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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Dec 17. 2023

상황1: 구약의 말들을 폐기할 수는 없다

콩트 & 비글

[목차: 상황]

♬ 상황1: 구약의 말들을 폐기할 수는 없다

♬ 상황2: 구약 해석의 절대 권위, 예수님의 2계명

♬ 상황3: ‘비타협’과 ‘공존’이라는 표현의 불협화음     





♬ 상황1: 구약의 말들을 폐기할 수는 없다

구약의 말들이 일어서는 꿈을 꾸었다. 성경이란 도읍에 살던 구약동 말들이 바닥에 눌어붙어 신음했다. 토사물을 뱉어내고는 축 늘어져 씩씩거리다가 기어이 죽어버렸다. 한두 마리가 아니라 수십, 수백 마리가 종이에서 일어서다 지면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머리를 박고는 눈이 풀렸다. 역병이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성경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었다. 도무지 성경으로 올라가 급제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다윗왕의 시절이었다고 철썩 같이 믿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합왕의 시절이었다. 예수님이 없는 곳에서 핵심의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럴 즈음 역병의 소식을 들었다. 으레 있는 아프리카 돼지열병쯤인 줄 알았다. 조류 독감쯤일 줄 알았다. 하다못해 코로나19보다 심하겠느냐 싶었다. 말에게는 어떤 병이 있을까 싶기도 하였다. 말을 키워본 적은 없었으나, 말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요긴한 교통수단이었다. 말을 이용하지 않고는 어디에도 이를 수 없었다. 말을 빨리 낳게 하지 않으면 참으로 낭패라는 정도쯤을 생각하며 가벼운 걱정을 하였다. 그때는 말이 사람을 물 수 있다는 것을, 말 때문에 모두가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점점 소문은 괴이해졌다. 말들이 죽었다가 되살아나서는 도무지 말같지 않은 모습으로 사람을 공격하여 물어뜯는다는 것이었다. 말이 두 발로 걸어다니기도 하고, 말이 사람의 말 같은 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욕도 한다는 것이었다. 저주의 흉측한 말을 퍼부으며 뚜벅뚜벅 걸어와 자기보다 두 머리쯤 작은 인간의 머리를 물어뜯는다는 것이었다.

도무지 믿을 수 없었지만 소문은 사방에서 들렸고 그 내용은 일관된 면이 있었다. 구약동은 원래 말로 유명한 동네였는데 말 때문에 다 망하게 생겼다며, 그뿐 아니라 성경이 온통 피바다가 되었으며, 저주와 비명의 욕밭이 되었다고 했다. 성경 바깥의 사람들은 성경의 성문을 막고는 바깥에서 버티며, 안의 사람들이 바깥으로 나오는 것을 강력하게 저지한다고도 했다. 성경을 모두 불지르지 않으면 이 역병이 끝나지 않을 것이란 절규 같은 말도 들렸다. 안에서는 아주 강력한 부딪힘으로 성문이 울렸다. 그리고 조금씩 부서지더니 비틀거리며 두 발로 걸으며 사람의 말로 저주를 퍼붓는 말들이 성경 밖으로 몰려나왔다. 광화문 사건이었다. 광기와 화염으로 뒤덮인 문이 무너지며, 사람들을 공격하였다. 이제부터 서로는 생존의 싸움을 했다. 구약의 사람들은 말들을 따라나오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생계 수단이던 말들을 죽여 땅에 묻으면 역병을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생계도 끊기는 것이었다. 말들에게 물려 말들처럼 방향 없이 비틀거리던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물어뜯었을 때, 사람들은 저마다 무기를 들고 말들과 말들에게 물린 자들을 공격할 태세를 취했다. 일대 격전이 벌어졌다. 누가 누구를 죽이는지 알 수 없었고, 그러다 누가 누구를 물어뜯는지 알 수 없는 채로, 같이 싸우던 사람이 갑자기 동료를 물어뜯고야 마는 일도 생겼다.

나는 그 소문을 들으며, 정말 이 곳을 떠날 수밖에 없는 시절이 왔다고 느꼈다.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곳은 한 나절이면 당도할 거리에 있었다. 나는 반대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어쨌든 언젠가 구약의 말들이 폐기되어야 하고, 그 말들의 주인 중 말들처럼 된 자도 같이 묻히는 비극이 생길 것으로 여겼다. 그건 어쩌면 역병의 비극적인 진실 같았다. 모든 것이 불타고 성경이 잿더미가 된 채로 누가 누구를 욕하고 죽였는지도 역사에서 다 잊히고 말 것이었다. 너무 많은 싸움과 너무 많은 죽음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면 큰 기록만이 개괄적으로 남기 마련이다.

나는 어쨌든 살고 싶었고, 부산까지 내려온 뒤로, 사태가 수습되기만을 기다렸다. 일주일간의 전투 끝에 웬만큼 사태는 수습되고 말들은 묶인 채 죽은 시체로 버둥거렸다고 한다. 그 옆에서 말들에 깔린 채 전염된 사람들도 함께 버둥거렸다고 한다. 그것은 비참한 모습이었다. 증오와 저주로 범벅이 된 말로 성경의 말들이 모두 죽었음을 을씨년스럽게 들려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구도시 성경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영영 그곳으로 가지 않기 위해 제주도로 건너갈 참이었다. 그때 성경에서 들려온 마지막 소식을 들었다.

누군가 신약을 가져왔노라며 “구약의 말들을 폐기할 수는 없다”고 선언했다는 것이었다. 구약의 말들과 말들에게 전염된 사람들은 일단 격리하고, 그는 사람들에게 저주와 증오의 말 대신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몸을 아끼는 것처럼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을 건넸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약을 전염병을 걱정하는 사람들과 전염병에 물든 자들에게 한 알씩 나누어 주었다는 것이다. 진정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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