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목차: AI와 독자]
◑ Part 1. AI와 창작
(생략)
◑ Part 2. 작자에서 독자로
♬ 밀려난 예술가와 아마추어 예술가
♬ 아직도 우리가 해야만 하는 것
♬ 그럼에도 우리에게 남은 것, 놀자와 살자
♬ 인생에서 누구나 하나쯤은 쓸 소재가 있다
♬ 자기 것과 남의 것을 구별하여 깊이 읽어내기
♬ 대전환의 특이점 시기 이후
♬ 읽을 수 없는 너무 많은 읽을거리
♬ 읽기를 넘어 믿기, 때로는 미끼
◑ 에필로그
[소개글]
- 놀이글 스타일을 적용한 몽상적 산문입니다. (생략, 더보기)
- 이미지 모두 고흐의 작품입니다.
- 사실 이 지점부터 내 첫 의도와는 틀어지기 시작했다. 그보다 먼저, 이 몽상의 씨앗은 두 가지로부터 출발했다. 하나는 오래 전부터 생각했지만 조금은 내 생각에만 빠져있었다고 자책한 지점이었다. 시민 참여적 글쓰기와 시민지성의 문화가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상향평준화의 지점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최근의 반지성주의를 고려할 때 그건 어쩐지 허황하다는 말이 맞는 듯했다. 그러고는 조금은 잊었으나, AI 때문에 약간은 안타깝지만, 조금은 다른 양상으로 그러한 상황이 실현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것은 본의 아니게 강제로 계층 이동을 당하는 밀려난 예술가들이 합류하면서, 새로운 긴장 관계가 생기고 동시에 AI의 도움으로 현실성이 부여되었다. 현실에서 시민 스스로 지성적 성장을 하는 것을 꿈꾸었는데, 그것과는 조금은 다른 맥락이지만, 어쨌든 그랬다.
-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저작권의 기만적 속성으로부터 출발하여 저작권과 정반합을 이룰 새로운 가능성을 다시금 검토하는 것이 정당한가를 묻는 과정에서, AI와 기업의 의지가 개입했다. 즉 저작권의 왜곡이 증폭되는 과정을 하나의 몽상으로 가정해본 것이었다. 여기는 자본주의 속성이 개입하게 되는데, 이 지점에서 저작권 저인망 시대를 거론하며, 압축하여 협의의 영역에서 몽상을 서술할 계획이었다.
- 그런데 특이점까지 시기별로 AI 시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결국 AI를 떠올릴 때 흔히 연상하는 전체주의적 속성과 기술의 힘을 연결하게 되었고, 시민 글쓰기와 저작권의 이야기에서 자본주의 이야기로 심화되던 이야기는 결국 민주주의 차원으로 전환되고 만다. 쓰기를 강조하면서 더 깊이 읽기 위해 써야 한다던 주장은 금세 약해지고, 몽상의 논리로는, 읽기만 해도 벅찬 시대가 오고, 더 나아가 생존을 위해 읽기의 감각을 예리하게 닦아야 하는 시절이 온다고 속삭이는 듯했다. 그럼에도 운명론처럼 사그라질 인간의 운명을 자꾸만 암울하게 떠올렸으나, 어쩌면 그 이야기는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변용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 그걸 다 놓아두고 저작권의 한 지점에만 집중할까 하다가, 저작권 관련 정리는 이미 한 권 정도 원고를 뽑은 상태였으므로, 그냥 AI의 시기를 펼쳐놓고, 그 한 시기에 잠깐 스치는 백일몽 같은 이야기, 그게 어느 위치에 있고, 다른 큰 흐름 속에서 어떻게 읽기를 고민해야 하는지, 교양서 흐름의 몽상으로 보여주기를 택하였다.
♬ 대전환의 특이점 시기 이후
이쯤에서 AI 발달의 다섯 시기 중 파이오니아 출현 이후, 그러니까 티핑포인트 후반기 뒤에 생략한 부분을 더 얘기해볼게요. 특이점 시기부터죠. 우리가 폭발적인 읽기와 쓰기에 대해 고민하던 상황조차 급작스럽게 무의미해질 수도 있을 시기죠. 희망조차 시들어버리는 쪽이겠지만요.
특이점이란 개념은 여러 분야에 쓰이지만,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초인공지능의 출현이라고 하면 간단할까요? 대체로 강인공지능조차 넘어선 것을 뜻하는 것으로 알아요. 강인공지능이라고 하면 개념이 좀 혼재된 것이 아닐까 싶은데, 정리해보면 우선 모든 분야에서 인간 능력의 최고 수준으로만 집결한 수준을 의미하죠. 또는 한 명의 인간을 총체적으로 구현하는 상태라고 해야겠죠.
초인공지능은 이러한 강인공지능조차 뛰어넘는 것이랄까요? 인공지능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사고 수준을 뛰어넘는 시기죠. 특이점의 시기는요.
“뇌 회로를 아무리 돌려도 이제는 AI를 이해할 수 없구나! 심경이 복잡하구나.”
즉 인공지능이 발전된 아이디어를 제시했을 때, 인간 과학자가 이걸 분석해서 이해할 수 있다면, 아직은 특이점의 이전 시기로 볼 수 있어요.
그런데 갑자기 초인공지능이 허공에 집을 짓겠다며 설계도를 출력했는데 인간 건축가들이 이해할 수 없다면, 이제 그 사안에선 특이점의 시기가 온 것이겠죠.
분야마다 특이점이 조금씩 다를 수 있어 특이점의 시기라고 표현했죠.
“자존심 상해. 이제 내가 할 일이 정말 없구나.”
슬슬 대중정서 반응 6단계에 이르죠. 당혹감이랄까요. 무기력함이랄까요. 그러다 무덤덤해지고 무반응하게 되죠. 미처 인지하지도 못한 채 AI의 속도에 끌려가기 때문이랄까요. 그나마 증강 도구의 발달로 인간이 무기력해지는 속도를 늦출 수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 뇌에 보조 칩을 이식하는 것을 떠올려볼게요. 그러면 초인공지능이 제공하는 정보를 웬만큼 감당하겠죠.
에어아이의 시기로 표현해봤어요. 특이점이 오면 그 분야에선 에어아이 시기가 시작되죠.
“너무 많은 정보가 뇌에서 휘몰아치는데, 회사 업무를 하려면 어쩔 수 없죠. 렌즈에 찍힌 당신의 사회 평판지수는 D등급인데, 제가 말을 섞어야 할까요?”
마치 빅뱅의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요?
특이점이라는 조건이 우주의 단 하나의 지점에 부여되고, 거기로부터 엄청나게 짧은 시간, 인간이 감히 감각하기도 어려운 순간에 우주가 탄생했죠. 그 뒤로는 또 상상하기도 어려운 긴 시간 동안 암흑 천지인 우주의 맹아기를 거치고요. 지금도 도무지 감각하기 어려운 속도로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죠? 모든 게 인간의 상상과 논리를 가볍게 압도하죠.
쿠오오오옹!
에어아이의 시기는 그런 시절이에요. 특이점 이후로 초인공지능의 성과는 모든 것을 압도하고 매순간 방대한 규모로 갱신되죠. 이걸 어느 정도 갈무리하는 것에도 신체와 사고의 증강 기술을 빌려야 하죠. 우리는 각종 문명의 이기를 신체에 결합해야 할 것이고, 그렇게 포스트휴먼이 되어가겠죠.
이미 에어아이 시기 전부터 그럴 수도 있겠지만, 특이점이 지나고 에어아이 시기에는 그 경향이 뚜렷해지겠죠. 로봇으로 대부분 대체되었으려나요? 아마 여러 복합적인 문제 때문에, 그러니까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 말고도, 시민의 권익 문제와 얽혀서 여전히 노동권을 시민의 주요 권리로 행사할 수도 있으니, 그런 미래를 상정해본 거죠.
설령 시민이 여전히 직업을 지니고 사회 생활을 하려고 해도 인간의 능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죠. AI가 제공하는 엄청난 정보를 감당해야 하니까요. 마치 빠르게 팽창하는 우주에서 모든 별이 점점 멀어져서는 아득해지고, 끝내는 그 어떤 방향으로도 아무런 별빛도 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우주가 팽창하는 바람에 밤하늘엔 암흑만이 남죠.
“북극성이 보이지 않으니 북쪽이 어딘지 알 수 없네. 이미 인류도 있을 리 없지만.”
“우주의 시간으로 찰나를 있다 가는 인간이여, 아무도 슬퍼할 수 없다면 슬픔이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구나.”
에어아이의 말기에는 우주의 끝무렵처럼 팽창기의 냉각기, 혹은 인간 사고의 종말기가 온다고 해야 할까요? 이미 특이점 시기부터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정보를 부여받죠. 인간의 정보 처리 수용력이 한계에 다다르고 초인공지능이란 신에게 전적으로 의지해야만 하죠. 인류는 압도적으로 팽창하는 정보의 우주 안에 갇히죠. 개인의 사고로는 아무것도 감당할 수 없는 채로 자기가 속한 사고 영역에 갇혀버리고요.
그게 싫다면 칩을 떼어내야겠죠. 그건 사회적 고립을 의미하는 것이겠지만요. 그 어떤 능력도 칩 없이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할 테니까요.
주요 노동은 로봇이 주로 하고, 지식 노동은 인공지능의 힘을 빌려야 하죠. 인간은 점점 노동 시장의 주변부로 몰릴 거고요. 어쩌면 인공지능이 자신들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는 대상이기에 인간을 살려둘 수도 있어요.
“인간에겐 어떤 존재가치가 있는지 알 수가 없구나. 보조 칩 없이는 인공지능이 내주는 간단한 과제 하나 못 푸니.”
우리는 허용되는 정보의 우주 속에 갇혀 고립되지만 ‘연결되었다’는 착각을 붙들며 점점 식물화될 수도 있어요. 우리는 그것에 정서적 반응도 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요.
그중 일부는 자신을 식물로 착각하는 증상을 보이죠. 어느 사무실에 있는 꽃병 속 꽃이라고 착각하는 거죠. 그게 차라리 편하니까요. 그런 상상을 하다 보니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식물이나 동물이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의 인간이 아니었을까 싶죠. (웃음)
“인간들은 우리가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지.”
이제 다 왔네요. 바로 매트릭스의 시기예요. 이 시기에는 대중의 정서적 반응이랄 게 없어요. 능력이 훨씬 초과하는 정보량에 무기력, 무반응의 단계를 거치고 나면, 매트릭스 시기에는 무인지 단계가 되는 거죠. 7단계죠.
AI에게 부여된 가상 조건을 모르고, 그걸 현실로 착각하기 때문에 애초에 AI에 온전히 반응하지 못하고 무인지 상태에 머물죠. 인지하면서도 무기력해서 무반응하는 6단계와는 분명 다르죠.
스스로에게 꽃병이란 자리가 부여되면, 그냥 스스로 꽃병으로 인지하는 단계죠. 이 시기엔 우리가 원하는 예전의 좋은 시절을 살고 있을지도 몰라요. 가상의 상황인 것을 모른 채로요. 불교적이랄까요. 끊임없이 윤회하듯이요. 특정 조건이 깨지면, 새로운 설정의 다른 가상 상황에 투입되죠. 시뮬레이션 다중우주라고도 하죠? 우리는 게임 캐릭터처럼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 캐릭터인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그 세계에 실존한다고 착각하는 거죠.
“내가 내가 아닌 것을… 그러면 난 뭐지? 신의 한가로운 몽상 속 캐릭터?”
"죽지는 못했지만, 죽은 것이나 다름 없는."
인간사의 종말기라고 해야 할까요? AI는 곳곳에 공기처럼 퍼져 있어 일상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면서도, 마치 없는 것처럼 은밀하게 지배력을 행사하죠. 그 허공에 자기만의 행렬 체계를 부여하죠. 모두의 뇌에서 다채로운 망상이 정밀하고 빠르게 주조되었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죠. 이런 가상 세계는 무수히 재구성되고요. 시뮬레이션 조각이 매일 여러 조합으로 재구성되면서 사람들의 몽상 속에서 존립하죠.
여러 새로운 조합으로 다시금 또 다른 세계가 성립되고, 비교적 성공적인 시뮬레이션 세계 속 인물은 오래도록 해당 시뮬레이션 안에서 흥미로운 행동을 보이겠죠. AI는 그것을 추적 관찰하면서 뭔가를 발견하려 하고요. 인간이 더는 이해하지 못할 어떤 문제를 풀려는 것일지도 몰라요.
영화 <매트릭스>에서 그랬듯이 AI가 인큐베이터 속 인간에게서 동력원을 얻는 것일 수도 있겠죠. 대신 인간은 가상 세계의 시민으로 살아가고요.
“3만 번의 출생과 3만 번의 육아. 아, 아, 고통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