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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Jun 19. 2024

띄어쓰기 음모론

어휘 중심의 언어 발달 & 기존 일상 언어 유지

띄어쓰기 노력은 본능적이나 감각적인 언어생활이라기보다는 학자적으로 언어를 분석하면서 쓰는 느낌이 든다. 물론 이조차 오래 체화되어서 잊었을 뿐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국어학자가 전 국민의 국어학자화를 꿈꾼 것이고, 이것에 훈육된 사람들이 문장 구조를 분석하거나, 최소한의 띄어쓰기를 고민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래도 국어 맞춤법을 표준적으로 정돈하는 경우가 해외에서도 그리 많은 편이 아니라고 하니, 식민지를 겪고, 또 500년 동안 묵혀 두었던 한글을 새롭게 쓰느라 피땀 어린 노력을 했고, 그 결실을 맺은 것으로 봐야겠다. 

다만, 개인적으로 띄어쓰기의 과잉 적용은 세종대왕의 의도에 역행한 게 아닐까 싶다. 세종의 한글을 들고 집현전 학자들처럼 접근한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즉, 국어학적인 시각으로 분석하는 것으로 정갈하게 하려는 것은 문어적 관점으로 구어적 현상을 제어하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음성을 그대로 문자로 옮기고, 구어적인 현상을 제법 살리려는 노력을 하는 가운데, 어느 정도의 문어체적 중용은 필요하겠지만. 또 역설적으로 구어를 그대로 수용하면서 그 의미를 명확하게 하려면 띄어쓰기가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비슷한 표현의 단어를 느슨하게 말할 때는 띄어쓰기로 구별해 주면 의미가 명확해진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띄느냐 마느냐로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 자체가 불편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주의 사항’을 호흡으로 끊어가면서 말하지는 않는다. 또 ‘그걸 활용하는 데 유리하다’처럼 의존명사 ‘데’인가 연결어미인 ‘-데’인가를 띄어쓰기로 구별하여 말하지도 않는다. 띄어쓰기가 어느 정도는 우리 언어 특성상 필요하지만, 솔직히 ‘살펴보도록한다’를 ‘살펴보도록 한다’로, 표현해보도록한다‘를 ‘표현해 보도록 한다’로 호흡을 끊어가며 읽지는 않는다.      


또 개인적으로 띄어쓰기로 의미를 구별하는 접근법은 별로 탐탁지 않다. 정확한 단어 생산에 방해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띄어쓰기를 파격적으로 간소화하면, 띄어쓰기로 구별하던 '-데' 등을 다른 표현의 단어로 대체하는 것에 더 주력하고, 언어 습관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외래어나 외국어, 일본어투, 영어투에 관대해질 것도 같다. 그것에서는 찬반 의견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수우미양가’처럼 반인륜적인 용도로 활용되던 잔재가 아니라면 일본어투도 적절히 우리말 안으로 들여옴으로써 다양한 문장 표현을 장착하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 예를 들어 ‘납득’을 일본어투라고 굳이 쓰지 않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그렇게 어휘를 하나씩 줄여갈수록 띄어쓰기 등 더 까다로운 문법 요소를 지키는 쪽으로 발달하기 때문이다. 

만일 ‘생각하는 데 필요하다’를 쓸 때 띄어쓰기 위주로 발달하여 어휘 발달을 고민하지 않는 것을 지양하고, ‘생각하는 것에 필요하다’로 조금 더 명확히 하여 띄어쓰기 여부를 고민하지 않는 방식으로 언어와 어휘와 진화한다면 어떨까. 조금 더 명확한 ‘어휘 중심의’ 언어로 바뀌지 않을까 싶다.           


물론 말의 습관을 바꾸자고 하기도 어렵다. 몽상에 가깝다. 그럼에도 피동을 다 능동으로 바꾸자던 국어학자도 있었듯이, 또 세종대왕이 문자를 단순화함으로써 우리말의 발음이 디지털화된 면도 있듯이, 굳이 형식적 틀을 부여하듯이 언중의 언어 습관을 어휘 중심으로 확장하며 정신과 내용을 개선하려는 시도도 있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방향으로 몽상하게 된다. 구어체를 다 반영하는 것도 아니면서 구어적 습관을 그대로 수용하여 문어적으로 분석하여 옮기는 방식보다는, 그냥 언어적 습관에 어휘를 정확하고 풍부하게 쓰는 방식으로 바꾸면 띄어쓰기 문제를 간소화해도 의미 구별에 모호함이 사라질 것이란 믿음으로.     


사실 이런 때에는 국어학자들이 구어적 습관을 더 존중하여 일상어의 모호한 어휘 습관을 그대로 수용하고 띄어쓰기로 그것을 문어적으로 구분하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띄어쓰기를 제대로 하기 어려워한다. 그건 배운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띄어쓰기 원칙의 문제인 듯하다. 농담이지만, 언어 전문가들이 밥 먹고 살기 위한 음모가 아닐까 싶다.

"너희가 정말 배운 것들이라고 생각하느냐? 띄어쓰기도 제대로 못하는 것들이!"라고 전 국민을 가스라이팅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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