을 자버렸다.
내 대학생활의 성적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지표 같았다.
예술을 좋아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아름다움을 찾는 데는 열정적이었지만,
복잡한 기술에는 무기력했다.
물론 그 모든 과목을 성실히 다 들어갔다는 것에 대해서는 기록으로 남은 것이 없다. 애초에 출석 규정을 위반하면 성적이 나오질 않으니, 성적이 나왔다는 건 누구나 그 정도의 규정은 준수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내 경우에는 수업을 거의 빠진 적도 없고
누군가 대신 출석을 해주지도 않았다.
정말로 오롯이 그냥
수업에 참석하기는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꼭 모범적이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