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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Sep 19. 2023

돈가스 게임

산문


어렸을 적 자주 하던 게임 중에는 돈가스 게임이라는 놀이가 있었다.

이 게임을 하기 위해선 세상에 원 하나를 우선 그린다. 원태연이라는 시인이 자기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그랬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세상에 원을 하나 그리고 그걸 뺀 만큼 사랑한다는 망언을 했다. 그게 기정사실로 되면 다른 남자들은 그 원보다 더 작은 원을 그려야만 한다. 그러고 그 원을 뺀 만큼 자기 여인을 사랑하지 않으면 바가지 긁히겠다. 원이 자꾸 작아지고 기어이 동전만 해졌을 때 세상을 다 빼고 동전만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간편해지고 만다. 대신 좀 많이 그릴수록 좋다는 것이 함정이다. 큰 원을 그리고 그것을 뺀 만큼 사랑할 것이냐, 동전만 한 원을 좀 많이 그리고 그 원만큼만 사랑할 것이냐 쉽지 않은 문제다.


어쨌든 어렸을 적 우리는 사랑과 원이 연결되지는 않았다.

원은 그저 돈가스의 원이었을 수도 있다. 돈가스를 매일 먹다가 살이 많이도 쪄서 과체중이 되면 아이들이 놀렸을 수도 있다. 짝사랑하는 한 여자아이가 보는 앞에서 뚱뚱하다고 놀림 받으면 그렇게 기분이 더러울 수 없다. 때로는 땅에 원을 그리고 돈가스 놀이를 할 때 그 여자아이가 우연히 그곳을 지나갈 수도 있다.

그러면 과체중의 사내아이는 자신이 남자답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을 것이다. 원에 한 발을 착지하여 도약하면서 ‘돈!’ 원 밖의 세상에 착지하면서 힘차게 ‘가스!’를 외치며 다른 아이들의 발등을 밟으려고 할 것이다. 밟히면 아웃이다. 표적이 되었던 아이는 과체중이 실린 위협적인 공격을 간신히 피한다.

그러나 의기충천한 과체중의 아이는 “가스! 가스! 가스!” 하고 연달아 상대를 공격한다. 하필 그때 그의 몸에서 생산된 자연산 가스가 유출되는 사고가 생기니,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잠시 정적이 일었다가 순식간에 사방에서 웃음이 터진다.

과체중의 아이는 무안하다. 여자아이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 그 여자아이도 같이 따라 웃었던 것 같다. 그때 한 아이가 외친다. “지구가 흔들려! 지진이라고!” 화생방 훈련은 지진 대피 훈련으로 바뀐다. 분노한 과체중의 아이가 그 녀석을 쫓아갔기 때문에 모두가 웃으면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여자아이가 어디로 갔는지, 웃었는지 울었는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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