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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Oct 11. 2023

그들은 코피를 사랑했다

비글 & 콩트

'뭉크'의 작품을 활용하였습니다.
“세계시장의 가격변동에 영향 받지 않고 최저 가격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은 공정무역뿐이다."
- <커피의 정치학> 저자 다니엘 재피


『커피는 전 지구적으로 가장 많이 거래되는 농작물로 커피 원두의 원가는 1파운드당 1달러 남짓밖에 하지 않는다. 이 가격은 1988년부터 지금까지 거의 그대로이며 심지어 더 떨어지기도 했다. 반면 한 잔의 커피를 우릴 때 보통 30~50g 정도의 원두가 쓰이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런 원가를 보면 커피 관련 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할 만하다.(주1)

그러나 커피를 키우는 농민에게 돌아가는 돈은 ㎏당 500원 정도다. 대다수 커피 수출국에서는 커피는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농작물이어서 커피 가격이 떨어지면 제3세계 농민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셈이다.(주2)

1989년부터 시작해 1997~2004년 절정이었던 세계적인 커피가격 폭락은 결정적 타격이었다. 농민들을 지원했던 커피조합이 무너지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들에게 돌아갔다. 경작포기가 속출했고, 농가들의 집단이주와 농작지 파괴 및 농장노동자의 실업과 기근이 만연했다. 위기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네슬레, 사라 리, 필립모리스, P&G, 치보 같은 ‘빅파이브’가 전 세계 로스팅 커피와 인스턴트 커피의 69%를 장악하며 엄청난 수익을 거뒀다.(주3)』(혼합인용)




옛날 옛적에 마리오라는 남자가 지구촌 아메리카라는 동네에 정착해서 살았습니다. 그는 그 마을 처녀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가정을 꾸렸습니다. 아이도 둘이나 생겼습니다. 그는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부두의 노역자도 했고 트럭 운전사도 했으며 공장 노동자도 했습니다. 성실히 일해서 커피를 경작할 작은 땅을 마련하고 커피를 재배했습니다. 세계인이 좋아하는 커피니 잘만 하면 가족이 배곯지 않고 살 것이라 믿으며 커피를 경작했습니다. 때때로 커피를 좋아하던 아내와 함께 직접 재배한 커피를 즐기고 싶었죠. 아침에 음악을 틀어놓고 거실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일이 고되고 많아 여유를 부릴 만한 짬이 적었습니다. 제대로 값을 쳐서 돈을 받지 도 못해 고되게 일해도 풍족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계속 커피를 재배했습니다.

어느덧 마리오는 커피 자체를 사랑합니다. 그 땅을 떠나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함부로 모험하기도 쉽지 않았죠. 아이들이 자라고 있었으니까요. 궁핍하더라도 열심히 커피를 기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차마 마약을 재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커피는 서서히 유일한 생존수단이 됐지만 고작 kg당 500원 정도 받았습니다. 한 보따리를 주고도 푼돈밖에 못 받으니,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해도 캔 커피 하나 마음 놓고 사먹지 못했습니다. 요새 캔 커피 하나도 600원은 하고, 비싼 커피는 4000원 이상 합니다. 마리오는 열심히 일해서 커피를 팔아놓고, 정작 자신이 그 커피를 사먹기란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는 어렵사리 버티며 커피와 아이와 아내를 사랑해서 일을 했지만, 몸이 노쇠해지는 것을 견뎌내기 힘듭니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마을을 떠납니다. 먹고 살자니 뭐든 생각해야 할 판입니다. 마리오는 자신이 덜 먹고 덜 입으며 아내와 함께 아이들을 기르지만, 서서히 지쳐갑니다. 매일 코피를 흘립니다. 병에 걸렸더라도 병원에 가지 못하니 가족에게 그 사실을 숨기고 커피를 재배하며 코피를 흘립니다. 코피를 흘리더라도 커피원두는 한 톨도 흘려서는 안 됩니다. 커피꾸러미를 조심히 등에 이고 창고로 옮길 때마다 코피가 흐릅니다. 땅을 축축이 적십니다. 오래 적십니다. 깊이 적십니다. 주변 풀이 죽을 만큼 강한 독이 땅에 뱁니다. 커피원두가 그 피를 빨아들여 자랍니다. 원두에서 검붉은 색깔이 돕니다. 마리오의 코피와 커피는 노동의 흔적이었습니다.

이제 마리오의 몸에서 피가 다 빠져나갔습니다. 최고급 커피라는 판정을 받고도 마리오는 매일 다음날을 걱정해야 했고 몸에서 피가 다 빠져나갔으니 살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마리오는 살아야 합니다. 텅텅 빈 몸을 일으켜 세우고 커피농장에 걸어갈 때마다 이제는 산 몸을 산 몸이라 할 수 없고 죽은 영혼을 죽은 영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좀비로군.”

돈을 주는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언데드(좀비). 죽지 못한 자가 마리오였습니다. 그것은 그 지방의 오랜 전설처럼 내려오던 괴기스러운 존재였습니다. 마리오는 살기 위해 괴기스러워졌습니다. 죽고서도 죽지 못한 채 커피를 재배했습니다.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었으니까요. 행복하게 살기 위해 마리오는 코피를 흘리고 죽었고, 죽어서도 커피를 경작합니다.

마리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마을에서 끝까지 버티던 농부들도 모두 코피를 흘리며 커피를 재배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좀비가 되었습니다. 누군들 좀비이길 원했겠느냐마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살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푼돈을 받은 채 겨우 버텼습니다. 쉽사리 죽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좀비에 관한 전설은 증명됩니다.

그런데 오래전 전설속의 좀비들은 정말 좀비였을까요? 아니면 부당하게 좀비라 불려야만 했을까요?(주4)





이제 좀비 전설이 있던 곳에서 멀리 떨어진 동네의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그들은 커피를 좋아합니다. 아니, 사랑합니다. 매일 커피를 마셨습니다. 커피는 매일 전 세계에서 팔렸습니다.

일상에도 낭만에도 커피는 존재했습니다. 커피는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의 설렘을 같이 해주고, 누군가와 헤어지는 슬픔 속에서도 묵묵히 함께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커피는 어느덧 삶의 친구가 된 셈입니다. 자판기 커피부터 캔 커피, 요새는 4000원이 훨씬 넘는 커피도 자주 마십니다. 밥값에 버금가는 커피도 있습니다. 그래도 커피는 많이 팔립니다. 그러니 커피점도 우후죽순으로 생깁니다.

“국내 커피전문점 산업은 5천억 원이 넘는 큰 시장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전보다 커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업체 간에 치열한 경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스타벅스가 현재 321개, 카페베네 330여개, 엔젤리너스가 333개로 상위 10개 업체들의 점포만 합쳐도 2천 개에 달합니다.”(주5)

이렇듯 커피사업의 규모는 매우 큽니다.

한때 코피빛깔 커피가 크게 인기를 얻은 것도 커피 산업이 발전하는 데 중요하게 한몫했습니다. 커피를 사랑하다 못해 커피에 중독된 이들은 매일 커피를 마셨지만 처음에 이 커피가 나왔을 때만큼 화제가 된 커피는 없습니다. 물론 거부감도 있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처음 코피색 커피를 마시고는 흥분하여 점원에게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대개 이런 항의는 소동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약간의 반발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렇게 항의를 하고 나서도 그 맛에 반해 커피를 찾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커피를 둘러싼 갖가지 풍문이 생겼습니다. 오죽하면 그 커피에 중독되면 흡혈귀로 변한다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일부는 소송을 불사하겠다며 기업에 항의했지만 기업에서는 코피맛 커피를 더 많이 주어 이 상황을 무마했습니다. 때로는 코피맛 커피를 팔지 않겠다는 서약도 했지만 커피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아예 외면하기란 어려웠습니다.(주6) 기업은 이윤을 좇아가는 집단이니 그러한 호기를 놓칠 리 없었습니다. 사람들도 커피 때문에 누군가 부당하게 고통 받는다는 사실을 굳이 알려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만족하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 누구도 잘못했다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오는 돈을 제대로 벌지 못해 가난했습니다. 매우 열심히 일해야만 겨우 살았습니다. 좀비가 되었다는 소문이 돕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 코피빛깔 커피에 매혹되어 흡혈귀가 되었다는 소문도 돕니다. 무심코 돈을 내고는 스스로 흡혈귀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꽤 인기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피를 노린다는 말도 나돌았습니다. 믿을 바는 못 됩니다. 어쨌든 소문은 진화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요컨대 <소문의 흡혈귀들은 처음에는 코피맛 커피를 마시기 위해 커피전문점을 다니다가 코피맛 커피로는 모자라서 매일 야근했습니다. 몸을 피곤하게 하면 코피가 터지니까요. 그렇게 코피를 마시다가 이내 신선한 피를 먹기 위해 다른 이의 피를 노렸고 그도 여의치 않을 때 자신에게 상처를 내서 피를 마셨습니다. 그러다 그 피마저 다 빨아먹으면 온 몸이 텅텅 빈 채 죽지도 못해서 결국 좀비가 되었다>는 소문이었습니다. 터무니없는 소문일 뿐이죠. 그러나 아주 오랫동안 이 이야기가 떠돌았고 어느 순간 기이한 마력을 띤 채 보편타당한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단순한 소문이 아니라 아주 오래 전부터 흘러내려온 전설처럼 되어버립니다.

이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들을 보고 ‘돈 사람’이라고 말하며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상꾼’이라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도 믿을 바는 못 됩니다. 흡혈귀 전설이 진실이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서는 한 푼의 돈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돈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돈 사람이 자신이 돌았다며 고해성사를 하는 경우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무척 많고 흡혈귀와 좀비의 전설은 쉴 새 없이 돌았는데 아무도 돈을 가졌다고 하지 않으니 도무지 돈 사람이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돈 사람은 없는데 흡혈귀와 좀비와 전[돈] 설만이 끊임없이 돌 뿐이었습니다. 공포영화는 흥행도 잘 안 되는 편이니 영화제작자가 돈을 가졌을 리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미스터리로만 남았을 뿐입니다.





(주1) 참조인용 : 파이낸셜뉴스, <아메리카노 1잔 원가중.. 원두가격은 ‘150원’>, 2011-2-22

(주2) 편집인용 : 한겨레, <왜 ‘착한 커피’가 희망인가>, 2010-12-31    

(주3) 편집인용 : 부산일보, <커피 한 잔에 담긴 공정무역의 빛과 그늘>, 2011-1-8

(주4) 위키백과 : 좀비

(주5) wow한국경제tv, <커피전문점 포화? "창업 고민되네">, 2010-10-29

(주6) mnb·mt, <스타벅스 공정 무역 커피로 10월을 맞이하세요!>, 2010-10-4 / 파이낸셜뉴스, <‘가격 거품’ 극복한 커피전문점은?>, 201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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