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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Mar 07. 2024

원형 강박

산문 & 콩트

어느 날 남자는 아주 사소한 꿈을 꾸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꿈이었다. 손등을 보는데 일렬로 딱 세 개의 작은 과녁판 같은 원이 손등의 중간 지점을 붙어있었다. 박혀 있었다기보다는 붙어 있었는데, 왼쪽 손등에도 그랬다. 마치 신호등 같다고 해야 할까? (아마도) 과녁의 중간에는 작은 노란 지점이 있었고, 빨간색과 파란색이 주변부로 배치되었다.

그저 담담하게 손등에 붙은 6개의 과녁을 점같다고 여겼는데, 문득 오른쪽 팔꿈치를 보니, 살짝 팔을 들며 보일 만한 위치에 같은 과녁이 하나 붙어있었다.

이걸 볼 때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문득, 그의 머릿속에는 “환 공포증”이라는 네 자가 들어섰고, 그러자 갑자기 온 몸에 소름 끼치는 느낌이 불길처럼 번졌다. 꿈에서 그랬는데, 그것은 뭔가 알 수 없는 불쾌함으로 다가왔다.

그 꿈을 꾼 날부터 그 생각만 하면 온 몸에 소름 돋듯 불길한 전율이 흘렀다. 이는 성령 불세례의 기운과는 분명 달랐다.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오는 전율과도 달랐다. 기분 나쁘게 소름이 끼쳤는데, 그 생각을 떨치려 해도 떨쳐지지 않았다.

남자는 생각했다. 아마도 아토피에 대한 강박적 스트레스가 꿈에서 드러난 것 같다고. 남자에겐 아토피가 있었고, 아토피는 뭘 해도 잘 낫지 않았다. 그 스트레스는 주기적이었는데, 그게 우연히 꿈의 형식으로 그를 자극했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 느낌이 오는 방식이 성령님의 기운을 닮아있으면서도 모든 면에서 정반대였다. 이 느낌이 매우 불쾌했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 그날엔 더더욱 심했다. 인터넷에서는 빌딩에 잔뜩 붙은 실외기를 금지시키겠다는 기사가 나왔고, 관련 사진에는 빌딩에 빼곡히 들어찬 수십 개의 실외기가 있었다. 그 실외기의 팬이 돌아가는 원형의 구멍은 빌딩 전체를 가득 채웠고, 그걸 보자, 역시 불길 번지듯 소름이 끼쳤다. 그날엔 평소 보이지 않던 빌딩 밖 실외기를 애써 외면해야만 했다. 그날따라 자꾸 그것들만 보였고, 볼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그 뒤로 잊을 만하면, 과녁을 보게 되었고, 그럴 때마다 정도는 약해졌더라도, 소름이 돋았다.

그의 요에 원형의 과녁 무늬가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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