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에세이

by 희원이

다큐멘터리 PD라는 직업이 마음에 끌렸다.

세상에 숨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끌어내고, 그 이야기 속 인물들을 이해하며 세상을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직업 같았다.


물론, 당시에는 좋은 직장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그냥 다큐 PD 자체보다는 KBS에서 다큐 작업을 하고 싶었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좋은 직장에 가고자 하는 현실에 타협하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가까운 직업을 찾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막연히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정확히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책이나 영화를 보며 감탄하던 순간들,

마음속에 퍼지는 서사를 스스로 펼쳐보고 싶다는 충동이

가득했다.


그러나 우리 집의 기대는 조금 달랐다.

굳이 상경계열을 마다하고 사회과학계열로 입학해서

2학년 때는 주전공을 택해야 했는데,

신문방송학과를 가겠다는 내게

부모님은 행정학과 진학을 끊임없이 권유하셨다.

안정된 삶의 보장을 위해 행정학과로 진학해

고시를 보기를 원하셨다.


특히 아버지는 내가 고시에 합격하기를

누구보다 원하셨다. 나도 가끔

그 기대에 응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조금 공부해보니 안 되겠더라. 내 안의 공명심이

바로 풀 죽었고,

결국 신문방송학과로 진학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의 학업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대학에서 보내던 시간도 왠지 흐릿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입학한 신문방송학과였지만, 창의성을 발휘하는 일은 생각보다 멀게만 느껴졌다. 결국 여러 번의 휴학을 반복하며 오랜 시간 대학을 떠났다. 그러는 사이 군대를 다녀오고, 공익 근무까지 마치고, 어학연수까지 갔다. 그러나 돌아와 보니


나아진 건 하나도 없었다. 해온 것들은 많았으나,

여전히 안개 속에서 헤매는 기분이었다.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체크하듯 해치워왔지만, 그 어떤 것도 내게

큰 의미로 남지 않았다. 그냥

주어진 틀에 맞춰 살아가는 듯한 나날이었다.


복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게 공허한 일상에 젖어 있던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에서 소설 동호회를 알게 되었고,

소설 습작 한 편을 써서 제출하면

가입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시절, 다음 카페는 나 같은 무기력한 청춘들에게

다양한 모임을 통해 숨통을 틔워주는 구멍이었다.


나는 <귀신>이라는, 참, 부끄럽고

어디 갔는지 잃어버리기까지 한 소설 습작을 한 편

쓰고는 나름대로 뿌듯한 마음으로

동호회에 제출했고,

그것을 계기로 동호회에 가입할 수 있었다.

절대로 “아, 이런 걸 첫 습작으로 썼다는 겁니까? 믿기지 않는데요!”라는 반응이 있었다는 건 아니다. 솔직히 그보다는

“뭐 이런 걸 써서 굳이 제출해서 동호회에 가입하려고 하는가?”라는 반응에 가깝지 않았을까 한다. 당시 문우는

무척이나 예의 바르게

자신의 의견 표명을 아꼈으니, 놀라운 인내심이라 할 만하다.

하기야 나도 잠깐 그 일을 맡아 해보니,

다 읽지도 못하겠더라. 어쩌면 분량만 보고 일단 하고 싶어하는군 싶었을 것 같다.


그 카페가 제법 열심히 체계적으로

소설가 지망생끼리 교류를 하던 터라, 당시에도

활동지수가 높았지만

나중에는 유명한 데서 등단한 작가들도 여럿 나오기는 했다. 나도 나름대로 거기서 유망...

했다면 좋았겠지만, 아직 그때는 여물지 못했다.

그렇다고 지금은 여물었다는 소리도 아니다.


당시에는 다큐멘터리 PD가 되고 싶은 입장에서

다양한 고민을 하는 분들을 만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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