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 수 없는 너무 많은 읽을거리

산문

by 희원이

[목차: AI와 독자]

◑ Part 1. AI와 창작

(생략)

◑ Part 2. 작자에서 독자로

♬ 밀려난 예술가와 아마추어 예술가

♬ 아직도 우리가 해야만 하는 것

♬ 그럼에도 우리에게 남은 것, 놀자와 살자

♬ 인생에서 누구나 하나쯤은 쓸 소재가 있다

♬ 자기 것과 남의 것을 구별하여 깊이 읽어내기

♬ 대전환의 특이점 시기 이후

♬ 읽을 수 없는 너무 많은 읽을거리

♬ 읽기를 넘어 믿기, 때로는 미끼

◑ 에필로그


[소개글]
- 놀이글 스타일을 적용한 몽상적 산문입니다. (생략, 더보기)
- 이미지 모두 고흐의 작품입니다.

- “큰 마음 먹고 써보려 했더니, 이제는 그냥 읽으라네요.”
- 더 수준 높기 위해 읽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읽어야 하는 시대에 독자로 산다는 것은 숙명적이다. 우리는 사실 한 번도 독자가 아닌 때가 없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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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을 수 없는 너무 많은 읽을거리


티핑포인트와 특이점의 시기를 지나면서부터, 우리에게 단 하나의 정체성이 있다면 그건 독자가 아닐까 해요. 사실 원래 우리는 독자로 규정되죠. 사회적 관계를 맺으면서 우리의 의견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라도 문화의 통념을 읽는 과정을 거쳐야 하죠.

우리 독자들이 촘촘히 연결된 사회의 네트워크로 펼쳐진 무수한 읽기의 대상물을 읽는 것 말이에요.


“정보 수용자, 감상자라고도 할 수 있지만 결국 감각이든 이성이든 사고를 통해 언어화하면서 그 반응을 구체화해나가는데, 그러니 읽기나 쓰기의 차원에서 독자라고 표현해도 무방하죠. 앞서도 말했듯이 홀로 서서 정보를 읽어야 하는 독자이기도 하고요.”





IMG_2346.PNG → 서술자 희원이, 소설가 지망생


이러한 독자들이 성장하려면 더 깊이 읽기 위해 써봐야 한다고 믿었죠. 독자가 지성적으로 성장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보았던 거죠. 그리고 AI의 티핑포인트 시기에는 독자가 작자가 되는 것이 일상적일 수 있고, 이럴 때일수록 제대로 읽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보았던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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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는 AI의 도움 덕분에 웬만큼 일정 수준에 오른 작품이 대다수죠. 모든 게 일정 수준 이상이 된다는 것도 과다하면 난감해진다고 해야 할까요. 뭐가 더 소중한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요?

예전에는 정말 읽을 수 없는 수준의 정보가 널려 있었지만, 이제는 AI의 도움으로 상향 평준화의 흐름을 보이죠.


“이제 밤하늘에 있는 별은 웬만큼 다 파악했어요. 혜성은 아직 안 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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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지금 시대에도 그런 면이 있어요. 유튜브에서 압도적인 수준의 실황 재즈 공연, 쏟아지는 클래식 신보만 보아도 어느 순간부터는 음악으로 귀를 씻듯 음악을 확인하는 상황에 이르는 것처럼요. 간혹 이채롭다 싶은 작품에만 귀를 기울이지만, 그런 작품조차 유사한 다른 작품이 쌓여 있다는 것을 곧 알게 되죠.
좋은 작품조차 너무 많으면, 감사하면서도, 그 작품들을 귀로 흘려 보내는 느낌으로 듣게 되죠.”

“그러고 기록장에 무엇을 들었는지 적죠. 간혹 두 번 적힌다면 그 작품은 제게 통한 것이죠. 정보 수용력의 한계 때문에 오래 두고 깊이 읽는 대신, 빠르게 훑어야 하죠.
아직은 일반 감상자 계층이 창작을 하지는 않지만, AI의 티핑포인트 시기에는 이마저 가능해지니, 더 방대한 분량의 상향 평준화된 작품을 만나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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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음반 감상량, 독서량 등 정보 수용량을 급작스럽게 늘리긴 어렵죠. 결국 독자로 점점 규정되어가면서도, 우리는 쓰기 능력과 AI 생산 능력에 비해서 독서 능력은 정체된 상태로 약간의 향상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죠.


바로 창작의 대중화에 걸맞은 수용력의 확장이 이뤄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뇌에 칩이라도 장착해야 하겠죠. 증강의 사이보그화를 위해선 사회적 압박도 필요하다고 봐요. 사회적 압박이 없다면 칩 이식을 피할 것 같거든요. 무슨 부작용이 있을 줄 알고요. 단순히 예술을 감상하려고 증강의 시도를 하기보단, 조금 더 지난 시점에 사회적 생존을 위해 칩을 뇌에 장착할 시기가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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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너무 많은 작품이 쏟아지면서 ‘모두가 글을 쓴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게 되죠. 누구나 쓸 수 있다는 사건이 처음엔 혁명적이겠지만, 그냥 글 쓰는 일이 그리 대단치 않은 일이 되겠죠. 다른 예술 분야라고 몇몇을 제외하곤 크게 다르지 않고요. 누구나 하면 혁명보다는 숨쉬기처럼 되어버리죠. 중요하지만 중요함을 못 느끼게요.


[중년 시절 케이, 전 AI예술 감수팀장]
“나 직업 바꾸어야 한다는 말을 지금까지 대하 드라마로 하신 거네? 이러려면 처음부터 <취직을 해라, 예술 말고> 이러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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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마음 먹고 써보려 했더니, 이제는 그냥 읽으라네요.”


오히려 독자라는 원초적 정체성이 새삼 더 부각될 수 있어요. 모든 것을 치열하게 읽어내며 거기서 정치적 결단을 하는 일 말이에요. 독자의 일을 없애려 해도 없앨 수 없죠. 인간이 살아가는 한에요.

결국 그것만이 의미 있게 돼요. 그건 우리의 삶과 직결하는 것이고, 사실 쓰는 것도 읽기 위한 것이었음을 고려할 때 우리는 압도적 정보량 앞에서 ‘그럼에도 우리가 읽어야 하는 이유’를 찾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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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을 읽고 사회적 의미를 읽는 것이요. 그리고 놀이를 하든, 토론하고 생각을 공유하든 하는 거죠. 그것으로 예술이라는 직업을 지켜나가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으로 놀고, 예술적으로 읽는 일을 순수하게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하는 거죠. 어떤 경우든 우리는 어쨌든 읽을 테니까요.

그때도 잘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원래 창작자여야 했던 사람들일 수도 있겠죠.


“그러니까 취직해서 돈 벌고, 글쓰기는 재능 기부 하라는 거네요? 지금도 그러는 거나 다름 없지만요. 서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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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정보에 고마운 마음이 사라질 때쯤부터면 이런 변화가 감지되지 않을까요? 풍요 속에서 허덕일 때부터고요. 팔리지 않는 준수한 작품이 즐비할 시절이겠네요. 쏟아지는 작품들로 넘쳐날 때, 독자는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을 맞이할까요?

유감스럽게도 여전히 상황은 좋질 않죠. 당당하게 독자의 승리를 선언하지 못하고, 더 깊고 오래된 패배의 기억 속으로 침잠할 것 같아요.


티핑포인트 시기가 지속된다면 조금 괜찮은 상황을 기대해볼 수도 있겠죠. 어쩌면 이때가 AI를 규제 가능한 한계선일지도 몰라요. 인간은 이미 아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겠지만요. 그렇게 극단적 변화를 맞이할 기점이 다가오죠. 바로 특이점이요.

만일 현실을 순응적으로 수용한다면 위험에 무감각한 채로 당대의 풍요를 즐길 수도 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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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핑포인트 시기에는 강인공지능에 적응하느라 힘에 부쳤는데, 특이점 시기가 오면 상대가 초인공지능이잖아요. (웃음) 아시잖아요, 다들.

초인공지능의 시기를 영화로 보면 <터미네이터> 로봇이 등장하던 시대잖아요. 그때는 인간이 AI의 지능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하던데, 그게 어떤 건지 궁금하기는 해요. 만일 공중의 집 짓기, 만 원으로 화성 가기, 이런 성과라면 당혹스러울 것 같죠. (웃음)


“초인공지능을 이해하려 하기 전에 내가 죽었어야 할 텐데 말이오. 이미 죽어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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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특이점을 훌쩍 지나면 상황은 더 나빠지겠죠. 에어아이 시기잖아요.

우리는 쏟아지는 정보를 수용하지 못하는 영역이 다시금 점점 늘어나고, 우리의 전문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지점에서도 바보가 되는 순간이 다가오는 거죠.

예전의 독자가 ‘정보의 홍수라면서 정보 민주주의의 단점을 명렬히 비판하는’ 독자였다면, 이때는 생존을 위해 읽어야 하는 독자인 셈이죠.


이 시기엔 읽기가 생존의 필수품이죠. 이때 칩을 뇌에 장착하고요. 정보 수용력을 갖추고 있어야 취직이라도 할 테니까요. 홀로 읽을 수 없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나 싶지만, 초인공지능이 생산한 정보를 조금이나마 읽고 박자에 맞춰 반응하려면 어쩔 수 없죠. ‘인지 능력의 비약적 향상’으로 포장될 수도 있어요.

인간에게 예술 창작이 무엇인지 묻는 때를 넘어, 인간에게 읽기란 무엇인지 묻는 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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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것이 인간다움을 상징하는 때가 온다니요? 너무 슬프잖아요.”


사실 자신의 창작 텍스트를 적절히 선택하는 것을 넘어서, 정보수용자로서 AI 시대에 방대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비판적으로 읽는 능력은 중요하죠. 우리는 소비자로 규정되고, AI 작업 과정의 부속품처럼 통제되기도 하고요. 지금도 가끔은 기업의 부속품처럼 통제되듯이요.

이런 상황에서 작자로서 정보 생산자의 역할을 어느 정도 담당할 수도 있지만, 큰 흐름에선 여전히 정보수용자, 각 개인으로서 독자로 규정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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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신 앞에 선 단독자인데, 살아서도 독자라네.”


사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잖아요. 정보화 시대에 우리에게 부여된 원초적 정체성이 있다면 독자인데, AI 시대엔 더더욱 그렇죠. 인간은 독해의 바다에서 힘겨운 사투를 벌이겠죠.

정보가 인류를 압도할수록, 점점 에어아이의 시기로 진입하게 되고요. 특이점을 지날 때 칩을 달았을 텐데, 그것으로도 한계가 오고 말죠. 점점 정보 수용력에 버거움을 느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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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규정된 위치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 방대한 정보를 어찌할 줄 모르게 됩니다. 마치 지금 전문 영역과 비전문 영역을 나누는 상황이 더 강해지는 것인데, 모르는 범위가 급속도로 넓어지고 자기 전문 영역에서도 바보가 되는 느낌을 받아요.

처음에는 칩을 통하여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겠지만, 더는 능동적으로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들이 우리를 흘러가는 것이죠. 마치 정보가 지하철역을 지나듯이요.


[노년 시절의 케인, AI예술 감수팀에서 프리랜서로 활동]
“롤러코스터 타는 것 같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벌점 무서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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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자 희원이, 소설가 지망생]
“우리는 점점 소모품이 되어갈 수도 있는데, 이거 사실 현대인에게도 통하는 말이죠. 그때에는 정보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을 넘어서는 증강이 필요하죠. 뇌에 칩을 박는 것만 생각했는데 다른 시도도 있겠죠. 조금 더 안전한 것으로요.
하지만 압도적인 정보를 받아들이려면 뇌에 칩을 장착하는 게 효율적이었죠. 변조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도요. 무엇보다 증강을 위해 대기업에서 선호하는 방식에 맞춰야 했어요.”

“부작용이 있지만 위험성은 축소되었죠. 보통 사람들은 혜택을 누리기 위해 대기업 입사를 위해 경쟁을 선택하죠. 인간은 과다 노동에 시달리고 매일 컴퓨터처럼 업무를 처리해요.
로봇과 경쟁하면서, 인간의 연약한 신체 능력을 견뎌가며, 이해할 수 없는 사안을 칩에서 지시하는 대로 처리하죠. 그래도 대면 업무를 하려면 웃는 표정도 필요하고 그건 인간이 잘하는 일이었어요. 감정 기복 탓에 로봇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요.”

“거기서 일하던 노년 시절의 케이는 결국 뇌의 칩에 부작용이 생겨 환각을 보기 시작했고, 회사를 그만둡니다. 사실상 해고당하죠. 신형 칩의 문제였는데, 납품한 업체에선 위로금을 지급하였고, 언론을 으레 그렇듯 사소한 일로 넘기고 보도해주지 않아요.
그는 정신병원에 있으면서 약간의 위로금을 받는데, 칩을 뺀 그때가 가장 여유롭죠. 정보를 이해하지 못해 바보가 된다는 느낌 자체를 모르는 대신, 세상에서 소외되지만요.”

“그는 병원 안 정원의 풍경을 구경하다가 AI의 도움 없이 시를 습작하기 시작했죠. 그 시기는 AI가 직접 생산하는 예술을 감상해도 충분한 시대였으니, AI의 도움을 받아 창작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었어요.
그냥 더 잘 퇴고된 자기 작품을 보고 싶은 개인의 바람 때문에 수요가 있었지만요. 지망생끼리는 그런 작품을 돌려봤거든요.”

“하지만 그에겐 그마저도 부질없어 보였죠. 자기 만족을 위한 것인데 굳이 AI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었던 거고요. 그때만큼은 약간 행복합니다. 시인은 그의 어렸을 적 꿈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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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에 칩을 장착하고 AI의 정보를 수용하다 보니, 우리는 도출되는 매뉴얼에 맞춰 일을 할 뿐이에요. 업무를 처리하는 수행 기계인 셈이죠. 일에 몸이 지칠수록, 생각하기도 싫어지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점점 독자로 홀로 남아요.

동시에 독자이기에 어떻게든 그 고립을 빠져나오려고도 하고요. 뭔가를 알아내서 말이죠. 읽는 것으로 착각하는 독자가 되지 않기 위해 읽기의 늪, 권태로운 읽기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면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믿어요.


“물론 이러한 반발 상황 역시 AI로선 예측하고 있겠죠. AI로서도 시스템에 저항하는 불순 세력을 가만히 두고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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