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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Mar 07. 2024

0의 새옹지마와 1의 격세지감

비글 & 콩트

옛날 옛적에 0과 자연수들이 학교를 함께 다녔습니다. 그때 0의 짝궁이 1이었습니다. 둘은 그렇게 친하진 않았습니다. 1이 은근히 0을 무시했기 때문이죠. 1도 우등생은 아니었지만 늘 0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했죠. 0은 더하기를 학습할 때마다 꼴등이었으니까요. 그 어떤 자연수들과 경쟁을 해도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더하기 게임을 할 때 0과 함께하려 하지 않았죠.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0+1000을 해도, 0+5를 해도 0은 힘을 보태지 못했습니다. 1도 사실 나을 것은 없었음에도 그래도 1은 자신은 그래도 조금은 힘을 보탠다면서, 0앞에서만큼은 우쭐했습니다.

“난 너처럼 존재감 꽝이지는 않아”라면서요.

그럴 때마다 0은 마지막 남은 친구라 믿었던 1마저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 너무 슬펐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0도 간신히 사회에 나왔죠.

그런데 사회에서는 더하기만으로는 역부족이었죠. 그런 건 초등학교 때나 배우는 거라면서, 모든 이익을 최대한 뽑아내려는 곱하기의 시스템에 익숙해있었습니다.

놀랍게도 혜성처럼 등장한 0은 세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모두가 0앞에서는 무력해졌죠. 조, 경, 해, 심지어 무량대수마저 0앞에서는 꼼짝없이 무의미했습니다. 그 어떤 수도 0과 곱하기되면 다 0으로 흡수되었으니까요. 그에 비해 사회에서 1은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그 어떤 자연수와 곱하기를 해도 1은 있으나 없으나 똑같았으니까요. 1은 텔레비전으로 유명인사 0을 보며 소주를 한 잔 걸쳤습니다. 그때 그렇게 무시하지 않았으면 연락이나 해볼 텐데, 하면서 다 부질없다 여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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