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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Oct 16. 2023

엘리베이터 밖 두 사람

콩트

엘리베이터 사고였다. 세간의 관심을 받았던 99층짜리 건물이 완공된 지 겨우 일 년도 안 되어, 또 한 번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말았다. 첨단의 시설을 자랑하는 그곳에서 15명의 사람들이 49층에서부터 추락했고, 영영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깊은 곳으로 떠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시공사와 관련 책임자들, 건물의 소유주는 여론의 거센 비판을 견뎌야 했고, ‘보상대책위원회’는 유가족에 대한 보상 문제 신속하게 처리할 것이라 천명했다. 그리고 조용히, 사법적인 다툼을 대비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불리할 만한 기록을 파기할 준비를 했다.

언론에서는, 그들이 과연 보상하려는 의지가 있는지를 의심했고, 참사 며칠 전 잔고장을 일으킨 기록에 미루어 제때에 안전한 관리를 했는지도 궁금해 했다. 또한 참사 때 적절한 구조 프로그램이 신속하게 가동되지 못했다고 맹렬히 비판했다. 네티즌들은 15명 중 3분의 2 정도가 고급두뇌였다는 점을 들어 음모론을 주장하기도 했는데, 특히 참사 전 잔고장에 주목했다. 배후세력이 치밀한 계획을 통해 참사를 단순사고사로 처리하려는 속셈이라는 글들이 수많은 블로그에 복사되어 게재되었다. 그 글들은 원본에 조금씩 덧붙여진 의견이나 숫제 글의 앞뒤를 잘라 내거나 중간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가공되었고, 결국 글의 최초의 의도마저 의심하게 만드는 알 수 없는 글이 되기도 하였다.


남자와 여자는 걱정스러웠다. 자신들의 회사가 있는 건물에서 참사가 일어난 것을 처음엔 믿기지 않게 여겼다. 안타까운 느낌도 들었고, 동료들이 혹시 사망자 명단에 끼지 않았는지 유심히 방송을 보았다. 언론에서 참사 며칠 전 잔고장에 대한 문제를 언급할 때도 역시 대수롭지 않게 흘렸다. 하지만 ‘참사 며칠 전 잔고장’이 사고와 어떤 연관이 있으며, 음모세력에 의해 어떻게 조작되었는지를 각종 매체에서 자꾸 언급하자, 남자와 여자는 ‘참사 며칠 전 잔고장’이라는 문구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바로, ‘참사 며칠 전 잔고장’에 원인이라고 보일만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어느 누구도 그것을 이번 참사의 원인이 될 만한 심각한 것으로 생각지는 않았다. 그 순간으로 돌아가 보면-


둘은 ‘거의 동시에’ 버튼을 눌렀었다(주1). 그 둘은 손가락이 찌릿하며, 아주 미세하게 감전되고 있다고 느꼈고, 엘리베이터는 즉시 멈추었다. 10분간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질 않았고, 참다못한 남자는 걸어서 올라갔고, 여자는 걸어서 내려갔다. 그들은 계단에서 스쳐 지났을 수도 있고, 오히려 더 멀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자가 64층에서 누르고 남자가 38층에서 눌렀든, 7층과 27층이든 아무래도 좋다. 분명한 건 그들이 서로 다른 층에서 버튼을 눌렀고, ‘거의 동시에’ 눌렀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점이다.


그들은 단지, 참사 며칠 전 잔고장이 있었고 자신의 행위가 어느 정도 엘리베이터 추락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불길하게 감지했을 뿐이다. 며칠 뒤 그 빌딩에서 엘리베이터 추락으로 대형 참사가 일어났으니, 더욱 심하게 불길했다. 어쩐지 누군가에게 조종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저주의 덫에 걸린 것 같기도 했다. 세간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음모론을 다양하게 제기했고, 그때마다 남자와 여자의 불안한 느낌은 더욱 깊어졌다. 오로지 자신의 행위 때문에, 그러니까 전적으로 의도하지 않은 실수 때문에 그런 참사가 일어난 것이라 생각하니 참기 어려웠다. 마음 같아서는 그것은 음모가 아니었다고 음모를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해명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몰라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


남자와 여자는 모두 악몽에 시달렸다. 자주 식은 땀을 흘리며 깨어났고, 깨어나 보면 죽은 자들이 아직도 그곳에 있었다(주2). 둘 다 깊이 고민했다. 했으나, 사람들이 아무리 똑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그 경험에 반응하는 정서적 깊이와 폭은 다른 법이다. 여자와 남자도 그랬다.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욱 깊이 고민했고, 심한 악몽에 시달렸다. 결국 그녀는 해서는 안 될 결정을 한다.

물론 사소한 엘리베이터 사건으로 죽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차라리 이런 이유로 죽는 것은 그 이타적인 윤리의식으로 인해 그녀의 결정을 숭고하게 보이도록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녀는 사람들이 자신이 그것 때문에 자살한 것이라 여길까봐 걱정한다. 자칫 그녀의 행동은 음모론을 더욱 견고하게 할 수도 있었다. 그녀는 상상한다- 뜻하지 않게 음모론의 희생자가 되거나 조직을 배신한 양심적인 범죄자로 오인 받을 수도 있다! 물론 이런 복잡한 시나리오가 그녀의 머리에 체계적으로 들어찼다기보다는 두서없이 나타났다가 스러져버렸다고 하는 편이 옳다. 매일 밤 불안에 시달렸다.

그녀는, 자신을 한심한 사람이라고 술안주 삼아 욕할 사람들이 두려웠다. 그래서 유서에는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쓰되 되도록이면 사소하게 보이려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나 직장에 대한 이야기 등을 적은 후 흘리듯이 몇 문장을 적어 넣었다. 그리고 그녀는 깊은 곳으로 떠났다.


비록 그녀의 소중한 생명은 다했지만, 시간에 비례하여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엘리베이터 참사는 잊힌 지 오래였다. 그러니 그녀의 죽음에 대해서는 특별한 수식어 없이 간략히 다루어졌다. 그것은 그 사건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할 때, 엉뚱하게 고통스러워하던 한 사람의 힘들었던 순간들에 비한다면 너무 초라했다.

그러나 남자는 그 짤막한 기사 속에서,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고통스러운 고민을 혼자만 했던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제야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른 사람이 또 있었다는 걸 알았다. 어쩌면 자신이 누른 것은 엘리베이터의 고장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둘 말고도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가 고장을 일으킬 때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99층에 한 사람씩만 있었어도 그 경우의 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으니 따져보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2006년 9월 9일

(주1) <다른 공간에서 거의 동시에 만나다>의 씨앗문장. / <그들 사이에는 틈이 있다>의 씨앗문장.

(주2) 아우구스토 몬테로소의 <공룡>을 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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