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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편(2): 에세이 저술과 탁월한 편집

에세이

by 희원이

[목차: 나는 무엇을 쓰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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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지향점

♬ 후일담


[소개글]
- 놀이글의 스타일을 적용한 저술 자기소개서입니다.
- 그림은 모두 고흐의 작품입니다.

- "기록비평가 쪽도 짧은 기사나 정보를 집요하게 분석해서 파악하는 작업이었는데, 정보 수용자인 시민지성 입장에서는 시민기자적인 작업만큼이나 중요하긴 했죠."
- "그건 제 글쓰기에 한해 그렇다는 것이지, 시민지성에겐 시민기자와 기록비평가의 작업이 매우 중요하죠. 딱 하나만 꼽자면 제한된 정보를 읽어야 하는 시민에겐 안락의자 탐정으로 합리적 의심을 하고 비판적 추론을 하는 것이 최우선적 미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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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시민예술 쪽에 관심이 있었어요. 하지만 다른 정체성도…”


기록비평가 쪽도 짧은 기사나 정보를 집요하게 분석해서 파악하는 작업이었는데, 정보 수용자인 시민지성 입장에서는 시민기자적인 작업만큼이나 중요하긴 했죠.

기록비평가의 태도로 한정되고 왜곡된 기록을 비교해가며 미디어 비평을 하면서 허점을 공략하고, 진짜 올바른 기사를 여러 기사를 통해서 시민기자의 관점으로 조합하여 공유하는 것 말이에요. 트위터 등의 SNS에서도 자주 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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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신문의 기사가 연도별로 어떻게 논조를 변화했고 어떤 정치적 해석이 스몄는지 비평하고, 좋은 기사를 비교하면서, 진실을 다각도로 볼 수 있게 하는 거죠. 이미 많은 트위터리안이 하는 자생적인 작업이기도 한데, 이걸 진지하게 출판물로 쓰려면 기사의 문장 그대로 쓰면서 비평하기가 애매했죠.

저작권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 같았거든요.


[트위터리안인 나]
“할 일이 많으면, 어쩐지 트위터에서 자꾸만 주절대고 싶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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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기사물을 그대로 제시하고 그에 관한 코멘터리 작업을 하는 대신, 이를 기자의 비평 칼럼처럼 다시 쓴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죠. 그래서 한동안 제외하고 있었죠.

그건 제 글쓰기에 한해 그렇다는 것이지, 시민지성에겐 시민기자와 기록비평가의 작업이 매우 중요하죠. 딱 하나만 꼽자면 제한된 정보를 읽어야 하는 시민에겐 안락의자 탐정으로 합리적 의심을 하고 비판적 추론을 하는 것이 최우선적 미덕이니까요.


일단 안락의자부터 사야 하는데…





IMG_2677.PNG → 나, 희원이


지금은 이런 요소를 일정 부분 적용할 수 있겠지만, 당시엔 재미 없는 작업으로 느꼈죠. 모든 기사에 대해 코멘트를 한다는 것도 독자에게 설득력 있게 보일지 확신이 서지 않았고요.

당연히 시민기자와 지식게릴라 쪽도 가급적 외면하고 있었죠. ‘재즈’와 ‘시민지성 이론편’을 쓰면서 질려 있었거든요. 재즈는 교양 저술이니 시민기자의 관점에서 철저하게 출처를 봐가면서 적으려고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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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적 가치를 노리며, 지식게릴라로 아이디어를 제시하려는 야심을 지녔던 건 ‘시민지성 이론편’이었고요. 완벽한 무반응에 가까워서, 성공했다고 말하긴 뭣하고, 저 스스로도 충분히 여물지 못한 상태에서 출판한 것이라, 더 시간을 두고 묵혀야 했어요.

그래도 그때의 도전과 성과 덕분에 그다음 글쓰기를 할 자양분이 생겼어요.


“그 시간 동안 저는 흐물흐물 썩어 문드러지긴 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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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 가지고 논다니? 놀랄 놀자요. 계속 썩어 문드러지겠군.”


시민예술가란 정체성만큼이나 지식놀이꾼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었어요. 이왕이면 지식게릴라가 써도 좋을 소재나 주제로 놀이적으로 해석해서 좀 엉뚱하게 이야기를 펼쳐내고 싶었죠. 그게 시민예술적이라면 더더욱 좋을 것으로 여겼고요. 그것을 어렵게 익히지 않아도 될 정도로 단순한 형식이길 바랐죠. 사람들이 쉽게 흉내낼 수 있도록 해보자는 바람이 있었죠.

결국 제가 먼저 예시를 제시하고 그것으로 창작 활동을 펼치는 편이 가장 간명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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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가급적 이론편에서 정리한 내용을 토대로 하기로 한 거였죠. 당연하죠. 실천편이니까요. 그러다 보면 뭐가 현실에 안 맞는지 알 수 있을 거라 여겼고요. 일단 해보고 애매하면 바로 폐기하고, 다시 다른 걸 해보는 방식으로 계속 경험을 했습니다.


일단 모든 글쓰기에 에세이적 유산을 적용하려는 걸 우선적으로 검토했어요. 에세이는 무형식의 형식이라 할 만큼 느슨한 형식이죠. 수필 말고 조금 더 포괄적인 의미로 에세이 말이에요. 꼭 경험을 써야 하는 게 아니라 무형식의 느슨함이 강조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냥 산문이라 이해해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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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가지 정체성을 시민지성적으로 접근하면, 아무래도 에세이 저술이 주요 핵심 수단이 되거든요. 일단 기존의 스타일이 확고하고, 누구나 일기 쓰듯 따라할 수 있었으니까요.

시민지성의 글쓰기를 하려면 ‘낮은 글쓰기’여야 한다고 보았거든요. 마치 클래식의 고난도 연주를 대중음악에서 난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더 많은 음악 지망생들이 독특한 음악을 해냈듯이요. 단순히 기술력이 낮아진다는 게 퇴보라고 생각하지 않고 다양성에 기여한다고 보았죠.


“허리를 굽히고 인사하는 게 너무 힘들어. 자존심이 상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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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글쓰기’도 마찬가지죠. 내용을 너무 어렵게 가져가지 않기를 바란 건데, 이건 그냥 무조건 말초적이고 단순한 걸 의미하지는 않아요. <어린 왕자>처럼 깊지만 간결하게 쓰기를 바란다는 의미였으니, 꼭 고집할 건 아니고, 그냥 제 생각일 뿐이죠.


또한 ‘잇는 글쓰기’, ‘짧게 잇는 글쓰기’를 선호했어요. 직장을 다니면서 글을 쓰고 싶다면, 정말 유의미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짧은 분량으로도 전자책으로 출판하고 제대로 진지하게 평가받을 기회가 주어지길 바랐던 것 같아요. 억지로 종이책 분량에 맞추는 게 아니라, 논문 28쪽을 발표하듯이 출판하는 게 일반적 경향이길 바랐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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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꼭 지켜야 한다기보단, 또 지금은 저도 지키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어쨌든 당시에는 이런 정도의 지침을 염두에 두었죠.

이걸 에세이로 표현할 때 조금 더 편할 거라 생각했어요. 에세이가 되려면 정보 수용자가 잘 모르는 정보를 안락의자형 탐정으로 추론해가듯이, 당사자성을 지니고 연루자로서 그 경험과 느낌을 발언하는 방식을 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르포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나에 대해 연결해가며 말하는 것, 자신 자신에게만큼은 우리 자신이 최고의 권위자일 거야. 너 자신보다 너를 더 잘 아는 사람이 있다고? 그러면 그 사람을 사랑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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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에세이의 혼종적 요소를 섞기 좋다고 보죠. 묘사가 약하면 사진을 찍어서 보강하고, 표현 수단이 이질적일 때 드러나는 새로운 개성도 있죠. 음악에서 단조로워지는 대신, 무대의상의 비주얼과 뮤직비디오에도 매력을 주듯이요.

때로는 이게 저작권 관행과 연결되어서 해결해야 할 게 많았지만서도요. 그 과정에서 저작권에 관한 태도를 정립하기도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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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희원이]
“장르문학처럼 주변부 문학의 경우, 충분히 시민예술가의 표현 수단이 된다고 봐요. 다만 여기서는 에세이를 가장 최적화된 형식으로 본 것뿐이죠.
또 하나가 더 있는데, 바로 탁월한 편집이에요. 매시업이나 매드무비처럼 편집을 절묘하게 하는 방식인데, 역시 저작권 문제 때문에 커뮤니티에서 즐기는 용도로만 가능하겠죠. 간혹 DJ 등이 세트를 활용한 음악을 하기는 하지만 저작권 문제는 항상 조심해야죠.”

“결국 다섯 가지 정체성을 아우르는 두 가지 큰 정체성이 있는데 그게 에세이 저술가와 탁월한 편집가로 보았어요.
비주류 장르문학가는 가능하지만 논외로 쳤고요. 기량 면에서 사실상 고난도 영역이거나 이미 인기 장르라면 시민성이 떨어진다고 보았기 때문이죠. 여기에 탁월한 편집가도 진지하게 출판 작업을 할 정체성이 되려면 해결해야 할 게 너무 많아서, 결국 에세이 저술가로만 압축하게 되죠.”

“다섯 가지 작은 정체성, 그리고 두 가지 큰 정체성보다 더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정체성은 기록자로 보았어요. 그냥 단순한 메모를 하는 시민 말이에요. 트위터에 오늘 시위 현장 영상을 올리는 행위자 말이에요.
더 거슬러가면, 기록자보다 더 원초적인 정체성인 독자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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