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비어와 에어픽션

인식과 추론(169~173F)

by 희원이
글쓰기 외전: 인식과 추론


◑ 전체 원고 콘셉트 및 진도 상황

- 매거진 방식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물론 실제로 다양한 저자를 섭외하지는 않고 단독으로 작업하였습니다. 매거진에서 다양한 글에 다양한 필자가 있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다중 정체성의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것처럼 고흐 이미지를 배치하고 여러 스타일의 글과 함께 구성하였습니다. 픽션 매거진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매거진 놀이로도 부를 수 있을 텐데, 이 원고의 경우 전체 흐름에선 사실과 경험을 토대로 하되 종종 일관된 방향성을 띠되 원활한 개진을 위하여 허구적 설정을 삽입하였습니다. 대체로 경험적 정보로 이해하셔도 무방합니다.

- 총 173프레임으로, 상황에 따라 약간 바뀔 수 있습니다. 현 발행글은 169~173프레임에 해당합니다.






◑ 삼천포에서 산책하기: 유언비어와 에어픽션

유언비어는 부정적인 에어픽션이 비교적 명료하게 확정되어 유통되는 상태 중 하나다. 완전히 없던 내용을 창작하여 유언비어를 만들려면 우선 “아니 뗀 굴뚝에 연기를 내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것이 살아남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을 넘지 못하고 많은 유언비어의 유통 시도가 실패로 끝나는데, 달리 말하면 유언비어를 확정하기 전에 에어픽션을 확립하는 과정이 필요한 셈이다. 그 에어픽션은 부정적인 에어픽션의 유형으로 지레짐작, 과대망상, 독서착각, 고정관념, 의심, 불안 등 다양한 원인에서 비롯된다. 여러 원인을 악의적인 의도로 증폭할 수 있다. 즉 유언비어는 의도가 분명할 때 자주 생기는데, 꼭 반드시 그러지 않은 채로 자연스럽게 유언비어가 생성되기도 한다. 즉 의도가 명백하든 그렇지 않든 에어픽션이 모호함의 수면 위로 올라와 구체적인 서사를 확정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처럼 유언비어의 생성에는 구체적인 서사의 확정이 필요하며 의도의 유무에 따라서 악성 유언비어와 자연스러운 유언비어로 나뉠 수 있다. 단순한 악의라든지 분명한 목적에 따른 악성 유언비어를 생성하기 위해서는 명백하게 악의적인 의도를 지닐 때가 많은데, 가장 극명하게 악의적인 방식의 결과로서 유언비어를 흑색선전에 활용하곤 한다.

그렇다면 유언비어가 되기 전에 유사한 방식으로 유통되는 에어픽션(혹은 에어픽션 단계를 넘어 확정된 구체적 서사)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의도 없이 정신적 문제로 발생하는 망상이 있다. 이런 경우 구체적인 서사의 설득력조차 염두에 두지 않기에 언제든 격의 없이 발생하며 이는 정신적 문제가 있는 창작자의 조건쯤이 필요하다. 창작자가 온전히 망상하지 않는다면 부담감 때문에 눈치를 보게 되고, 망상은 에어픽션 속에 감춰지거나, 합리적인 방식으로 개선되어 드러나기 마련이다. 편집증의 경우 그러한 경향을 보일 때가 있는데, 일상에서 전혀 문제가 드러나지 않지만 속으로 망상적 사고를 하는 경우가 있다. (또 꼭 현대 의학적인 질병이 아니더라도 망상의 결을 지닌 에어픽션도 떠올려 볼 수 있다. 이는 소설가라든지 각종 호사가들의 상상을 통해 생성되었다가 스러진다.)

이러한 경향이 정신적인 문제로 깊어질 경우에는 리플리 증후군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자기 자신이 하던 거짓말에 스스로 현혹되어 그 거짓말을 진실로 착각하는 상황을 이르는 용어다. 처음에는 간단한 거짓말이었으나 그 거짓말을 끝내 스스로 착각하여 거짓말로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겠다. 이런 경우라면 누군가에게 진실이라 믿고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게 되므로, 에어픽션이 외부적으로 드러나서 구체적인 서사로 확정되는 것이겠다. 누군가에겐 사기꾼으로 낙인 찍히기 좋다.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스스로 ‘의도의 유혹’에 휘말린 것이다. 물론 아주 약한 리플리적 현상을 경험해본 사람은 많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창피한 순간을 기억하는데 기억의 불완전함 때문에 망각이 되지 않는 그 기억을 왜곡하여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해서 완충 장치를 만드는 경우를 들 수 있다. 내 경우엔 어떤 순간 잠결에 생각한 것이 길몽과도 같은 효과가 있어서 이야기하다 보니 그것을 (잠결에 상상한 것이 아니라) 예전에 꾸었던 꿈으로 말하곤 했는데, 어느 순간 한동안 그것이 진짜로 꿈을 꾼 것으로 착각하여 기억한 경험이 있었다. 의도가 있더라도 이 경우엔 의도에 휘말린 수동성이 강하다.


이와 비슷한 작동 구조를 지닌 독서 경험으로는 독서착각을 들 수 있다. 고정관념을 지닌 채 어떤 책을 읽게 될 때 탐정 소설의 잔혹한 장면이 많은 작품을 읽는다면 어쩐지 중성적인 작가명을 보고서도 남자 같다는 이유로 당연히 작가가 남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독서착각인 셈이다.

이러한 고정관념인 독서착각을 역으로 ‘분명한 의도를 지니고’ 작가가 활용하면 서스펜스가 된다. 서술트릭은 이보다 더 나아가서 노골적인 기만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전면에서 한두 개씩 정보를 누락하는 방식인데, 서술트릭의 효과가 극대화되려면 에어픽션이 미확정된 순간에 유동하다가 결말부에 실체적 진실을 드러냄으로써 독자가 오독하여 무심코 구성한 에어픽션을 뒤늦게 깨닫게 하는 기법이다. 절대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독자가 어떤 착각을 해서 어떤 감흥을 일으키게 될지 예상하고 독자의 에어픽션을 활용하는 것이겠다. 그러면서 독자의 게으른 부분이거나 속물적인 부분까지도 지적할 수 있기에, 날카롭게 파고들어 치밀하게 활용하면 독자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기법이 된다.

범죄에서 활용할 경우, 사기꾼들의 기법인 기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구체적인 허위로 속이지 않는 이상, 기만 자체를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어렵거나 명백한 피해가 없다면 법적인 문제가 되기 어려울 수 있다. 다만 광고계에서 기만은 매우 중요한 문제로, 기만에 대한 분명한 제재 기준이 있다. 기만죄의 많은 경우가 허위광고 때문에 성립된 것이 아닐까 한다. 가장 악질적인 경우를 들자면 ‘미필적 고의’를 들 수 있다. 어떤 자극을 막지 않고 방치했을 때 피자극자에게 어떤 결과로 드러날지 충분히 예상함에도 그대로 놓아두는 경우 미필적 고의라고 할 수 있다. 그 의도성이 악의적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의도가 있더라도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다면 법적으로 ‘인식 있는 과실’이라고 한다.






“압도적으로 완성도 높은 글쓰기를 기대하지는 않아요. 그저 어떤 가능성이나 아이디어가 출현하는 것에 있어 장벽이 되는 글쓰기 문화를 참여적으로 바꾸어야겠죠. 그 수준이 상향평준화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거고요.

그러기 위해선 책임지지 못할 글을 인기를 위해 남발해서도 안 되겠죠. 불완전하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그것에 적절한 수준의 책임을 지려는 자세가 필요하죠. 몽상으로 전진할 때 늘 염두에 두어야 하는 지점이에요. 남을 속이거나 현혹하여 판단을 그르치게 하는 목적으로 글을 쓴다면, 브레인스토밍의 장벽을 낮춰 더 나은 결과를 창출하려는 바람과도 대치되는 것이니까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지레짐작, 음모론, 소설 그리고 거짓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