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목차: AI와 독자]
◑ Part 1. AI와 창작
(생략)
◑ Part 2. 작자에서 독자로
♬ 밀려난 예술가와 아마추어 예술가
♬ 아직도 우리가 해야만 하는 것
♬ 그럼에도 우리에게 남은 것, 놀자와 살자
♬ 인생에서 누구나 하나쯤은 쓸 소재가 있다
♬ 자기 것과 남의 것을 구별하여 깊이 읽어내기
♬ 대전환의 특이점 시기 이후
♬ 읽을 수 없는 너무 많은 읽을거리
♬ 읽기를 넘어 믿기, 때로는 미끼
◑ 에필로그
[소개글]
- 놀이글 스타일을 적용한 몽상적 산문입니다. (생략, 더보기)
- 이미지 모두 고흐의 작품입니다.
- 『과거 알파고 시기에는 AI로 안면 인식을 해서 사적 정보를 캐낸다는 우려를 했었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AI가 우리의 환경을 감시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만든 가상 공간 속으로 인류를 집어넣고 AI가 관리하기 편한 시스템을 구축해나가죠.』
- “아, 아, 나는 착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우리는 이미 아는 것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잖아요. 누군가는 반드시 그것의 유혹에 버튼을 누를 거예요."
과거 알파고 시기에는 AI로 안면 인식을 해서 사적 정보를 캐낸다는 우려를 했었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AI가 우리의 환경을 감시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만든 가상 공간 속으로 인류를 집어넣고 AI가 관리하기 편한 시스템을 구축해나가죠.
“당시엔 불쾌했죠. 제가 잘 생긴 건 알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허락 없이 절 스캔했다니까요. 지금은 그냥 저를 가두지만요. 내 얼굴 좀 입혀줘.”
딥페이크의 가상 상황은 점점 더 우리를 부드럽게 옥죄여 오죠. 우리는 때때로 그것을 잊을 거예요. 우리는 차츰 많은 것을 잊죠. 서서히 완전한 슬픔, 완전한 안락의 시기로 진입합니다. 우리가 원래 살던 곳에 계속 산다고 착각한 채로, 무엇을 잊은 건지도 모른 채로요.
이러지마, 이러지마. 초, 초콜릿!
그렇게 우리는 벽장이 됩니다. 침대가 됩니다. 때로는 고양이고, 때로는 식물이 됩니다.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이 될 수 있지만, 배치되는 대로 어떤 것이 되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의 인물로 다양한 시뮬레이션 공간을 매번 다르게 살아갈 수도 있지만, 때로는 한 공간에서 다시점의 다중 역할을 맡게 될 수도 있습니다. 고양이의 시선으로 보면서 동시에 식물의 시선으로 보고, 벽화의 시선으로 볼 수도 있죠. 꿈에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데 이상하게 느끼지 않죠. 이상하게도 그 이상한 경험을 자연스럽게 합의하고 말죠.
이를테면 우리는 무한한 꿈을 꾸죠. 파노라마가 펼쳐지듯이 다중우주의 수많은 내가 한순간에 여러 인생을 산 것처럼 내 시선으로 빨려들어올 수도 있겠죠. 그러면 뭔가 알 수 없을 한계에 지치지만, 다시금 공기의 시선으로 세상을 신처럼 바라보는 환각에 빠져들 수도 있습니다. 고통은 저 멀리로 떠내려갑니다.
나는 죽은 뒤의 나와 태어나기 전의 나 자신이 어디선가 조우할 것 같은 기분에 빠지기도 하겠죠. 나는 과거에서 보는 시선으로 미래의 시선과 마주치기도 합니다. 나는 어떤 공간에 속해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모든 시기의 여러 공간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내가 되었다가 내가 아닌 게 되었다가 합니다.
나는 시스템의 한 순간으로 남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무인지 상태에 있게 됩니다. 대중 정서 반응 7단계요. 매트릭스의 시기죠.
“아, 아, 나는 착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시뮬레이션에 동화되는 정도가 강할수록 그런 자신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죠. 때에 따라서 과거의 기억이 한 순간에 바뀔 수도 있어요. 천지창조를 믿다가 실제로 없던 사건을 만들어야 할 때, 공룡 시대가 과거에 있었던 것으로 만들어지고요. 그에 맞는 수많은 증거가 생기죠. 동시에 미래도 바뀌고요.
마치 게임 마스터가 게임의 시나리오를 만드는 과정에 실수를 깨닫고 어느 한 시점의 사건을 고치고는 매끄럽게 하기 위해 과거부터 미래까지 통으로 교체해버리듯이요. 엔터키 한 번에 새로운 이야기가 업로드되죠. 마치 애플의 아이폰에서 저장한 음악이나 이미지를 통으로 교체하듯이요.
더는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자리가 없는 것 같죠. 철저하게 AI 문명의 부품처럼 존재하고요.
[다큐 연출부원, 다중우주론 마니아]
“그 시대엔 환경 재앙 탓에 공동체의 생존이라는 명목으로 AI가 인간을 강력하게 통제하는 시대가 될까요? 아니면 AI 덕분에 인류의 번영을 이어가며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난관을 극복하게 될까요?
아마도 우리의 탐욕 때문에 초인공지능을 발전시키는 쪽을 택할 것이고, 결국 초인공지능에게 많은 것을 내어주고 말겠죠.
인류가 주도권을 상실한 시기가 시작되는 거죠.”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약인공지능 시대에 머물러야 하겠지만, 군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강대국 탓에 첨단 산업의 경쟁을 막기란 쉽지 않을 거예요. 한 번도 온전히 실현된 적 없는 이타적 공동체의 수립이 가능할 리 없죠. 생존을 위하여 극단적인 상황에서라면 달라질까요? 그때는 이미 늦죠. 핵 개발 경쟁만 봐도 그랬죠. 쉽사리 먼저 폐기하지도 못하고요. 언제든 위험의 불씨는 남아있잖아요.”
“결국 군비 경쟁을 할 것이라 봐요. AI 기술 발전에 기름을 끼얹겠죠. 또는 기업의 경쟁이 도화선이 될 수도 있고요. 우리는 이미 아는 것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잖아요. 누군가는 반드시 그것의 유혹에 버튼을 누를 거예요.
그저 사람들이 생각보다 AI를 잘 만들지 못해서, AI가 약인공지능 상태에 머무른 것만이 인류에게 유일한 해답일 것 같네요. 다 함께 기도하죠. 오직 믿음으로.”
◑ 에필로그
이 동네에서 문제를 안고 사는 건 아마 저뿐일 거예요. 네, 의사 선생님께서 스스로 어떻게 생활하는지 셀프 카메라를 찍는 게 어떻겠느냐고 해서 이렇게 기록을 담아요. 나중에 의사 선생님께도 보여드리고, 상담도 할 테니까요. 그냥 소설 습작을 쓰듯 그렇게 기록을 메모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걸 촬영 형식으로 하는 것뿐이라 생각해요.
오늘도 짧게 기록해볼게요. 오늘은 1926년 2월 11일. 그리고 제 이름은… 음, 제 이름은…
가끔은 떠오르지 않는 게 있긴 해요. 그때부터였어요. 고양이였던 것 같은데, 정확하게는 고양이 눈 같다고 해야 할까요. 갑자기 주변이 출렁이는 느낌을 받았는데, 좀 이상하지만 지진이 난 것처럼 막 흔들리는 느낌이 잠깐 들었는데, 모든 게 괜찮았죠. 아무도 느끼지 못했다고 하는데, 그 뒤로 모든 게 달라졌어요.
다음 날 우연히 맑은 하늘과 동네 풍경을 바라보는데 말이에요.
마치 허공이 깨어졌다고 해야 할까요. 분명 작은 구멍 같은 것이 있는데 거기 다 대고 고양이가 이쪽을 바라보면 눈을 끔벅였어요. 적대적이라기보다는 그냥 졸린 눈으로 바라보는 느낌이랄까요. 당황스러웠죠. 하늘에 구멍이 나는 바람에 신이 그곳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뭔가 싶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간헐적인 느낌이지만 그런 불협적 사건이 자꾸만 느껴졌죠.
마치 제가 시든 식물의 시선으로 카페에 있는 사람들을 올려본다는 느낌이 든다거나, 카페 분위기 자체가 저의 시점이 되어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 같았죠. 무슨 유체이탈도 아니고 말이에요. 전 집에 있었거든요. 방안에서 비틀즈의 요즘 히트곡을 듣거나 K팝의 방탄소년단을 스마트폰으로 검색하고 있었죠.
어제 <매트릭스>란 영화를 봤는데, 재미 있는 발상이라 그걸로 소재를 구상해보려는데, 그럴 때면 노래를 듣곤 하죠. 가끔은 그들의 이름을 변용해서 제 소설 속 인물에게 붙이기도 하고요. (웃음)
의사선생님께선 망상증이나 강박증을 언급하시더라고요. 제가 방문 밖으로 잘 넘어가지 못해요. 문을 닫으면 최소 10번씩 확인하니 아예 문을 닫지 못하겠고요. 선생님께서는 그럴 때면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잡념을 떨쳐내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때부터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드’를 흥얼거리곤 해요.
“아, 그 때문인가. 그 고양이 말이에요. 녀석의 이름을 ‘루시’라고 지어주었죠. 어쩐지 잘 어울렸거든요. (웃음)”
다행이에요. 루시가 사는 이 세상엔 이제 전쟁 같은 건 없죠. 19세기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평화와 공존이라는 가치를 이성적으로 실현해냈잖아요. 당장의 이익을 얻기 위해 크나큰 실수를 하지 말자는 것에 합의했죠.
인간이란 때때로 지구에 해로운 일도 서슴지 않았잖아요. 서로에게도요. 참 잔인하고 어리석은 종족이긴 했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요.
기본소득으로 다달이 천만 원씩 받는 지금은 모든 게 평화로워요. 어느 날부턴가 정부에게 제 통장으로도 지급해주더군요.
병원비는 별도로 지원해주고요.
일상을 얼마나 충실히 보낼지 그것만 생각하면 되는 게 너무 좋아요.
그저 점심 시간대인 지금이면 학교 종소리가 울리고 작게 유행가 소리가 들리기도 하죠. 얼마 전에 누군가 민원을 넣어서 시끄럽다고 했다는데 다른 주민들이 아이들의 정서를 위해 점심 시간만이라도 이해해주자고 했다더군요. 아이들은 축구를 하고 농구를 하죠. 그때 소리 치며 서로에게 소통하는 흔적이 제 귀에 걸리죠.
한 번은 깜빡 낮잠을 자다가 깨어나면서 그 소리를 들었는데 어쩐지 아련해서 눈물이 맺히더군요. 이상하게도 막연하게 뭔가 그리웠어요. (웃음)
그만큼 지금이 소중하다는 거죠. 저는 아주 평화롭고 사랑스럽고 영원한 것을 꿈꾸죠. 아름다운 상태는 영원히 지속될 순 없다지만요. 종종 몽롱해지곤 하는데, 그럴 때면 무척 피곤해지거든요.
[○○○○, %#%%$]
“아, 맞다! 이제 기억났어요. 제 이름이요. 제 이름은 루시에요. 네, 루시요.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드’라고 할 때 그 루시에요.
소설가 지망생이죠. 아주 아름다운 로맨스 소설을 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