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누구나 하나쯤은 쓸 소재가 있다

산문

by 희원이

[목차: AI와 독자]

◑ Part 1. AI와 창작

(생략)

◑ Part 2. 작자에서 독자로

♬ 밀려난 예술가와 아마추어 예술가

♬ 아직도 우리가 해야만 하는 것

♬ 그럼에도 우리에게 남은 것, 놀자와 살자

♬ 인생에서 누구나 하나쯤은 쓸 소재가 있다

♬ 자기 것과 남의 것을 구별하여 깊이 읽어내기

♬ 대전환의 특이점 시기 이후

♬ 읽을 수 없는 너무 많은 읽을거리

♬ 읽기를 넘어 믿기, 때로는 미끼

◑ 에필로그


[소개글]
- 놀이글 스타일을 적용한 몽상적 산문입니다. (생략, 더보기)
- 이미지 모두 고흐의 작품입니다.

- AI의 도움으로 상향 평준화된 글을 언제든 뽑을 수 있게 된다면, 쓰기 자체는 특별한 재능이라 보기 어려워진다. 더 깊이 읽기 위해 쓰기를 해야 한다는 취지의 논리도 무색해재진다.
이럴 때는 읽기로 정면대결하는 수밖에 없다. 자신의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여러 아이디어를 출력해놓고, 그것을 읽는 셈이다. 그때 어떤 글이 가치 있는지도 자기 나름대로 기준이 서야 한다. 그조차 읽기 전용 AI가 추천해주겠지만, 결국 마지막에 그것을 느끼곤 선별하는 결정은 인간이 내릴 수 있다. 종합적인 객관적인 판단을 참고하되, 끝내는 자신에게도 와닿는 것으로.





IMG_2313.PNG → 서술자 희원이, 소설가 지망생


♬ 인생에서 누구나 하나쯤은 쓸 소재가 있다


물론 AI 시대에 인간 창작자만의 독자적인 개성을 유지해야 하는 것도 아니죠. AI를 활용한 증강이 더 나을 수도 있어요. 뭔가 조금씩 양상은 바뀌겠죠. AI가 있다면 시민 예술가라고 해서 굳이 짧고 단순한 글을 권장할 필요도 없죠. 장르도 상관없고요.

AI의 도움을 받는다면 기존 장르의 문법을 반영한 채 프로 작가의 작품에 버금가는 좋은 작품을 뽑아낼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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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만 했는데 제 인생을 정리할 책을 하나 쓰고 싶기는 해요. AI 사이트에 연간 회원으로 등록할까 하죠. 글을 제대로 쓰려면 성능이 3등급 정도는 되는 게 좋으니까요. 기업에서 특등급 AI를 공개해주진 않죠. 지들이 돈 벌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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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단순히 역량이 부족해서 놀이하는 형식의 글쓰기나 호환도가 높은 느슨한 형식으로 에세이를 택하게 되는 건 아니겠죠. AI로 소설이나 드라마 대본을 쓰려면 쓸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보다는 인간만이 할 수 있을 예술 방법론을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AI가 장악하지 못할 미덕을 찾는 가운데 과정과 놀이의 형식도, 삶을 경험하는 에세이도 드러난다고 했죠.


우리가 인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버텨야 하는 과정에서 성립된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놀이하는 형식이라든가, 에세이 형식 말이에요.

조금은 절박한 심정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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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에도 사람이 없어지지 않는 한, 사람의 삶이 사라질 수는 없죠. 누구에게나 찾으려 한다면 그의 인생에서 하나쯤은 쓸 만한 소재가 있다고 믿어요.

그걸 굳이 다 쓸 필요가 있냐는 자문에 대해선 딱히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죠. 그래서 조금은 거창하게 포장해서 ‘미시사적으로 개인들의 기록 연대, 시민의 지성적 성장을 위한 글쓰기 참여 문화’를 말하기도 했지만, 그냥 쓰고 싶으면 쓰는 것이란 생각이 솔직하죠.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이에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 알려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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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지금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얼마 안 있으면 누군가 쓰려 할 때 AI의 도움을 받아 상당한 수준으로 창작하는 것이 가능해보이니까요.

이런 시대에는 쓰기 자체가 엄청난 능력은 아닐 거예요. 난공불락으로 여길 필요 없이, 쓰려면 쓸 수 있는 가벼운 여흥거리가 되겠죠.


“술 한 잔 해서 기분도 좋은데, 장편소설이나 하나 써볼까. (딸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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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글이 낭비되는 시절에 좋은 글을 쓰려면 그것을 알아챌 안목이 필요하죠. 결국 읽기를 해야 하고, 감상과 비평을 치열하게 해보는 경험이 중요해지죠. 쓰기가 쉬워지면서 결국 시민이 참여하는 글쓰기 문화의 진짜 목적, 최후의 관문이었던 ‘읽기의 향상’이 1차 관문이 되고 말죠. 서툴게 쓰더라도 쓰기를 시도하는 문화라는 게 약간 무의미해질 만큼 AI가 좋은 출력물을 뽑아줄 테니까요.


애초에는 쓰면서 읽기 능력을 향상하려는 것이었는데 말이죠. 어설프게라도 쓰다 보면, 쉬워 보이기만 하던 작품이 얼마나 내공이 깊은지 깨닫게 되고, 보이지 않던 것을 읽게 되는데, AI가 이미 완성형으로 글을 써버리니, 이게 조금 무의미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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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력 속도도 빠르고, 여러 버전을 다 읽는 것에도 시간이 꽤 걸리네요.”


결국 읽기로 정면대결 하는 수밖에 없죠. 항상 수준 이상의 질이 담보되는 글을 마주할 테니까요. 못 쓴 글과 잘 쓴 글을 비교하는 게 아니라, 꽤 수준 높은 글 중에서 어떤 글이 어떻게 가치 있는지 알아차려야 하죠.

쓰는 게 쉬워지니, 몇 번이고 쓸 수 있지만 그게 어떤 식으로 의미 있는지 모른다면 좋은 글을 선별할 수 없죠. 좋은 글이 뭔지 알아먹어야 AI에 적절히 피드백을 해줄 수 있으니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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