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 & 비글
[목차: 상황]
♬ 상황1: 구약의 말들을 폐기할 수는 없다
♬ 상황2: 구약 해석의 절대 권위, 예수님의 2계명
♬ 상황3: ‘비타협’과 ‘공존’이라는 표현의 불협화음
♬ [단편소설]구약의 말들이 일어서는 꿈을 꾸었다
♬ 상황2: 구약 해석의 절대 권위, 예수님의 2계명
신약을 가져온 자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다. 신약을 무료로 나누어주는 고마운 분이라고도 했고, 장사꾼에 불과하여 결국은 본색을 드러내어 신약을 비싼 값에 팔 것이라는 추측도 난무했다. 그러나 어찌하였든 역병에 걸려 점점 기이한 말처럼 되느니 어쩔 수 없이 그 약을 꿀꺽 삼켜야 했다. 낫는 사람도 있었고 낫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낫는 사람은 그 자를 신뢰했고 열광했지만 낫지 않는 자들은 그를 사기꾼이라 비난했다.
“이건 다 거짓부렁이야.”라면서 약의 효용을 애써 무시하려 했다. 분명 나았다는 사람이 있음에도 그것은 다 사기 행각이라며 너희도 한통속 아니냐며 싸잡아 욕했다. 어찌 보면 말이 말같지 않은 말을 씨불이며 두 발로 걸어 다닌 것은 원래 인간을 흉내내는 과정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그 자는 그저 담담히 “낫지 않는 자가 있을 것이요, 나을 자가 있으리니”라며 선문답 같은 말을 하였는데, 성경의 구약청사에 “믿을 자가 있고, 믿지 않을 자가 있을 것”이라는 내용을 패러디한 것일 수도 있었다.
모두는 여전히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과연 저 이상한 것들을 구약동에 격리해놓고만 방치하는 게 옳은 결정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자는 그 말들이 존비라 하였다. 그럴 듯하였다.
“존귀한 것이나 비천한 것이나 죽음 앞에서는 매 한가지니,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 저들은 부자든 평민이든 구별하지 않고 똑같구나.”
라면서 격리장소에 모여든 말들의 주인과 말들에게 물린 사람들의 가족들에게 약을 나누어 주었다. 그것을 존비에게 먹이면 그들 중 나을 자는 나을 것이고, 낫지 않을 자는 낫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떤 존비가 낫느냐 하였더니 그자가 말하길
“낫고 싶은 자가 나을 것이니 그때의 신약은 그들에게 유익할 것이오. 그 약을 가져가 탕약을 만들 때 겨자씨를 섞어서 미디움 불에 달여 드시오. 꼭 미디움이어야 하오. 당신들이 당신의 가족과 말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믿는다면 반드시 겨자씨를 챙겨와 미디움 불에 이 약과 겨자씨를 섞어 달이시오.”
사람들로서는 무슨 이 무책임한 소린가 싶었다. 벽에 부딪히며 괴이한 포효를 하는 존비들의 몸부림 탓에 곧 대문과 벽이 무너지고 그들이 바깥으로 쏟아나올 듯한 상황에서 그런 한가한 소리를 듣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신약을 먹이려 그곳에 들어갈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 한가롭게 겨자씨와 미디움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