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납, 연역, 유비의 한계 #1

인식과 추론(157~158F)

by 희원이
글쓰기 외전: 인식과 추론


◑ 전체 원고 콘셉트 및 진도 상황

- 매거진 방식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물론 실제로 다양한 저자를 섭외하지는 않고 단독으로 작업하였습니다. 매거진에서 다양한 글에 다양한 필자가 있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다중 정체성의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것처럼 고흐 이미지를 배치하고 여러 스타일의 글과 함께 구성하였습니다. 픽션 매거진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매거진 놀이로도 부를 수 있을 텐데, 이 원고의 경우 전체 흐름에선 사실과 경험을 토대로 하되 종종 일관된 방향성을 띠되 원활한 개진을 위하여 허구적 설정을 삽입하였습니다. 대체로 경험적 정보로 이해하셔도 무방합니다.

- 총 173프레임으로, 상황에 따라 약간 바뀔 수 있습니다. 현 발행글은 157~158프레임에 해당합니다.






◑ 생각 노트: 귀납, 연역, 유비의 한계

귀납의 경우 아무리 많은 사례를 모아도 완성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모든 인간은 죽는다”가 귀납 중 99.999999% 그러했고 여전히 진행 중인 표본 중 아직 죽지 않는 사람이 없어서 모두가 진리값으로 합의했다고 해도, 단 한 명만 죽지 않아도 이 명제는 무너진다. 물론 이 명제는 쉽사리 무너지는 것으로 확정되지는 않는데, 설령 1000살까지 살고 있는 사람이 있어도 ‘모든 인간은 죽는다’란 명제가 거짓으로 확정될 수 없다. 1001살에 죽을 수도 있고, 언제든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개는 100살 안으로 죽었기 때문에 금방 명제의 완결성이 증명되었다. 만일 ‘모든 인간은 120세를 초과해서는 못 산다’라는 명제가 있었다면 121살이 되는 인간만 찾으면 이 명제는 즉각적으로 무너진다. 그렇게 명제가 무너진 사례도 있는데, ‘백조’는 거의 완결된 명제로 여겼지만, ‘흑조’가 발견되면서 단 하나의 반례로 명제가 무너진 경우가 있다. 블랙스완의 사건이었다.

이처럼 귀납은 보통 완결되지 않은 채 현재진행형이다. 압도적으로 많은 사례를 통해 거의 공리처럼 인정받는 경우는 있어도 100% 공리가 되기는 어렵다. 더구나 (내 기억으로는) 흄에 따르면, 귀납은 과거의 자료로서만 유의미하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데이터가 0에 가깝더라도, 다음 해에 느닷없이 100으로 치솟는 사건이 언제든 가능하기에 귀납으로는 미래를 예측하는 데에 부적절하다고 한다. 닭에게 계속 모이를 주기에 닭은 사람이 모이를 준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 닭의 목을 비튼다는 것이다. 논리적인 예측이 어려운 순간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기에 귀납적 사고는 이미 확정된 과거를 분석하는 데만 유의미하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경우에는 여전히 유효하다. 개인의 사정을 일일이 통제하기도 어렵고 행동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인간 행동 심리학이라든지 각종 과학과 통계적 접근이 발달하고, 빅데이터와 AI를 통해서 압도적으로 많은 자료를 활용하다 보니, 인간 주관의 선택이라 여겼던 선거 행위에서도 상당히 정확한 예측이 가능해졌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무의미한 수준으로 보기는 어렵다. 여전히 누가 어떤 후보를 찍을지는 그에게 달려 있는 듯 보이지만, 뜻밖에 AI는 우리가 뭘 좋아하고 선택하는지도 파악하고 맞춤형 광고를 제공하게 되었다.

연역법의 경우에는 전제의 완결성을 살펴야 한다. 보통 수학적 공리는 완결되었다고 본다. 아무도 1+1=2라는 것을 공리가 아니라면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냥 기본적인 약속에 가깝다. 그러나 연역법의 대전제와 소전제 역시 꼭 수학적 영역에서만 도출하는 것이 아니다. 경험 과학에서 공리는 보통 귀남법에서 비롯되었다. 단지 오랜 세월 축적된 데이터를 모두 뒤져도 반례가 없을 때 공리로 대접 받는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모든 인간은 죽는다”가 귀납 중 99.999999% 그러했고 여전히 진행 중인 표본 중 아직 죽지 않는 사람이 없어서 모두가 진리값으로 합의한 것이다. 심지어 당장 상당히 오랫동안 죽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명제가 무너진다고 확정하기 어렵다. 그런 경우가 생겨서 상당히 많은 이들이 갑자기 500살이 넘어도 죽지 않는다고 하면, 아무래도 ‘모든 사람은 죽는다. →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라는 삼단연역을 유보하기는 할 것이다. 전제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너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전제에서 무너지는 바람에 결론이 무너진 경우다.

‘백조는 오리과의 대형 물새로 온몸이 하얀 색이라 백조로 불린다. → 꾸니는 백조다. → 따라서 꾸니는 하얀 색이다.’

흑조가 나타났으므로 대전제를 조정해야 하고, 꾸니는 검은색일 수도 있게 된다. 즉, 연역의 경우에는 대전제와 소전제의 완결성을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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