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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이하 사이

[1.0]동호 & 천재론

by 희원이

[목차: 천재론] 57편 중 1번 원고

◑ 1부.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 자본주의와 천재

◑ 2부. 창의적 도전과 보상 체계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 정당한 보상과 문화적 토양

♬ 천재의 덕목

(→ 목차 상세보기)


※ 등장 인물의 관점
- 동호(서양 회화 전공): 천재는 개인의 역량으로 찬사의 대상. 사회를 뚫고 나온다. 낭중지추.
- 민규(사회학 전공): 천재는 사회가 만들어낸 것이다. 사회는 필요한 때에 필요한 지점에서 천재를 호출한다. 마침 바로 거기 있는 자를 천재로 인정해주는 것뿐이다.
- 희정(재즈 피아노 전공): 사회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크긴 하지만, 천재의 개인적 역량도 무시하기 어렵다.
[소개글]
- 천재를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을 통하여 다양하게 천재를 바라본다. 그리고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으로 천재의 특성을 포착하려 했지만, 그건 엘리트주의의 발로가 아니라 오히려 천재를 수용하는 다양한 방식을 통하여 시민의 역량을 방증하는 것이라는 점으로 흘러간다. 창의성과 다양성의 역량을 강화할수록 천재는 다양하게 포착된다.
- 이 글은 세 명의 입장을 통해 각각의 주제에 대해 인터뷰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정확히는 '다큐멘터리 인터뷰 동영상 미편집본'을 감독이 배열하는 과정을 포착하는 설정인데, 이를 번호글로 썼던 것을 칼럼으로 재정리하려다가 그대로 두고, 소제목을 매기는 정도에서 확정하였다. 특정한 주장을 하기보다는 특정 주제에 대해 있을 법한 주장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려 하였다.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1.0] 동호(서양 회화 전공): 이상과 이하 사이

네?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란 표현을 부제목으로 쓰면 안 되냐고요? 저야 뭐 상관없죠. 얼마든지 쓰셔도 돼요. 다큐멘터리 제목이 <죽은 천재의 사회>라고 하셨죠? 그러고 보니 이상의 <날개> 분위기와도 어울리는 제목 같아요.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이라는 첫 문장을 읽고 장난으로 쓴 문장이었을 거예요. 아마도. 그때부터 이상은 문학적인 천재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기억에 남았죠. 그의 목소리란 어쩐지 무기력하게 불가해하고 불편하게 들렸죠. 현실 속에서 그런 사람을 만났다면,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불쾌한 기억으로만 남았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문장으로 만나는 그는 독특하고 기이하고 흥미로웠어요. 소설이 재미있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어렵고 재미없는 소설을 방학 때 날 잡아서 읽어야만 했는지, 어린 나이에 이해하기엔 좀 지루하고 그랬어요. 그때 낙서를 남겼던 것 같은데, 왜 그런 문장으로 낙서했는지 명확히 기억나지는 않아요. 이랬죠.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지루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도 지루하오.” - 이하, <너도 날개?>

그냥 패러디도 아니고 말 그대로 흉내내기인 패스티쉬를 했던 것 같은데, 그때 이런 취미가 있었나 싶었죠. 하기야 주변 친구 중 명언을 흉내내서 메모해놓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취미를 따라해본 것 아닐까 싶었죠. 장난에 불과한 낙서를 다시 발견하고는 처음 든 생각은 참 유치했다 싶었어요. 그냥 그때는 뜻밖에 조숙했는지, 천재가 더는 대단하지 않은 지루한 용어처럼 느껴졌나 싶었어요. 그만큼 낙서를 볼 시점이었던 몇 달 전만 해도 세상엔 흔한 천재가 아주 많다는 생각도 들고, 천재란 곧 성공과 부를 동시에 거머쥐는 식상한 존재 같았거든요. 저는 그런 반열에 들지도 못하면도 말이죠. (웃음)


그런데 어제 보니, 하필 부자와 천재를 붙여놓은 게 이상하더라고요. 지루하다는 것이나, 연애까지도 지루하다는 표현도 그렇죠. 연애는 지루할 순 없죠? 아닌가? 여하튼 연애가 부담스러울 순 있어도 지루하려면 좀 오래된 연인이라면 모를까, 대개 설레기 마련이죠. 그게 지루하면 안 해도 되는 게 연애죠. 뭘 모르게 그냥 문장을 따라 쓰다 보니 그리 된 것 같기도 하죠. 뭘 모르는 나이에 나름대로 폼을 좀 잡았던 게 아닐까 싶네요. 천재 록커들이 27살이면 세상의 부조리를 깨닫고 죽는 것처럼 보였는지, 이상의 권태로운 발언들이 멋스럽게 느껴졌던 것인지는 잘 몰라도 그런 의미로 지루하다는 말로 삶의 분위기를 섣불리 규정한 게 아닐까 싶어요. 이상을 이하라고 단순하게 반대되는 단어를 선택한 것이나 ‘너도 날개’란 도발적인 물음처럼 구성한 것도 치기 어린 면이 보이고, 좀 헛웃음도 나고 그렇더라고요.

또 한편으론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는 왜 지루한지 갑자기 궁금해지기도 했어요. 그땐 분명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쓴 표현일 텐데, 그때 어떤 생각을 했을지 혹은 무의식중에 어떤 욕구가 숨어 있었을지 생각하며 그 문장을 곱씹게 되더라고요. 천재는 어째서 부자가 되어버렸는지, 천재라서 부자가 된 것인지, 아니면 천재였는데 상속을 받은 것인지. 왜 그렇잖아요? 좋은 머리를 유전 받았는데, 사실 좋은 머리의 아버지는 의사거나 뭐 유명한 기업 회장이고 그래서 부자인 거요. 엄친아도 이런 엄친아도 없는 거죠.

그렇다면 부자만 되어도 좋을 텐데, 천재도 되고 싶었었나 봐요. 둘 다 가지고 싶었던 거겠죠? 그냥 장난으로 썼겠지만, 그 안에 욕구가 숨어 있었다면요. 천재면서 부자이기도 한 존재. 마치 히어로이면서 부자이기도 한 배트맨이나 아이언맨 같다고 해야 하나요?


그런데 전 부자와 천재, 뭐가 더 그럴 듯하게 보였던 걸까요? 그러고 보니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란 표현이라든지 아이언맨의 슈트를 달고 날아오른 배트맨이라든지, 다 제 욕망과 관련된 것일지도 몰라요. 다른 이도 그럴지는 모르지만, 저는 그런 종류의 몽상을 하기도 했거든요. 네, 그랬어요. 어린 시절에는 주로 블록버스터에 나오는 슈퍼히어로를 상상하곤 했죠. 마블이나 DC의 히어로들이라든지. 스파이더맨이 있기 있던 시절이었고요. 배트맨도요. 그러다 아이언맨으로 갈아탔을 뿐이죠. 그 시기엔 주로 천재가 되는 몽상을 했지만요. 압도적인 피지컬의 농구 선수라든지 야구 선수가 되어서 세상을 놀라게 하는 몽상이었죠.

지금요? 부자가 되는 꿈을 꾸죠. (웃음) 건물주 같은 거요. 요즘 어린 친구들은 어렸을 적부터 대통령이나 과학자를 꿈꾸기보다는 연예인이나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꿈꾸기도 한다는데, 그보다 더 나아가서 그냥 놀고먹는 게 꿈이라는 말도 하죠.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이 꿈이라는 걸 어린 아이 입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죠. 그만큼 부모님이 박봉으로 힘들어 하고,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일희일비하는 걸 목격했던 게 아닐까 싶죠. 사실 뚜렷하게 뛰어난 재능을 갖지 못했다는 건 이미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면서 깨닫잖아요. 중학교 때 조금만 공부 잘해도 다들 서울대 이상을 바라보지만, 점점 그게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데, 천재를 꿈꾸기엔 리얼리티가 너무 없었죠.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그즈음, 그래도 천재에 대한 미련을 몽상하면서도 결국엔 부자가 되려는 궁극의 목적지가 있었다는 생각이요. 천재의 종착역도 부자가 아니었을까 하고요. 그래도 그 시절엔 아직 부자보다 천재에 방점이 찍혀 있었나 봐요. 제가 미술학도로 여전히 천재를 동경하지만, 점점 나 자신은 천재보단 좋아하는 이 작업을 이어가길 바라는 입장에서 자꾸만 그냥 ‘부자’를 꿈꾸게 되는데 말이죠. 천재가 못 된다면 부자라도 되자는 건데, 대다수 사람들이라면 ‘천재가 웬 말이냐 부자가 정답’이라 외치겠죠? 맞아요, 그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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