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학 통론: 지성의 초대장

에세이

by 희원이

대학교 시절의 수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단연코 ‘언론학 통론’이다.

1학년 1학기 때 수강한 필수 교양 과목이었다.


교수님은 당시에 전임 강사로,

유난히 열려 있던 분이었다.


그분은 페미니스트였다.

그러면서 맑시스트이기도 했다. 스스로 밝히길 그랬다.

자신의 이름에 선연히 새겨진 흔적.

그 때문에 태생부터 페미니스트였지만,

당시 저항의 흔적이 남았던 때,

그러니까 교수님이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교실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맑시스트여야 했다.


그는 그 자신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상아탑 안에서 교수의 길을 택한 것에 대해

못내 마음을 쓰는 듯했다.

함께 운동했던 친구들에 대한 배신처럼 느꼈던 것일까.

그러나 시대는 바뀌고 있었고

많은 이들이 그렇게 각자의 생활과 미래를 위해

제도적인 진로를 선택하고 있었다.


나는 그 수업이 이상하게 재미있었다.

특별히 엄청난 교습법으로 유명한 것도 아니고,

그저 그리 오랜 경력을 지니지 않은 전임강사의 수업을 들으면서도

어쩐지 양심이라는 것,

또는 시대에 대한 죄책감이라는 것

잘 모르겠지만,

인문적 그림자가 느껴졌다고 해야겠다.


수업에서 그런 걸 노골적으로 드러낸 적도 없고

그저 언론학 지식을 다루고 있었지만,

그것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할 수 있겠다 싶은

분위기였다.


그날을 기억한다.

미디어에 대해 호기심을 느껴서 수업이 끝난 뒤 용기를 내서 교수님께 질문을 했던 것이다.

그때의 질문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의 대화가 남긴 잔상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빠져나가고 있을 때 몇몇의 학생이 교수님 주변에 모여 간략한 질문을 하고 있었고, 나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던 것 같다. 아마도 ‘남미 라디오 미디어’에 관한 물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앞좌석에 둘이 앉아서는 그것에 대해 한참 이야기했던 것도 같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러 갔던 것 같다.

술자리였다.

한국 문화와 미디어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며, 수업의 방향은 조금씩 변화했다. 그런 경험을 생각지도 못했고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내 건의 내용이 수업 커리큘럼의 수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니!

무작정 펼쳐진 대화를 통해 나비효과처럼 새로운 주제가 드러났고 한국의 주체적인 문화에 대한 수업으로 드러난 셈이었다.


뿌듯하기도 했지만, 그런 뿌듯함을 지금까지 종종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이제는 아주 흐릿한 하나의 해프닝처럼 기억된다. 그런 때도 있었다는 정도로.


어쨌든

그 뒤로 종종 선배들과 교수님이 모이는 자리에 참석했고


결국 수업 내용 자체가 학생들의 발표 수업을 대체되었다. 모두 각 분야에서 한국 문화와 주체성에 관한 것을 다루는 것으로

언론학과는 별 상관없는 내용이었다.

나중에 학생들 평가에 불만이 제기되지는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어차피 선택 교양이 아니라 필수 교양이었으므로,

누구나 꼭 들어야 해서 듣는 것이었지,

어떤 수업 내용을 듣고 싶어 선택한 것은 아니니,

어쩌면 괜찮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때는 그런 정도의 변칙과 자유가 가능하던 시절이었다고 믿는 편이다.


여하튼 그래서

발표를 하면 무조건 A+을 준다는 공약을 듣고는

또 약간은 의무적으로 지정을 받아서

‘한국 음악과 주체성’에 관해 발표를 했고

다양한 실험적 음악과 대중음악의 새로운 모색에 대해

발표했다. 음향 시스템은 조악했고, 녹음된 자료로 더블테크로 들려주는 음악은 영 모든 게 엉망이었지만,

새로운 경험이기는 했다.

교수님께서는 내게 발표의 경험을 겪게 해주고 싶다고 했는데, 모두가 지루하게 나를 바라보던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하지만,

뭐, 어쨌든

지금도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대학 생활은 무기력함으로 가득 차 있지만,

‘언론학 통론’은 그 속에서 빛나는 작은 지성의 등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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