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내포를 결정한 건 쉽지 않았어

에세이

by 희원이

고등학교 2학년.

시험 성적표는 내게 언제나 경고장 같았다.

난 반칙을 한 적도 없고, 규칙 위반을 한 적도 없는데,

축구장의 옐로카드처럼

주차 위반의 과태료 고지서처럼

날아들었다.


한 번만 더 받으면 레드카드라는 식으로

제때에 내지 않으면 추가 벌금을 내라는 식으로

정기적으로 내 손에 들려 있었다.


열심히 하면 간신히 그 자리,

조금 더 힘을 내어 정말 많이 열심히 하면

등수는 겨우 한두 칸 올라갔다.


그러나 한 번 방심하면 미끄럼틀처럼

미끄러져 내렸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체력이 받쳐 주지 못했다.

책상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온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선행학습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공부해야 할 분량은 끝도 없이 많았고,

그 양을 채울수록 서서히 한계가 보였다.

무기력함이 몰려왔고, 손을 놓고 싶었다.


스트레스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고,

늘 화장실로 향했다. 토를 하기 위해.

아무도 모르게.

거울에 비친 창백한 얼굴을 보며

혼자 속으로 '괜찮다'고 되뇌었다.


그렇게 속을

비워내도 소화가 안 된 것처럼

답답했다.


그런가 하면

시험 기간이면 어김없이

장이 탈이 나곤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고통의 보상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시험 성적은 내가 바친 노력을 배신하듯

냉정하게 돌아섰다. 그때

꿈을 줄여야 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대학의 눈높이를 낮추고, 내게 맞는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기 시작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곳에 가고 싶다는 마음은

남아 있었다.


더 밀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을 때

목표 대학은 유지하고

어문계열로라도 가고 싶었다.


그러니 내신은 포기해도 됐다.

수능에 모든 걸 걸기로 하고 내신을 포기한 순간,

거짓말처럼 내 순위는

했다.


너무도 시원히 미끄러져서 허탈했다. 마치

중력을 벗어난 우주 미아가 되어

유영하듯이.

간신히 붙들고 있었던 산소마스크가

벗겨지듯이.


15등급까지 있던 시절, 내 등급은 10등급 바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는 학교에서 이도 저도 아닌 학생이 되어 있었다. 양자역학의 원자처럼

물 흐르듯 흐르며 10등급 바깥에서,


그러니까

10등급 바깥이면

일련의 경쟁을 외면한 종교적 인간으로 파동처럼 흐느적거리며 누군가의 배경이 되었는데,

관찰 당하면 나름대로

탈선은 하지 않은 조용한 범생이의 모양새를

갖추고는 있었다.


나름대로 우리 집에서는

소중한 원자 아기씨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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