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뭐라고 말하기가 어려워

소설

by 희원이

[목차: 한여름에 우주]

제1장. 그때 우주

제2장. 우주의 부재

제3장. 우주에 하나


[소개글]
- 이 성장소설은 스냅사진처럼 짧게 찍은 어떤 풍경을 통하여 이야기를 진행한다. 콩트처럼 운영하지만, 내용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구상하였다.

- 하나와의 추억에서 다시 진웅과 술 마시는 자리로 전환된다. / 진웅은 연애사 이외에도 속에 담아두었던 불안과 불만을 말한다. 주변의 시선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그도 마찬가지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서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종훈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것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든, 그렇지 않든.





♬ 차마 뭐라고 말하기가 어려워

그냥 밀어붙여 보라고, 본능에 충실하라고 조언하자니 어째 켕겨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때 무리다 싶은 느낌이 들 만큼 불안정한 엔진 소리가 들렸다. 10년은 족히 되었을 자가용이 힘겹게 오르막을 올라와 이윽고 진웅의 집으로 이어지는 내리막을 털털거리며 내려왔다.

집 앞에 차가 섰다. 아무래도 누군가 감시하지 않으면 이내 잠금 장치가 풀려 내리막길로 돌진할 듯 불안정했다. 차에서 내린 50대 중반의 남자가 익숙한 일인지 안으로 들어와서 돌덩이 두 개를 들고 다시 차 앞에 섰다. 그는 두 개의 돌덩이를 앞바퀴에 디딤돌로 두었다.

“주인아저씨야.”

진웅이 내게 말한 후,

“지금 들어오셨어요?”

주인아저씨라는 남자에게 인사했다. 살짝 혀 꼬인 소리를 냈다.

꽤 술이 센 놈이지만 많이 마시긴 마셨다.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걸 잊지는 않았는지 담배를 아래에서 보이지 않게 몸 뒤에 숨겼다.

“오늘도 한잔 하나 보네그려. 쉬엄쉬엄해.”

남자는 웃으며 말을 건넸다. 진웅이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말이 공기 중에서 비틀거렸다.

“아니야. 아니야. 젊으니까 그럴 수 있지. 그저 쉬엄쉬엄하라는 거지.”

그는 곧 1층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집 나온 것과 관련 있는 거니?”

“전혀!”

진웅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쩐지 그에게 일어난 일을 논리 정연한 인과관계 법칙 속에 구겨 넣으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 대개 남 이야기 할 때는 그렇다. 무책임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만들어준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사실 그들의 관심사는 그런 게 아니다. 이야기의 유희만 중요할 뿐이었다.

“나오게 된 건 좀 다른 이유야. 알다시피 나 미국에서 들어온 지 6개월 정도 되었잖아. 그러니 여기 온 지도 4~5개월 되었군.”

“사실 사고를 좀 쳤어. 아까도 말했다시피 차 사고 났지. 그거 내 동생에게만 얘기했거든.”

“응.”

전에 들었다.

“그런데 븅신 새끼가 꼰지른 거야.”

“아버지에게?”

“응. 우리 어르신에게.”

아무래도 좀 유치하게 들렸다. 나이 26세에 아직도 ‘어르신’이라는 단어를 버리지 못했다니.

“결국 바로 불려 들어왔지. 군대 다녀와서도 정신 못 차린다고 욕 많이 얻어먹었지. 알다시피 내가 이래 봬도 북한에서도 숫자와 임무가 파악되지 않아서 두려워한다는 비밀 첩보의 임무를 다한 공익근무요원이잖냐! 강남구청 주차단속요원.”

나는 키득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우스우냐? 주차단속요원이?”

“아니, 나는 그저 그래. 별생각 없지.”

솔직히 좀 우습긴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진 않았다.

“쓸데없이 자학하고 지레짐작하는 거 아냐?”라고 되물었다.

“그래, 그런 거겠지.”

진웅은 담배를 빨더니 긴 한숨과 연기를 내뿜었다.

“그건 그렇고 어르신이라는 표현 어째 좀 그렇다. 이제 좀 하지 마라.”

결국 뱉었다,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난 솔직히 잘 모르겠어. 민서도 그런 말 했어. 「아버지 덕분에 잘 버티는 거 아니냐고. 어르신이라는 말 너무 유치하다」고 그러더라고.”

“우주는 여전히 말이 없군.”

진웅은 웅얼거리듯 “별들에게 물어봐.”라고 말했다.

“어우, 짜증나, 짜증나. 그게 웬 조선 시대 개그냐?”

“역시 별들에게 물어봐.”

뭐가 신이 났는지 진웅은 낄낄거렸다.

“썰렁한 놈.”

나는 담배를 물고는 다시 하늘을 보았다. 하늘이 분명 가까울 텐데 어두운 밤은 하늘 높이를 측정할 수 없게 했다. 깊은 심해 같았다.

“구청에 차를 몰고 다녔지. 사람들 겉으론 웃으며 말했지만, 별로 달가워하는 눈치는 아니었어. 몰랐었는데, 우리 어르, 우리 아버지가…….”

진웅은 ‘어르신’이라는 단어를 꿀꺽 삼켰다. 그리고 부끄러운 숫총각처럼 아버지라는 단어가 모습을 내밀었다.

“아니다. 아무 말도 하지 말자.”

진웅은 아버지에 대해 말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무엇 때문에 진웅이 망설이는 걸까? 생각해 보면 나도 아버지라는 단어를 한동안 쓰지 않았었다. 솔직히 지금도 그 단어가 어색하다. 아버지와 엄마가 다시 합치겠다고 내게 말했을 때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나 혐오라고 생각했던 것, 어느 순간 그 강렬했던 감정은 묽어져 있었다. 아버지라는 존재의 중요성이 내 삶에서 서서히 약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에 그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예전의 집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묘한 향수를 자극했다. 더 이상 하숙생활을 할 필요 없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엄마가 만족하는 듯했다. 그렇게 속으로는 완전히 화해하지 못한 채 우리 가족은 8년 전의 단란했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럭저럭 괜찮았다.

“내 어르신이 의원양반이라고 했더니……. 농담처럼, 어쨌든 정말 재수 없는 새끼였어. 고참만 아니었으면…….”

진웅은 그때 일이 생각나는지 좀 흥분했다.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면제 받지, 왜 공익 왔냐고 되묻더군. 난 정말이지 허리가 안 좋아서 공익 판정을 받았는데 늘 그런 변명 같은 사실을 구차하게 설명했어. 사실 어르신은 「내가 제대로 군대 갔다 와야 정신 차린다」고 늘 말하곤 했지. 그러니까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의심을 받았고 함부로 내 생활을 매도했지. 그렇게 쉽게 그들의 상상을 펼치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대면, ‘아, 그분!’이라고 하더군. 그러면 만사 오케이지."

“그렇다면 잘 된 거잖아?”

진웅은 나를 쳐다보더니 허탈한 듯 살짝 실소했다.

“그런 게 아니지.”

그가 뭘 말하려고 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지만 섣불리 아는 척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우리 어르신이 훌륭한 건 인정해. 그런데 말이야, 난 좀 평범한 아버지 밑에서 평범했으면 좋겠어. 그러면 이렇게 하는 일마다 한심하다는 소리를 듣지는 않을 테니까. 난 언제나 질이 떨어지는 인간일 뿐이었어. 어르신에겐.”

진웅이 담배를 힘껏 빨았다. 애처롭게 매달려 있던 재가 떨어졌다. 진웅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재를 비볐다. 바닥에 거멓게 자국이 남았다.

“남들에게조차 아버지 때문에 의심받고 아버지 덕분에 검증되었지. 만일 아버지가 누구나 믿을 만큼 신뢰할만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정말 큰일이었겠지."

하지만 그의 말투는 아버지의 공신력이 위로가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어조가 아니었다.

“그래서 네가 나왔잖아.”

그의 말을 받았다.

“뭐?”

진웅은 민감하게 반문했다. 나는 다소 당황했지만 자연스럽게 해명했다.

“내 말뜻은 그렇게 훌륭한 아버지 밑에서 너 같이 괜찮은 녀석이 나왔다는 말이지.”

언제나 재빠른 변명에는 호의적이든 방어적이든 과장이 덧붙게 마련이지만 이 해명은 단순한 과장이나 해묵은 칭찬이 아닌, 그러니까 제법, 진심이었다.

“아니지.”

그는 쑥스러운 듯 손사래 쳤다.

“아니긴…… 넌 너의 꿈을 위해 멋지게 사는 길을 택했잖아. 그만하면 충분히 잘살고 있는 거라고.”

나는 제법 그럴듯하게 그를 위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야. 그건 자랑할 수 있을 만한 게 아니지. 물론 네가 말한 것도 일리가 있긴 해. 하지만…….”

잠시 쉬었다.

“나 비록 어르신처럼, 동생처럼 못하더라도……. 아참, 그 녀석 사시 준비 시작했어. 약간은 머저리 같은 맹목성을 띠고 목표를 향해 돌진하지. 그 녀석은 취미고 뭐고 없나 봐. 하기야 한국 사회의 우수한 재원은 그래야지. 녀석, 분명 잘 될 거야. 늘 그래 왔거든. 한 번도 자신이 정한 틀을 깨뜨린 적도 없고 그렇게 조금씩 자신의 울타리를 넓혀왔지. 훌륭한 녀석이야.”

고대 법학과 다니고, 해병대를 제대한 진웅의 동생은 그의 단골 안주였다. 혀 꼬인 그의 말꼬리에 목을 묶인 채 그 훌륭하다는 동생은 그의 입속을 막 빠져나왔다.

“질투하냐?”

“질투는 무슨…….”

뜻밖에 그는 차분했다.

동생의 목을 감은 말꼬리가 스르르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의 담배가 꺼졌다. 어차피 거의 필터까지 다다른 불똥이 죽은 터라 다시 불을 붙일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는 몇 번이고 필터를 빨더니 기어코 라이터를 찾는다.

“다 피웠어. 버려.”

그러자 그는 게슴츠레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담배를 바라봤다.

“짜식, 죽었군.”

진웅은 꽁초를 버렸다. 발로 비볐다.

“동생처럼은 못하더라도, 아버지로 시작해서 아버지로 마무리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해. 동생이야 늘 아버지의 동생이지만, 난 정말이지 그러고 싶지 않아.”

“그래. 우린 건강하고, 하고 싶은 일이 많다고.”

맞장구쳤다. 쳤지만, 사실인즉 내가 ‘담배 너무 많이 피우지 말라고’ 하나에게 핀잔하면 하나가 받아칠 때 줄곧 하던 말이다. 그때마다 그녀의 마스터 테이프에 꽁초 하나씩 꽂혔다.

진웅의 발밑에서 비벼진 담배꽁초가 납작해졌다.

“그런데 가끔은 낭만적인 생각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어. 내 행동이나 지금 우리의 대화가 특권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거든. 지금이니까 꿈을 위해 도발적으로 저지를 수 있고 그것에 대해 아름답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이유 모를 불안감. 비빌 언덕이 있거나 실수를 해도 회복할 시간이 있어서 함부로 무모한 것은 아닐까 하는 주저……. 대다수의 사람들은 각자의 도저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듯한 이유로 꿈을 버리는데……, 자신의 처지에 몸을 꾹 박은 채 살아가는데……. 그에 비하면 나는 일종의 사치를 누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해. 그래, 어쩌면 자기 만족에 불과하다는 자괴감…… 따위 말이야. 모르겠어. 내가 배우의 자질이 있는지 말이야. 지금 하는 내 행동이 과연 의미 있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없기도 해. 그러면 늘 좋으면 하는 거지, 그것이 옳은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곤 하지."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민서가 좋아졌던 건 비슷한 고민을 지니고 같이 고민해줬기 때문일 거야.”

“그 친구가?”

“응. 물론 가끔 비아냥거리기도 했어. 어쩌면 진심으로 걱정한 건지도 모르지. 공감한다는 건 중요한 덕목이잖아. 그래, 그래서 끌렸을 거야. 내가 괴로워하면 민서는 늘 연극 하는 자세를 강조하곤 했지. 정작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는 했지만 그녀의 눈빛은 그렇지 않았어. 그래서 그 충고만은 몸에 익혀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지. 무대에서 호흡할 때, 인물에 빠져들 때, 그래서 대본에 없는 상황이라도 「아, 이 인물이라면, 이렇게 했겠구나.」하는 생각이 자연히 들 때, 그냥 그 인물로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나를 발견하면 깜짝깜짝 놀라곤 하지. 뭐 그런 것. 그 맛에 연극에서 헤어날 수 없다는 이야기.”

나는 멀뚱히 그를 바라봤다. 마지막 담배를 갑에서 꺼내는 그, 불을 붙이고 담배를 빨면서 게슴츠레 눈을 뜬 채 하늘로 연기를 뿜는 그가, 어쩐지 진웅 같지 않았다. 예전의 그와는 다른, 그러니까 연극 속의 인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그렇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우리를 인생이라는 좌표의 다른 지점에 놓는다. x, y, z축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밀려가든 밀어가든 지점의 이동은 필수적인 모양이다. 진웅이 서 있는 곳이 예전에 내가 알던 그곳에서 가깝지만 분명 다른 곳이었다는 걸 비로소 느꼈다.

“왜 있잖아? 연극에 미쳐야 한다는 말.”

들어보지 못했다.

“민서 말이 옳아. 유명해지거나 어떤 거창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만 연극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앞 문장과 뒤 문장만 바꾸면 되는 간단한 일인데도 그게 쉽게 되질 않아. 늘 무명배우, 배우 지망생으로 남을까 봐 두려워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가 말하는 사이 나는 뒤 문장과 앞 문장을 바꿔보려 했지만 ‘어디서부터 바꿔야 하는 거지?’ 하는 생각만 들었다. ‘연극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유명해지거나 어떤 거창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만?’ 바꾸어보아도 딱히 뭐가 다른지 알 수 없었다.

“연극에 미쳐있다 보면 자연히 배우로 인정받고 유명해지는 것인데도, 난 어쩌면 배우라는 직업을 유명세를 타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나 봐. 아직 한참 모자라지.”

진웅이 뒷목을 주무르며 말을 이었다.

“아니지. 당연한 일은 아니지. 설령 유명해지지 않더라도 계속 연극을 하겠지. 계속 연극을 하는 것이라면, 이왕이면 알려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그게 당연한 거겠고. 그런 바람을 체념하고라도 연극을 계속 할 수 있을까?”

난 이미 그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를 놓쳤다.

“글쎄…….”

유명해지고 싶다는 말 같기도 했고, 참 연극인이 되고 싶다는 말 같기도 했다.

“수현이는 또 다른 의미에서 내게 큰 위안이 됐어.”

“수현이?”

“그래, 수현이. 생각해보면 수현이 참 고맙고 편해. 참 오랫동안 티격태격했지만, 짜식, 그래도 나를 가장 잘 알지. 내 고민을 가장 자주 상담해준 사람이 수현이니까."

담배를 쪽 빨았다. 무슨 마약 중독자도 아니고. 그는 살짝 딸꾹질한다. 그 꼬락서니를 보니 게슴츠레하게 초점 잃은 눈도 그렇고 꼬인 말투도 그렇고 긴장이 제대로 풀린 것이다. 침만 주룩 흘리면 딱 균형 잡힌다.

“수현이는 날 믿어줬어. 속으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겉으론 날 자극하지 않았지. 하지 말라고 충고하지도 않고 그저 지켜봐 줬어. 그게 고마워. 나 말이야, 만일 결혼 같은 걸 하게 된다면 말이야, 수현이 같은 친구라면 괜찮겠다 싶어.”

바람이 살짝 뺨에 스쳤다. 한여름이라도 자신이 사라진 건 아니라고 항의하듯 절묘한 시기에 불었다. 시원했다.

“혹시 수현이가 너 좋아하는 거 아닐까?”

나는 농으로 질문했다.

“아닐 걸.”

의외로 진지하게 받는다. 의외의 진지함이 나를 잠시 민망케 한다.

“수현이도 내게 고민을 많이 털어놓으니 서로 상부상조한 거지. 우린 이성 문제에 대해서도 웬만한 건 다 알 걸. 물론 내 생각뿐일 수 있어도. 깊은 이야기까지야 모두 나눌 수 없었겠지. 모두 나눠봐야 좋을 것도 없고. 왜 가끔은 친한 친구라도 모르는 척하고 기다려줘야 하는 경우가 있잖아?”

“이번 얘기는?”

“그래, 그렇구나. 이번 이야기는 하지 못했어. 대략적인 건 알지만 핵심적인 건 잘 모르겠다.”

“예컨대?”

쓸데없는 걸 물었다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친구의 여자 친구라는 것, 이번엔 많이 좋아했다는 것 정도.”

진웅은 별로 개의치 않는 것처럼 태연히 말을 이어갔다.

“만일 그 사실을 알면 뻔한 이야기를 하겠지. 늘 그 녀석이 하던 말.”

“무슨 말?”

“「나쁜 걸 알고 인정하면 그나마 덜 불쌍하지. 나쁘다는 걸 모르면 불쌍한 사람이고. 가장 불쌍한 사람은 나쁜 걸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사람이거나 나쁜 걸 알면서도 또 저지르는 사람이야.」라고 말하곤 했어.”

진웅은 많이도 들은 말인지 능숙하게 수현을 흉내 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씩 웃었다. 하나는 ‘나쁜 사람이 없다, 단지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만이 있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수현의 말도 그럴듯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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