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그 시절, 내게는 전설처럼 회자되던 친구가 있었다.
한때 14등급을 받았던 친구는,
수능에서 모든 것을 경신하며 놀라운 점수를 획득했다.
그의 이름이 전국 등수 28위에 올랐고,
서울대 영문과에 차석으로 입학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내게는 록과 메탈의 즐거움을 알려주었고, 평소에는 수건을 가지고 다니면서 그걸 베개 삼아 책상에 엎드려 자던 친구였다.
그때만 해도 내신도 좋지 않고,
수능도 적당히 잘 보는 걸로만 알아서
나중에 그가 전국 28등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야말로
마술적인 상황에 빠진 듯했고, 부럽기도 했다.
그 극적인 성공은 나에게도
'혹시'라는 희망을
심어주었지만,
‘역시나’의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던 나는,
내가 갈 수 있는 대학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못했다.
원서 접수를 마치고 시험 보러 가야 할 날,
나는 가지 않았다. 그때는
무슨 대학 이름 하나가
인생의 전부 같았다.
아무리 그게 다가 아니라고 해도, 지금 고3에게 조언해도 엇비슷할 것이다. 그런 조언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온통 입시의 우주에 갇혀 있었으므로.
그날도
수험장으로 가는 대신
영화관으로 향했다. 재수하기로 마음먹었고,
부모님도 그러길 바라셔서 함께
<전태일>이라는 영화를 봤다.
대학 진학만이 전부인 줄 알았던 내게
그 영화는 너무도 생경한 느낌을 남겼다. 노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희생이 있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한 채
재수 생활을 시작했다.
재수 시절,
모든 과목에 다시 힘을 쏟았다.
수학도, 국어도 예전보다 나아졌다.
그러나 영어는 여전히 나를 외면했다.
성적은 꾸준히 오르지 않았고, 나에게 있어
영어는 끝내 넘지 못할 벽으로 남았다. 간신히
예년보다 조금 더 좋은 점수를 얻었으나, 그때의 압박감은 컸다. 안전하게 하향 지원을 하지 않으면 삼수를 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나를 짓눌렀다. 결국,
나는 눈높이를 낮춰
원서를 썼다. 지금처럼
수시와 정시가 여러 장으로 나뉘던 시대가 아니었기에 한 번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나는 결국
'원래 지난해에 왔어야 할 곳 중의 한 곳'으로 오고 말았다. 그곳은 마치 내
고향처럼 편안했다. 좋게 말해서, 내
숨결을 찾아낸 곳이었다.
처음에는 실망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내가 생각했던 이상의 가치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마치 어디에 와야 했는지를 이제야 안 것처럼, 그곳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자리였다.
이제는 그곳이 편안하게 내 자리라고 느껴진다.
그런데 이제는
그곳에서 내가 올 곳이 아니었다고
‘튕기는’ 것 같기도 하다.
너 같은 졸업생 필요 없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