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과 추론(166~168F) & 에어픽션
글쓰기 외전: 인식과 추론
◑ 전체 원고 콘셉트 및 진도 상황
- 매거진 방식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물론 실제로 다양한 저자를 섭외하지는 않고 단독으로 작업하였습니다. 매거진에서 다양한 글에 다양한 필자가 있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다중 정체성의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것처럼 고흐 이미지를 배치하고 여러 스타일의 글과 함께 구성하였습니다. 픽션 매거진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매거진 놀이로도 부를 수 있을 텐데, 이 원고의 경우 전체 흐름에선 사실과 경험을 토대로 하되 종종 일관된 방향성을 띠되 원활한 개진을 위하여 허구적 설정을 삽입하였습니다. 대체로 경험적 정보로 이해하셔도 무방합니다.
- 총 173프레임으로, 상황에 따라 약간 바뀔 수 있습니다. 현 발행글은 166~168프레임에 해당합니다.
◑ 한눈팔기: 지레짐작, 음모론, 소설 그리고 거짓말하기
지레짐작은 근거는 없지만 어쩐지 심증이 들어 나름 논리정연하게 상상하는 것이고, 음모론은 거기다 체계적인 근거를 덧붙여 지레짐작한 것을 하나의 가공된 이론이나 진실로 만들려는 과정에서 나온다. 소설은 허구라는 것을 합의하고 마음껏 상상하는 것이며, 소위 ‘거짓말하기’는 그냥 형식도 없이 허구를 잡담하는 것이다. 이때 진실이 간간이 섞이기도 하는데, 부득이한 경우도 있고 의도적인 경우도 있다. 독자는 그러한 내용이 저자의 상황과 어떤 모종의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심증을 지니는 습관이 있는데, 나는 이를 ‘독서착각’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지레짐작, 음모론이 생기고 아예 소설로 쓰거나 소문을 만들기도 한다. 일종의 에어픽션을 명시적으로 창작하는 셈이다.
이러한 흐름을 장악하고 분명히 인지하는 사람들은 비교적 긍정적으로 이러한 습관을 이용하기도 하는데, 그것으로 소설을 쓰거나 조언을 해주어야 하는데 마땅히 근거가 불명확하여 넌지시 다른 말 하듯 조언하거나 그저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흐름에 장악 당한 사람은 이러한 습관에 휘둘려 지레짐작인 줄 모르거나 지레짐작을 소문으로 만들거나 음모론을 맹신하기도 한다. 불씨란 어디서든 생기기 마련이다. 불씨가 생기기 전에 말을 하지 않으면 불씨는 없겠으나 그것은 때론 거의 불가능하다. 말을 안 할 수도 없고, 만일 불씨가 생긴 뒤 말을 하지 않으면 불씨가 커지기만 한다. 이때 태울 땔감이 없다면 그 불씨는 사그라지기도 하지만, 결국 이런저런 땔감이 다 타고 나서야 진한 연기가 자국을 남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음모론자들은 그 땔감을 다 태우려고 하고 거기에 땔감을 얹기도 한다. 종종 산불이 되기도 한다. 이때는 적극적으로 진화 작업을 하게 된다. 단순히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땔감이 될 만한 요소를 깡그리 제거해버리는 것까지 포함한다.
◑ 삼천포로 빠지기: 에어픽션의 진행 과정
에어픽션은 공상, 망상, 잡념, 유언비어 등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그리고 어떤 경우든 확정되지 않은 무형의 서사이자 휘발성이 강한 갈망의 서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에어픽션이 유발되려면 아주 적더라도 ‘장작’이 될 만한 단초가 필요하다. 그것이 우연히 본 ‘카더라’ 소문이 될 수도 있고, 미래 경제에 대한 금융권의 대응을 보도한 박스기사일 수도 있다. 어쨌든 에어픽션으로 진행되려면 장작이 있어야 한다. 합리적인 추론이라는 포장의 방식으로도 오고, 무작정 뜬금없이 공상으로 오려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무엇이든 태울 만한 것이 있다면, 그다음에는 이를 태우기 위한 작은 ‘불씨’가 필요하다. 정부의 이해 안 되는 대처에 관한 기사라든지, 연예인의 열애설이 나기 전 부산을 떠는 열성 팬들이라든지 뭐든 좋다. 장작이 쌓이고 작은 불씨가 스며들면 발화를 시작한다. 그 불꽃은 처음에 작았지만 누군가 석유라도 들이붓는다면 금방에라도 모든 것을 삼킬 것처럼 타오른다. 불꽃은 불꽃으로 이어진다. 불꽃의 불길은 점점 걷잡을 수 없어지고 사방으로 자신을 복제한 스스로의 불길을 낸다.
그렇게 불꽃은 강해지고 매캐한 ‘연기’를 생성하기 시작한다. 오래 전 단순히 재떨이 안에서 집중적으로 불을 내면 어떻게 될까 궁금했고, 결국 친구들과 함께 성냥개비를 재떨이 안에 쌓아 올린 채 불을 붙였다. 그렇게 계속 성냥개비를 넣었더니 이내 재떨이는 깨졌다. 방안은 매캐한 연기로 가득해서 창문을 열었는데, 정말로 불이 커튼에 붙는 줄 알고 꽤 긴장했었다. 그저 작게 불길이 오르다가 꺼질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엄마가 일찍 들어오면 혼날 것이 자명하여 긴장했으나, 에어픽션의 경우라면 그럴 걱정을 필요 없다. 혹시 자신이 에어픽션의 흔적을 남겨놓은 일기장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들킬까 봐 걱정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 보면 불을 실제로 낸 것도 아닌 공상일 뿐이니, 기억 조작을 습관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면 그리 걱정할 일도 아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통제하기 어려운 불길과 연기는 결코 유쾌한 느낌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게다가 에어픽션의 창작자에게만 보이는 무형의 재가 바닥에 있을 텐데 그것을 깨끗하게 머릿속에서 정리할 일도 남았다. 자칫하면 그렇게 분쇄된 재들 하나하나가 씨앗이 되어서는 또 다른 장작으로 커져 있을 것이다. 너무도 빨리 그것은 가득 쌓여서는 또 어떤 불씨를 만나 발화할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