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벌면 바빠서 글을 쓸 수가 없고

에세이

by 희원이

언제부터 이런 딜레마에 빠졌는지 모른다.

돈을 벌면 마음의 여유가 없어 글이 안 써지고,

돈을 안 벌면 불안감에 글이 더더욱 안 써진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게 뭐였을까?

처음엔 꿈이 분명히 있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인지 이 삶의 이유마저 희미해졌다.


‘먹고사는 게 우선’이라며 점점 스스로를 합리화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삶이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반복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때는 나도 글로

무언가를 이루겠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끈기도 있었고, 어떻게든 해내겠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밤을 새워 글을 쓰고

다음 날 다시 수정하며,

만족스러운 문장을 찾기 위해 애썼다.

그 시절에는

하루를 글로 채우는 게

두렵다기보다는 설렜다.


그러나 막상 맞닥뜨린 현실은

그때 상상하던 것과 너무도 달랐다.

‘내가 쓴 글로 먹고살 수 있을까?’

자신할 수 없었다.


그 순간부터

글을 쓰는 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 길에 근거라도 있었다면,

내가 쓴 글로 얼마든지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확신이 있었다면

상황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약간의 근거라도 붙잡고 있던 때에는 그나마

고집을 부려보기라도 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희미해졌다.


스스로가 괜찮은 글을 쓸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은 점점 없어지고,


삼성을 다니던 사람이 퇴사 후 석 달만 지나면

‘그냥 백수’가 된다는 말처럼,

한때 자신감에 차서 걷던 이 길도

시간이 지나고 보니

부질없고 낯 뜨겁고

아무것도 아닌 듯 느껴진다.


다른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낼 때에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맞는가’라는 질문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어차피 일반적인 진로를 벗어나서 되돌아갈 수도 없고,

이미 되돌아가서 회복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래도 생계 문제는 무심히 산처럼 버티고 있어서

되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꿈을 좇는 것도 아닌 채

매일 급한 일들에 떠밀려가듯 하며 방전된 상태로

하루를 마친다.

충분한 미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자아성취도 아니지만, 어쩌면 많은 이들이 그리 산다는 생각에 불평도 할 수 없다. 실패했더라도 그건 어쩌면 내 선택에 따른 업보니까, 그걸 담담히 책임지고 살면 되는 것이다.


다만,

그래도 이 길 위에 서서는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그마저 희미해지고 나니

사는 의미마저 사라져 무기력해지는 것이 두려워

나는 여전히 내가 하던 일을 놓지는 않는다.

그 끝에 아무것도 없더라도,

그냥 어쨌든 해오던 일을 하면

그뿐이다. 누군가에게는 별 의미가 없더라도


내게는 그것이 내 선택의 업보요,

내 삶의 의미요,

내가 감당하거나 꿈꾸던 일이기 때문이다.

가끔은 글 쓰는 게 중요했던 것인지

글을 써서 먹고 살고 싶었던 것인지

실은 문명을 얻어 큰 의미로 남고 싶었던 것인지

모든 것을 모호하게 숨기고 싶어지지만,

그건 숨긴다고 숨겨지는 일은 아니다.

오욕이었어도 좋다. 과욕이었어도 좋다.

어쨌든

표류하는 배 안에서도 바다에 떠서 별을 보는 순간을

상상하며

쓴다. 그리고 산다.


살기 위해 일하면서

쓰기 위해 산다는 것은

균형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아

때때로 흔들리며

막연하게나마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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