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킹걸 / 부킹걸도 주희처럼

소설

by 희원이

[목차: 한여름에 우주]

제1장. 그때 우주

제2장. 우주의 부재

제3장. 우주에 하나


[소개글]
- 이 성장소설은 스냅사진처럼 짧게 찍은 어떤 풍경을 통하여 이야기를 진행한다. 콩트처럼 운영하지만, 내용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구상하였다.

- 부킹을 시도했고 진웅의 말대로 부킹은 성공한다. 종훈은 부킹걸 하나와 바깥으로 빠져나온다. 솔직히 하나는 예뻤지만, 주희를 닮은 모습이 많아서 종훈으로선 탐탁지 않다. 그리고 아버지 문자로 약간 어수선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했고, 많은 것이 변했다. 종훈의 삶엔 와타나베란 이름도 끼어든다.





♬ 부킹걸

나는 부킹걸의 테이블을 슬쩍 훔쳐보았다. 부킹걸이 친구들에게 작업성과를 말해주는 듯했다.

“그나저나 혁이 이 자식은 똥 만들고 오나?”

나는 바나나 조각을 오물거렸다.

“그런데 너 왜 그렇게 기혁이 때문에 안달이냐?”

“그냥……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서. 그뿐이야. 같이 느끼는 게 많을수록 가까운 거 아닌가?”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꼭 이런 것까지 공유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비용 문제도 만만치 않을 듯했다. 나라면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우리 어르신 다른 건 몰라도 돈은 꼬박꼬박 챙겨주잖아. 그러니 부담 느끼지 마라. 대신 연락 좀 하고 살자. 얼마나 섭섭했는지 아니?”

진웅은 웃으면서 내 부담을 덜어주려 했다. 그의 세심한 노력 덕분에 돈에 대한 부담은 어느 정도 사라졌다. 하지만 부담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치고 있다는 느낌. 나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휴대폰을 열자 부재중전화 두 통과 음성문자 한 통이 남겨져 있었다. 기혁이 화장실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진웅은 기혁이 돌아와 앉자 기혁을 설득할 요량으로 맥주로 입안을 적셨다. 입안이 매끄러웠으니 제대로 말의 탄알을 장전했을 것이다. 나는 일어섰다.

“어디가?”

“화장실.”

“넌 오케이지?”

“그렇지, 뭐.”


아버지가 남긴 음성메시지였다. 방금 도착하여 전화했는데 내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다시 듣기 위해 ‘#’자를 누르고 화장실 안쪽으로 들어가 양변기에 앉아버렸다. 주기적으로 쿵쿵거리는 중저음이 울렸다. 화장실 밖의 격렬함이 전해졌지만, 전화에 담긴 목소리를 듣기에 방해되지는 않았다. 연락 줬으면 좋겠다는, 내일 만나면 소개해줄 사람이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나는 화장실을 나섰다. 아버지와 관련된 소식은 늘 내 기분을 가라앉혔다. 그렇지만 오늘 이 순간만큼은 음악이 너무 신 난다. 김현정의 댄스곡을 들으니 내 어깨가 절로 흔들렸다.


솔직히 긴장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나름대로 순진해서 주희에게 차인 후로는 여자 친구를 사귄 적 없으나, 이젠 나이에 대한 예의라고나 할까, 진지하고 소중한 연애 경험 한 번쯤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음성과 문자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잠시 잊기로 했다. 부킹걸이 애들을 데리고 우리 자리에 앉는 게 보였다.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환기했다. 진웅의 주의대로, 실수로 몸을 긁었다간 부킹을 다 망칠 수도 있었다. 다행히 격렬한 분위기에 집중하면서 아직은 심하게 가렵지 않았다. 자리에 앉았을 때 진웅은 기혁을 소개하고 있었다. 어떻게 설득했는지 기혁은 고분고분했다. 부킹걸들에게 어려 보인다고 주민등록증을 까라는 말만 안 하면 호구조사를 하든, 입을 다물고 있든 아무 상관 없었다.

“우와, 서울대생이에요? 서울대생도 사람 같이 생겼네요.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었는데.”

지윤이라고 소개한, 단발머리에 단정한 외모의 깜찍한 부킹걸이 신기한 듯 기혁에게 묻는 사이 웨이터가 테이블로 다가왔다.


진웅은 J&B세트를 시켰다. 기혁은 쑥스러워하면서도 흡족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더운지 연신 손부채질하며, 자신을 현정이라고 소개한 부킹걸은 분홍빛이 많이 들어간 알록달록한 나시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웨이터에게 물도 갖다 달라고 말했다. 눈이 살짝 풀렸고 가끔 실없이 웃었다.

“웃는 모습이 예쁘시네요.”

종훈은 자신을 소개하면서 현정에게 말했다. 현정은 살짝 꼬인 말투로 초점이 흔들리는 목소리를 끄집어냈다. 목소리만 들어도 이미 그녀가 제법 취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진웅이 그녀를 폭탄으로 찍었다는 걸 느꼈다. 다행히 얼굴이 못난 건 아니었다. 분위기를 망친 점에선 분명 폭탄이었지만, 아니, 아니다, 진웅의 눈높이를 고려한다면 그녀는 심각한 수준의 폭탄일 수 있다.

처음에 우리에게 합석을 제의했던, 표정에서부터 유혹적 매력이 철철 넘치던 부킹걸이 자신을 하나라고 소개했다. 그녀의 표정은 다양한 상상력을 자극했다.

하지만 고쳐 생각해기로 했다. 자신의 성적 매력에 자신 있는, 아직까지는 한 번도 처절한 실패를 겪지 않은 오만한 표정으로 보이기도 했다. 주희를 조금 닮은 듯해서 반감이 들었지만 예쁘긴 예뻤다.


진웅은 의외로 그녀에게서 거리를 두었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본다는 속설이 맞을까. 그들은 탐색전은 벌이고 있었을 것이다. 나와 기혁은 그들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 속에서 파생할 부산물 중 좋은 떡고물만 받아먹으면 되는 것이다.

실없는 농담이 몇 마디 지나갔다. 잽을 날려본 것이다. 그들은 적당히 거리를 두며 잽을 여유롭게 피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실없는 농담을 그쳤다. 이쯤 되면 정확한 상황을 알 길이 없다. 분명한 건 진웅과 부킹걸의 얼굴에서 경계하는 표정이 사라지고, 호의적인 태도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에 그렸던 구도가 바뀌었다는 걸 조금 후에야 알았다. 진웅이 거짓 일화를 풀기 시작했는데, 나를 애절한 순수파로 만들기 위한 그의 말발은 참으로 놀라웠다.

주희에 관한 일화는 부산에서 500km 떨어진 서울로 급히 올라와야 했을 뿐 아니라, 2년이 넘는 시간을 기다려 1999년 봄 서울 강남에서 일어난 슬프고도, (양주세트가 나왔다,) 환상적인 러브스토리로 변해 있었다. 나의 여인은 비련의 여주인공이었는데 앞을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가난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어렸을 때 심하게 앓았는데 부모가 돈이 없어 그녀를 병원에 데려가지 못했다. 그녀는 눈을 잃었지만 대신 비단결 같은 마음을 지녔던 것이다. 그런 그녀를 중학교 때부터 사모하던 부잣집 남자아이가 있었으니 그 녀석이 바로 나였다. 이쯤 되면 드라마가 허구인줄 알면서도 드라마를 끊지 못하는 것처럼 꾸며낸 이야기인 줄 알면서도 재미있게 듣고 있었다. 그만큼 진웅의 입심은 실로 대단했다.

그런 슬픈 일을 겪은 친구의 생일을 외로운 날로 만들지 않게 하려고 이곳에 왔다고 마무리할 때 나는 피곤해서인지 하품이 나오려 했고, 그래도 하품을 참았고, 살짝 눈물이 맺혔다. 진웅은 이를 놓치지 않고 나를 잠시 바라봤으니 듣는 이들의 시선도 쏠렸다.

“농담이 반이지만 진담도 반인 이야기였습니다.”

갑자기 드라마가 실제 모델이 있다며 시청자에게 진실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는 대목이었다. 그 유력한 실제 대상은 나일 것이니 갑자기 이미지가 격상했다.

나는 순간 감탄했다. 사람들을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웃기면서 깔끔한 여운을 남기는 저 센스! 거짓말을 거짓말처럼 말한 후 진실을 베일에 가려 궁금증을 유발하는 탁월한 신비화 전략.

서서히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 부킹걸도 주희처럼

“오빠, 차 있어? 요샌 오토바이 별로더라.”

부킹걸이 진웅에게 묻는 것을 보고 있자니 주희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랬다.

부킹걸은 주희를 닮았다. 하는 짓이 꼭 그랬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닮은 점들만 자꾸 보였다. 조금 전 질문할 때 보였던 눈빛과 어조마저도 바로 주희의 것이었다.


재수 시절의 반복적이고 피곤한 일상을 지내다 보니 주희에 대한 미움과 그리움은 서서히 옅어져 갔다. 엄마는 아버지에게서 받은 위자료로 우선 새 아파트로 이사했다. 48평은 둘이 살기엔 너무 넓었다. 엄마는 방 한 곳을 서재로 꾸몄다. 방 하나씩 갖고 서재를 만들고도 방 하나가 남았다. 엄마는 그 방에 간단한 짐만 놓아두고 쓰지 않았다. 나는 그런 엄마가 언뜻 이해할 수 없었지만 친척이나 손님이 오면 내줄 방으로 염두에 뒀으리라 생각했다.

자고 가는 손님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외엔 온 적 없지만 예전처럼 안정된 것은 분명했다. 마음은 평온했지만 뭔가 결핍된 면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서 그걸 채우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지 않을 때였다. 자칫 지금 누리는 평화마저 깨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가급적 사람들과 교제하는 걸 자제하고 공부에 전념했다.

가끔 주희나 그 사람(아버지)이 생각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격렬하게 타오르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고소취하조건으로 그에게 나를 한동안 찾지 않을 것을 요구했다. 그는 가끔 나를 만나고 싶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단호하게 거절했고 나 또한 아버지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비어있는 방을 보며 허전하긴 했다. 아버지의 돈으로 마련한 48평의 아파트, 예상치 못한 생활로 내몰린 당혹감, 창문을 열고 길가를 바라보는 버릇 등 그와 관계된 흔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와타나베 씨의 방문이 그런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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