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교실 분위기는 왁자지껄할 때도 많았지만, 시험이 가까워질 때면 교실의 분위기에는 늘 압박감이 깔려 있었고, 성적이 발표될 때는 시험 점수와 성적표에 대한 관심이 온통 교실에 가득했다.
빠져나오기 어려운 입시의 블랙홀에는 이상하게도 알 수 없는 호기심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외국어 영역의 시험 문제 속 빈칸을 바라볼 때면, 그곳에 나 자신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 빨려들었다가,
며칠 뒤 성적표의 점수를 확인하는 순간, 내가 어디로 빠져나오게 될지 어렴풋이 느꼈다.
다른 과목의 점수로 어렵게 쌓아 올린 작은 자신감들이 외국어 영역 속 빈칸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을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구멍 너머의 세상을 꿈꾸기도 했다.
<이상한 나라의 폴>이 마법의 봉으로 열어젖힌 웜홀로 종이처럼 너울거리며 전혀 다른 차원으로 가는 것을 떠올렸다.
그렇게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내가 알지 못했던 다른 세상이 있을 것 같았다.
그곳엔 내가 알지 못했던 언어와 문화가 있었고, 지금과는 전혀 다른 내가 존재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시험지를 앞에 두고 답답하고 초조할 때마다,
그 구멍이 단순히 점수를 삼키는 곳이 아닌, 새로운 무언가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느꼈다.
그래, 상상도 아니요, 공상도 아니며, 망상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외국어는 내 세계를 닫는 문이었다. 문은 열리는 곳이란 실행되지 않은 가능성만을 담은 채 영영 열리지 않기도 했다.
폐쇄된 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