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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Jul 29. 2023

심장이탈증

콩트

『서울에 사는 P(31)씨는 심장이 떨어졌다며 한 달 전 G 대학병원 흉부외과를 찾았다. 진단에 따르면 그의 병명은 의학 용어로 후천성 애정 결핍증, 선천성 운명 과다증이다. 흔히 알려지길 심장이탈증이라고 한다. 사랑 바이러스가 가슴을 찢고 침투하여 생기는 병으로 알려져 있다. 치유 시일이 오래 걸리긴 하지만, 난치병은 아니다.

하지만 P씨의 경우엔, 감염 경로가 독특하다. 대개 사람과의 눈빛, 피부, 대면 접촉을 통해 바이러스가 전염된다고 알려졌지만, 그의 감염경로는 컴퓨터였다. 의학박사 황수인은 “이 병 자체는 전 세계인의 11%가 앓는 질환으로, 절대 희귀병이 아니다. 하지만 감염경로를 고려하면 매우 희귀하다 할 수 있다. P씨의 사례는 전체 환자의 0.03%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Y일보, 2008년 2월 12일자)

 

하지만 그 병에 대해서 의학전문서적에서 읽은 바 없기에, 그 병이 과연 희귀병이 아닌지, 또한 그 증상이 어떤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 심장이탈증 전문의 황수인의 말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 병에 대해서는 현재 연구 중이며 저명한 의학전문잡지에 논문으로 제출된 바 있다. 내년쯤 그 결과를 책으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감염경로가 다양하여 그 부분에 대해 일관된 결과를 도출하여 정리한 후라야 가능할 것이다.

경로 문제에 비한다면, 그 증상은 비교적 명확하다. 대개 일반인들의 경우에는 사랑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지니고 있지만, P씨의 경우 면역체가 전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랑 바이러스는 자신들이 공격할 대상의 상태에 따라 공격의 강도를 정하는 습성을 지녔다. 즉 일반인을 상대로 할 때 사랑 바이러스는 면역체의 힘을 파악하여 스스로 약해지기 마련이지만, P씨에게는 면역체가 전혀 없어 사랑 바이러스들의 강력한 결집이 이루어졌다. 아마도 그로서는 핵폭탄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이러한 전염 대상에게 처음으로 나타나는 외부적 증상은 가슴이 찢어지는 걸 들 수 있다. 보통 그 증상을 보이는 환자라도 그 범위가 작은 데 비해, P씨의 가슴은 손상된 부위가 넓었다. 군집을 이룬 많은 양의 바이러스는 가슴으로 파고들어 몸 안의 체온에 맞춰 물로 변화한다. 이를 애수(愛水)라 부른다. 애수가 꽉 차면 심장은 자신의 자리에서 밀려난다. 애수의 양이 적으면, 심장이 폐나 대장기 자리로 비집고 들어가거나 갈비뼈에 부딪혀 흠집이 나기도 한다. 애수의 양이 많을 경우엔, 심장이 바깥으로 밀려나기도 한다. 중증의 상태다. P씨처럼, 애수가 온 몸이 적셨다면 심장을 상실하지 않는 편이 이상할 것이다.』(2008년 3월 10일자 인터뷰 요약본)

실제로 P씨는 애수에 찬 자신의 상태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에 가슴에서 붕대를 풀어내고, 찢겨진 가슴을 봉합해놓은 실밥을 푸니 그 안에 파란 물이 고여 있었다.

“고여 있다니요? 이 정도라면 바다는 아니더라도 강줄기는 만들 수 있는 양 아닙니까?”

 

P씨의 반문은 그럴 듯했다. 가슴에 들어찬 물은 너무도 파래서, 천지라고 농을 해도 될 만했다. 그만큼 환자가 절망적인 상황은 아닌 듯했으나, 황수인 박사의 의견은 달랐다.

“실제로 현재의 상황은 결코 낙관적이질 않습니다. 우선 P씨의 경우, 애수가 범람해서 장기를 녹인 것을 넘어서 뇌에도 손상을 주었습니다. 뇌가 죽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애수는 그렇게, 온 몸을 공격합니다. 결국엔 환자의 몸은 애수로만 가득 차게 되는 거죠.”

매우 중증이라 했다. 이 경우엔 뇌사상태에 심장 손실까지 더해져, 흔히 좀비라 알려진 기괴한 물체가 될 수밖에 없다.

P씨 역시 뇌가 손상되었지만 그는 고통을 제대로 느낄 수 없는 듯했다. 그는 그저, 자신의 가슴에 애수가 차 있다며 무척 푸르다고 건조하게 말할 뿐이다. 언뜻 보기에, 그것은 분명 사망상태였다.

“아닙니다. 사망에 이른 것은 아닙니다. 일단 그의 몸이 있고, 움직이고, 말을 합니다. 그것이 비록 그의 의지에 따른 것은 아닐지라도 그 몸이 깨끗이 사라질 때까지는 그를 죽었다고 말하기엔 곤란하군요. 그래요. 굳이 말하자면, 그냥 좀비일 뿐입니다.”

박사에 따르면, 그 상태에서 죽음에 이른다면 모든 몸이 물이 된다고 했다. 그 물은 바닷물과 성분이 똑같은데, 현재 바다는 수많은 사람들이 긴 시간 동안 물로 모여 생성된 것이라 한다.

“결국은 몸이 팽창해서 터져버릴 수도 있습니다. 물이 되는 거죠. 아주 짠 바닷물 말입니다. 온 몸이 눈물을 흘리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짠물을 너무 많이 흘리면, 절대 내버리지 마시고, 보관해두십시오. 수분이 모자라면 보충해야 되니까요. 그게 귀찮으시다면 약을 처방해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자신의 몸에는 자신의 눈물이 딱, 맞습니다.”

 

그 황당한 설명을 믿을 필요는 없지만, 그는 계속해서 P씨가 앞으로 주의해야 할 일을 언급했다.

첫째, 절대 햇빛을 쫴서는 안 된다. 애수의 성분이 바닷물이므로, 물이 증발할 경우 남아버린 소금이 몸을 자극하여 몸 전체가 더욱 빨리 망가진다고 한다. 이를 막으려면 봄옷 두께의 옷으로 몸을 감싸고 그늘진 곳에 있는 게 좋다.

둘째, 심장을 함부로 간수해서는 안 된다. 만일 심장에 심각한 손상이 있을 경우, 병이 낫더라도 곧장 또 다른 심장병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단은 애수가 마를 때까지는, 증류수를 담은 투명한 용기에 담아두어야 한다. 그리고 두 시간에 한 번 관찰하자. 색깔이 선홍빛을 띠지 않으면 반드시 담당의와 상의하라.

셋째, 환자는 지난한 치료 과정 중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 마음의 불안함은 애수의 양을 늘리는 가장 직접적인 요인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편하면 빨리 낫습니다. 물리적 치료 과정이야 간단합니다. 뇌가 다시 생성될 수 있도록 한 후 손상된 장기를 돌봅니다. 물론 그 과정에 지속적으로 애수의 양을 줄여가는 게 중요하죠. 그래도 자꾸, 애수가 생기겠지만 혹여 낫지 않는다고 염려하지는 마십시오.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는 과정을 반복하다가 차츰 애수가 줄어들 테니까요.

심장을 다시 집어넣는 절차는 마지막이 되겠군요. 중간에 억지로 넣어봤자, 또 다시 밀려나올 것이고, 그러면 심장이 손상될 가능성만 높아지죠. 차분히 물의 흐름을 즐기십시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요즘에 이 병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에 따르면, 과거 유럽 낭만주의 시대에 이런 병으로 죽는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예술가나 귀족부인 중에서는 이 병을 ‘위대한 운명’이라 부르며 치료하지 않은 채 방치했다 한다. 의료기술이 급성장한 19세기에도 이 병에 대해서만큼은 간과했다. 아무도 이것을 병이라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랑스러운 상처였다.

“뇌가 회복되더라도 손상된 부위에는 상처자국이 남습니다. 이를 사람들은 추억이라 부르더군요.”

황수인의 말이다.

 

하지만 그의 문학적인 가설 중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은 P씨의 감염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그는 예전에도 사랑 바이러스에 감염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강도가 약했는지, 특이 체질이라서 그런지 면역체가 생기지 않았다. 찢긴 가슴에는 지퍼를 채웠고, 그것을 그의 뇌는 ‘위대한 상처’, ‘아름다운 추억’이라 부르도록 그에게 명령했다. 그는 가슴의 지퍼를 그렇게 불렀다. 때로는 ‘위대한 상처’ 혹은 ‘아름다운 추억’을 열었다. 그러고는 가끔 심장을 꺼내서 그때를 되새겼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습니다. P 환자는 앉아서 심장의 구조와 피의 흐름을 살폈나 봅니다.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히지 못했지만, 잘린 혈관들의 돌출된 모습을 보면서 안테나를 상상했던 듯합니다. 그 혈관을 통해 자신의 뜨거운 피를 어디론가 송신하고 있다고 믿었던 거지요. 말하자면, 심장에서 우주를 발견했는지도 모를 일이죠. 내 추측이 맞다면, 심장의 안테나가 단순히 P의 방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우주로 확장되었던 셈이죠. 기묘한 상상이지 않습니까? 혹시 ‘위대한 상처’ 또는 ‘아름다운 추억’을 열었다가, 운명의 심술에 포획된 것은 아닐까요?”

도대체 이런 일이 가능하기나 할까?

“꼭 불가능하지만은 않죠. 글, 목소리 등 어느 것이라도 좋습니다. 당신의 감각을 뒤흔들 만한 어떤 것이 감지되었다면 말이죠. 확률은 낮지만, 최근 그러한 사례가 종종 보고되고 있습니다. 신경을 지나치게 혹사해서 생기는 현상이 아닌가 추측합니다만, 아직 밝혀진 건 없죠. 대상이 없는데, 사랑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을 보면, 그는 분명 중증입니다.”

 

계속해서 그는 글에도 영혼이 있다는 가설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덧붙여 그것과 심장이탈증이라는 병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연구할 필요가 있다며, 영혼이 변이하면 사랑 바이러스가 된다고 추측했다. 황수인이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게 그 문제의 심장()입니다.”

심장이, 여전히 붉다.





로로스: 방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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