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글 & 조선풍속화
고려 말 혁명의 시대, 사대부 정도전은 혈기왕성한 사상가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재상 중심의 나라, 왕이 엉망이더라도 언제든 능력 있는 엘리트를 중심으로 세상을 운영하는 나라. 온전히 백성을 위한 나라는 아니었지만, 입헌군주제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상상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노래는 태종 이방원의 권력 찬탈로, 수포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조선 혁명의 설계자는 500년 역적으로 남습니다. 모두가 복권되어도 조선 망국에 다다르던 고종 시대까지 제대로 복권되지 못했던 사람이 정도전이었습니다. 왕도 정치를 배격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사의 승리자인 이방원이 심대한 위협을 느꼈던 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재상 중심의 정치 시스템을 제외하면
사대부의 나라 조선의 모든 시스템에 적용되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요. 나라가 안정되고 나서는 혁명가보다는 충신이 필요했기에, 태종은 자신이 죽인 정몽주를 미화하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결국 왕이 선택한 인물이 왕에 버금가는 권력을 누리기도 하지만, 언제나 왕이 회수할 수 있었습니다. 고려 시대의 신돈만큼이나 위세를 떨쳤던 존재들은 조선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왕의 눈과 귀를 가렸습니다. 어쩌면 그런 식으로 매도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요즘 드라마에서 능력 있는 회사원이 회사를 운영하기 위한 야심을 지니는 것을 재벌의 재산을 찬탈하는 것으로 그려지듯이요. 사실 기형적인 운영으로 국민 세금이 많이 들어갔다면 재벌의 재산만은 아니기에 특정 집단이 사유화하기보다는 능력 있는 존재가 운영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열과 성을 다해서, 재벌의 순수한 3세가 믿었던 이에게 배신을 당하고, 능력있던 가신은 그렇게 탐욕에 눈이 멀어 기업을 털어먹으려다가 끝내는 망하는 스토리가 부지기수입니다. 교회 문화가 뿌리내렸던 서구권의 기업 문화(전문경영인 시스템)와는 많이 다르죠. 대한항공기를 회항시켰던 분의 정체성에 대해서 외국에서 재벌이라는 용어를 공부해야 할 만큼 우리와는 조금 이질적일 수 있습니다.
어쨌든 그러하다 보니 나라를 통째로 흔드는 개혁가가 진실과 다르게 왜곡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가 하면 실제로 부패를 이끄는 존재들도 환관 외척 세도가 등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들을 흔히 문고리 권력이라 부릅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모두가 봉사하는 새 세상을 열고 싶어합니다. 자신이 콧노래를 부르면 모두가 알아서 복종하는 시스템, 하지만 왕위를 찬탈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인 상태에서, 대개는 문고리 권력으로 뿌리내리고
그들끼리만 호의호식하며, 권세가 이상의 권세를 누립니다. 그러다 보면 자기들끼리
정략결혼으로 카르텔을 구축하고 영원토록 권세를 유지하려는 노력도 하게 됩니다.
문고리 권력자들의 집 마당에는 그들을 한 번이라도 알현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북적이곤 합니다.
뇌물도 챙겨오기 마련입니다. 어떤 식으로는 연을 만들어 동아줄을 장만하고자 함이지만, 언제나 대의적인 순수함을 포장하기도 합니다.
"이게 다 우리 생존을 위해서일세. 내가 절대 흉악한 사람은 아니야. 다 가족과 후손을 위해서지. 이렇게나 나는 희생적일세."
그렇게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고, 기약없이
기다리다 보면
거의 진이 빠져서
비몽사몽하다가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머리를 쓰는 사람이라면 그 집안사람에게 접촉하여서는
어떻게든 자기만 짧게라도 남몰래
문고리 권력자님을 알현하게 해달라고 간청하기도 하였습니다.
"어허, 이건 백지수표인가? 백지인가?"
하지만 각종 청탁에도 받다 보면, 아무래도 크게 한 장 쓰는 사람들이 우선권을 얻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아이들을 서당에 보는 것도
공부 열심히 해서 성공하라는 의미라기보다는, 세상살이의 이치를 잘 익혀 잔머리를 굴리는 법을 알게 모르게 배우라는 것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좋은 위치에 있어야 부정한 기회라도 더 오는 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