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공부

에세이

by 희원이

캠퍼스는 그 자체로 다양한 이야기를 품은 공간이었다.

학생운동에 뛰어드는 열정적인 동기들,

철학 책을 끌어안고 학회실에서 밤을 지새우는 선배들,

동아리방에서 취미 생활에 몰두하는 친구들까지.

그중에는 예상치 못한 만남과 그로 인한 이야기들도 있었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 속에는 캠퍼스의 한 봄날,

일대일 성경 공부가 자리 잡고 있다.


그날은 봄기운이 완연했다.

꽃이 피고 바람이 부드럽게 불던 캠퍼스에서

나는 한 선배와 마주쳤다. 선배는 성경 동아리 소속이었다.

그녀는 친절하게 나에게 다가와

성경 공부를 권유했다.


사실, 나는 이미

학교 내의 다양한 종교 동아리나 선교 단체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UCC 같은 대학 선교 단체는 이단인지 아닌지 논란이 많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얘기들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선배와 함께 교정의 그늘진 벤치에 앉아

성경 구절을 읽던 그 순간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렇다고 엄청 낭만적이고 그랬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냥

사람을 만나서 토론하는 게 좋았다.


그분은 선교사가 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그 과정 때문에 학교에 들어와있을 뿐 이미 졸업생이었던 것으로 안다.

그러고 보니 나이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선배의 이름도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전’씨였던 것 같다는 흐릿한 기억만이 남아 있다.


그는 나에게 따뜻하고 인내심 있게 말을 걸었지만,

나는 어딘가 모르게 그날따라 심술궂은 마음이 들어

그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성경 공부를 하면서 괜스레 논쟁을 벌였던 기억이 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내 안에 묻어 있던

기독교에 대한 반항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선배의 온화한 얼굴은

나의 공격적인 질문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의 인내에 감사할 줄 모르고

내 주장을 밀어붙였다.

지금도 그 주장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잠깐이나마 성경에 깊이 심취한 적이 있었던 때,

그러니까

2016년부터 2021년 정도까지라고 해야 하나.


내가 교회에 다니게 될 줄이야 싶었고, 정말 많은 목사님들의 설교도 찾아들으면서 성경 공부를 해나갔다. 교회도 다니고 나서, 코로나 시국에 이르러

교회의 모습에 실망하고 난 뒤


다시 가나안 성도가 되기 전에 몇 년 간 교회를

열심히 다녔던 때에 이르러

그 선배가 떠올랐던 것이다. 그러고 나니, 그때 많이

참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던 것이다.


누가 옳다는 것을 떠나

신앙의 이름으로 상대 얘기에 억지웃음을 띠어야 하는 것만큼 고충도 드물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적인 짜증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을 억누르며

통제하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선배가 내게 주었던 성경책이 하나 있다.

그 뒤로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교회를 다닐 때

집에 있는 성경, 그러니까 여기저기서 받았거나

교회에 다니던 동생이 놓아둔 성경,

새로운 교회에서 선물 받은 성경,

그리고 어디서 흘러 들어온지 잘 모르는 성경까지

여러 권이 있었다.

그중에 오래 전 편집 스타일이라 글자 크기가 너무 작고

한 페이지에 빼곡하게 활자가 박혀 있으며

번역 방식에 예전 스타일인 작은 성경 한 권이 있었다.

그 성경에 내게 선물로 준다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그러자 그 선배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분이 준 게 맞았다.

그 시절의 메모가 박혀 있었으니.


그 선배는 아마도 전도사 과정을 거쳐 사역자가 되려 했을 것이다.

지금은 여성 목회자에게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렇지 못했다.

지금쯤 어디서 어떤 사역을 하고 있을까,

신앙과 상관없이 그때의 한 풍경으로 기억나고

궁금해진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언론학 통론: 지성의 초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