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가슴이 아려 / 어머니의 성, 아버지의 이름

소설

by 희원이

[목차: 한여름에 우주]

제1장. 그때 우주

제2장. 우주의 부재

제3장. 우주에 하나


[소개글]
- 이 성장소설은 스냅사진처럼 짧게 찍은 어떤 풍경을 통하여 이야기를 진행한다. 콩트처럼 운영하지만, 내용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구상하였다.

- 종훈은 부끄러운 슬픔과 용서에 관하여 생각한다. 진웅은 무언가 아버지에 관해 말하려다가 취중에도 말을 삼킨다. 진웅은 많이 취했고, 술자리를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 마침 엄마에게서 문자가 온다. 친척에 관한 문자였다. 다음날, 종훈은 공항으로 마중나가야 했기에 진웅의 집에서 잘 순 없었다.





♬ 어쩐지 가슴이 아려

어쩐지 가슴 한구석이 아린 것도 같았다. 애써 외면하려 하지만 그럴수록 뚫린 가슴이 큰 구멍을 드러낼 듯했다. 한여름의 스치는 바람이 구멍을 통과하는 상상을 했다. 가슴이 무척 시릴 것이다. 만날 따뜻한 곳에서 안식하던 녀석이 밖의 바람을 맞는다면, 어휴, 비록 한여름의 바람일지라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풍, 맞을 것이다. 풍 맞고 비뚤어진 가슴이 투덜대면 정말 피곤할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누군들 자신이 나쁘다는 걸 인정하고 싶겠는가?

나는 담뱃갑을 운동기구처럼 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하다가 무의식중에 놓친 것처럼, 자연스럽게, 툭, 떨어뜨렸다. 담뱃갑에 사는 고양이가 온몸을 구긴 채 나를 올려다볼 것이었다. 트위스트 춤을 격렬히 추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나는 짐짓 모른 채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숨 쉬었다. 용서?

생각하다가 한숨 나왔다.

“동감이야, 수현이 말.”

진웅은 한 모금의 연기를 뻐끔거리며 말했다. 게슴츠레한 눈이 자꾸 작아졌다. 긴 숨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하늘 아래 한 점 부끄럼 없는 사람이 있긴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지금의 내 고민을 털어놓게 되더라도 덜 비참해지고 싶었다. 나를 한심한 눈빛으로 보지 않을 누군가가 필요했다. 순간 고해성사를 생각한 적 있었다. 왜 영화 보면 신부님께 고백하는 장면 많이 있질 않은가.

하지만 나는 천주교인도 아니었고 설령 교인이었더라도 과연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할 수 있었을지도 알 수 없었다. 신에게 고백하는 것임에도 누군가에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예를 들면 우리 아버지 말이야…….”

진웅은 말을 흐렸다. 그의 말은 어쩐지 동지를 찾고 싶은 애절함마저 묻어있는 듯했다.

하나의 말처럼 부끄러운 슬픔을 느낀다는 것은 오로지 홀로 견뎌내는 과정처럼 보였다.

‘그런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힘내.’라고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그건 내 몫의 말 같지는 않았다.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홀로 겪어야 할 것이었다. 그저 그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뿐이었는데, 그의 느낌이 내게로 옮겨오는 듯했다. 그리고 내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관한 상념을 자꾸만 내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오히려 이상하잖아? 아버진 예전부터 잘 나갔어. 그러니 그 정도야 한 번쯤 했을 수도 있을 거야."

진웅을 머뭇거리게 했던 말마디가 슬며시 밀려나왔다. 그러고는 그것을 깨달았는지 얼른 말을 돌렸다.

“아, 너무 취했다. 졸린다, 졸려. 담배! 담배 어디로 사라졌냐?”

“밑으로 떨어졌어.”

나는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눈은 아래로 향하지 않고 내 손가락을 향했다. 그는 손가락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시선을 고정했다.

“아래로 떨어졌다고. 화단으로 말이야.”

“어, 그러면 안 되는데. 저번에도 그랬다가 주인아저씨가 화냈는데.”

그는 걸어서 계단 쪽으로 걸어간다. 갈 지(之)다. 두 스텝만 더 밟으면 ‘춤춘다’라고 말해주자. 하나, 둘, 춤췄다.

“아서라, 내가 주워올게.”

“그럴래? 그럼 화단으로. 오케이?”

그는 취하지 않은 척하려고 갖은 인상을 썼지만 혀와 걸음은 여지없이 꼬였다. 용케 계단 쪽으로 향하던 걸음을 틀어 평상으로 되돌아왔다. 엎어질 듯 평상에 드러누웠다. 잠깐 평상에 앉아있겠다며 필요 이상으로 큰 소리 냈다.

나는 내려갔다. 구겨진 담뱃갑을 들고 올라오는데 이때 전화 진동음 울리는 소리가 웅웅거리듯 들렸다. 위에선 휴대폰이 발작하고 있었다. 나는 평상에 휴대폰을 놓아두었던 것을 기억해낸다. 직감하고, 뛰듯 계단을 올라왔다. 역시.

나는 잽싸게 휴대폰을 들어 액정을 확인했다.

‘엄마.’

김샜다.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뻔하게 할 소리를 알았기 때문이다.

“와타나베, 게이치로.”

나도 모르게 읊조렸다.





♬ 어머니의 성, 아버지의 이름

어머니의 성, 아버지의 이름.

와타나베 게이치로.

내 이름은 어쩌면 스즈키 종훈.

“신성한 성(姓)에 족바리 성을 왜 갖다 붙여?”

진웅이 어느새 뜨지도 못하는 눈을 애써 뜨며 말했다. 하품했다. 졸림에 겨워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모를 듯했다.

그러고는 곧장 다시 뻗었다. 누운 채로 스스로 내일 기억할지 알 수 없으나,

“훈아, 자고 가라.”

말했다.

“일 있어서 그건 힘들겠다. 친척이 오는데 마중 가야 해.”

정말 그랬다.






이전 07화차마 뭐라고 말하기가 어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