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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Dec 13. 2023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 더 무서운 #1

콜라주 & 빌드업

[소개글]
- 삼행시 등을 콜라주 재료로 활용하여 그림 콩트로 빌드업했습니다. 
- 이 중에 일부는 브런치스토리에서 공개할 수도 있습니다.
- 이미지는 모두 고흐의 작품입니다.
[콜라주 재료]
- [삼행시]그저께 보았던 냥이가 오늘도 그 자리에 있었다
- [삼행시]한낮의 설움으로 숨소리에 김이 나고
- [삼행시]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 [삼행시]홍시 샤베트에 반지를 넣으면
- [삼행시]요령도 없고, 그립지 않은 추억도 없고
- [삼행시]그럼에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 더 무서운 법이지.”


 무- 서운 일은

 정- 작 생기지 않았음에도

 부- 란은

 르- 구의 마음에서 자라, 실핏줄처럼 온 몸으로

 스- 며 들었나. 누구의 정성인지 모를


 홍- 시와

 지- 슬(감자)이

 윤- 이 날 때도, 한낮의 설움으로 숨소리에 김이 나고.






그저께 보았던 길고양이가 그곳에 그대로 있었어요. 그곳이 아마도 그 녀석의 아지트였나 봐요. 녀석은 네온사인 가득한 거리가 낯설지 않은 모양이었어요. 가차 없이 쫓아내는 야박한 사내들을 피해 달아나다가도 이내 다시 돌아오곤 했죠. 마치 그곳이 원래 자신이 있던 곳이라고 믿는 것처럼요. 그건 확고한 고집이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의 문명은 그런 공간을 훔치면서도 부동산 문서 하나로도 멱살을 잡곤 했죠. 가장 우아한 것처럼 가장하면서요. 






“이곳은 너희들의 공간이 아니란다. 사실 우리들의 공간도 아니었지. 그걸 살았을 땐 몰랐지. 나는 그렇게 늘 어리석었지.”





→ 나, 순지윤


아버지는 그 자신이 가열차게 사셔 놓고, 돌아가실 때쯤엔 뭔가 연약해지셨어요. 늘 갚아야 할 죄가 있다고만 하셨죠. 아름다운 꿈들을 망쳐놓은 대가는 치르게 되어 있다고요. 그걸 자신이 짊어지고 갈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고 하셨는데, 글쎄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답니다.  






“그마저 쉽사리 허락될 것 같진 않구나. 그게 그들의 복수였어. 결코 나 자신으로 끝나지 않는 형벌이랄까. 그저 미안하다. 만일 내가 더 무정하고 잔혹했다면, 그들은 나를 괴롭혔을 텐데. 그들은 가장 잔혹한 고통의 신경을 건드리니까. 그들이 당한 만큼 말이야.”





→ 나, 순지윤


저는 아버지의 연약한 말은 믿지 않았어요. 그런 건 미신일 뿐이죠. 허약해진 정신에서 흘러나온 찌꺼기 같은 말이었죠.

무서운 일 같은 건 정작 생기지 않았지만, 불안은 우리를 잡아먹죠. 실핏줄을 툭툭 건드리듯 거슬리는 자극으로 우리를 헤집어 놓아요. 그런 것에서 의연해져야 한다고 아빠는 가르쳐 주셨어요. 정작 그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도 늙으신 아빠는 알려주신 거고요.






그럴 때면 그 사람이 홍시 샤베트에 반지를 넣어서 프로포즈 하는 바람에, 실수로 그 반지를 먹을 뻔했던 기억, 곧 뱉어내긴 했지만, 이가 깨져서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랐죠. 그런 정도의 불운이라면 모를까, 아빠의 입버릇은 아버지의 정신 쇠약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게 어찌 보면 합리적이었어요.

지루한 이벤트에 답답해지는 아쉬움이랄까. 그런 것이 불운이고 비극이라면 그럴 수도 있었겠지요. 


내가 이벤트의 제왕인 줄 알았지.






그건 정말이지, 의도치 않은 사고였어요.

그러나 그 사람이 때로는 애처롭기도 합니다. 그 사람, 사랑하였던 적이 있었지요. 이제는 아닙니다. 아니라서 다행입니다. 

남편은 도박에 손을 대고 사업에 실패한 뒤 술을 달고 살았고, 가정 불화는 시작되었어요. 그때부터 안 좋은 일이 너무 많았어요.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다. 그지?


한때는 자랑스러웠는데, 잘게 부서진 자랑스러운 사건들이었어요. 요컨대 우리의 삶을 수렁으로 빠트리려는 누군가의 모략이 성공한 듯했죠. 호기롭게 인간의 운명을 담은 종이를 찢어 들판에 뿌려버린 듯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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