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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Oct 13. 2023

생각했다

비글 & 산문


 생각했다 생각만 했다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생각 저편으로 갔다가 이곳으로 되돌아왔다 되돌아와도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살아지지 않으면서 삭지도 않았다 생각은 헛돌았다 헛돌면서도 멀리 가지 않았다 가지 않는 생각은 온전히 머무르지도 않았다 가라앉지도 않고 뜨지도 않았다 생각은 각자도생했다 각을 세우고 스스로 삶을 훔쳤다 훔친 생각을 지워도 자꾸만 흔적이 남았다 생각은 죄를 숨길 수 없었다 생각은 증거를 없애지 못했다 생각은 불안했다 불안하면서도 훔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생각은 도벽을 다스리지 못했다 쉬지 않고 밤으로 나아가 공포에 떨면서도 세상을 몸에 채웠다 무거워졌다 무거워져 생각은 조바심을 뚝뚝 흘렸다 툭, 툭 부러졌다 불어터졌다 생각은 부피가 커졌다 피가 터졌다 살갗이 터져 쓰렸다 '스리' 맞은 삶이 생각에게 따졌다 둘이 싸웠다 둘 다 다쳤다 다 졌다 다 지웠다

  그러나 지운 자국 남아 생각은 다시 자랐다 생각을 지우려는 생각을 차라리 지웠다 생각은 생각했다 생각할 수밖에 없어 생을 날 서게 세워놓기로 했다 세우기만 했다 세울 수밖에 없었다 세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리(글이) 했다





♬ Herbie Hancock & Céu_Tempo de Am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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