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Part1 (47~49F)
글쓰기 외전: 스타일 Part1
◑ 전체 원고 콘셉트 및 진도 상황
- 매거진 방식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물론 실제로 다양한 저자를 섭외하지는 않고 단독으로 작업하였습니다. 매거진에서 다양한 글에 다양한 필자가 있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다중 정체성의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것처럼 고흐 이미지를 배치하고 여러 스타일의 글과 함께 구성하였습니다. 픽션 매거진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매거진 놀이로도 부를 수 있을 텐데, 이 원고의 경우 전체 흐름에선 사실과 경험을 토대로 하되 종종 일관된 방향성을 띠되 원활한 개진을 위하여 허구적 설정을 삽입하였습니다. 대체로 경험적 정보로 이해하셔도 무방합니다.
- 총 148프레임으로, 상황에 따라 약간 바뀔 수 있습니다. 현 발행글은 47~49프레임에 해당합니다.
◑ 창작 노트: 지식놀이 기법, 뉴스픽션과 매거진 놀이
지식놀이의 경우엔 지식을 교양서처럼 흥미 유발을 하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방법도 있지만, 아예 부가적인 장벽을 잠시 뒤로 물리고 지식의 요소를 과감하게 변용하거나 공격적으로 활용하면서 적극적으로 새로운 인식을 모색하려는 시도를 총칭한다. 모험적 가정,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지를 치열하게 인지하여 모르는 상황에서의 적극적 추론, 아마추어의 적극적 상상과 확장된 몽상, 자기 세계 안의 언어 재편, 오타쿠 및 딜레탕트로서 그럼에도 가치 있을 지점의 획득 등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이다. 물론 이것을 할 때에는 저급한 이론, 음모론 및 가짜뉴스 등에서 보이는 위험성을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이것을 제도권에서 받아들일 문법의 경계 안에 끌어들일 수 있다면, 지식놀이를 넘어 지식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지식놀이 기법을 적용하는 대표적인 외적 스타일로는 뉴스픽션을 떠올릴 만하다. 이때 뉴스픽션이 허구의 기사라는 점을 알리기 위해 기사 본문에 페이크 지뢰를 심어 둔다면 이 역시 제한된 규칙일 수 있다. 과거의 사건을 미래에 일어날 것처럼 날짜를 미래로 설정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되며, 한국에 사는 한국인이라면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성 씨를 쓰는 경우도 이에 해당될 수 있다. NIE 교육 때처럼 신문 제작 놀이를 겸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매거진 놀이도 지식놀이 영역에 속한다. 픽션 매거진을 콘셉트로 해 일정한 방향성을 띤 다양한 형식의 글을 자유롭게 배치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그 내용 역시 논리적 정갈함보다는 짧고 다양한 형식으로 실험적인 주제나 소재를 여러 각도로 동시에 보여줄 수 있다. 사실 매거진 방식의 경우 과정과 놀이의 관점에서 보면 제한된 규칙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그 성향이 약한 편이다.
◑ 창작 노트: 매거진 방식은 과정과 놀이의 속성이 약하긴 하지만, 언제나 집단 창작 과정의 현재진행형이다
매거진 방식의 경우 ‘과정과 놀이’ 관점에서 보면, 일반적으로는 ‘상호성’은 약할 수 있다. 릴레이 방식을 작품 내적 규칙의 범위를 넘어 개개인 간으로 넓히면, 어떤 글에 대해 다음 내용을 받아서 쓰는 릴레이 집단 창작 역시 상호성이 있기는 하다. ‘단계적 마감’의 속성도 약한데, 계속 다시쓰기나 콜라주로 병합해야 할 필요 없이 모든 요소를 배치하기 때문이다. 대신, 다른 (가상) 저자의 다양한 형식이 병합하지 않고 각자의 요소를 자리만 잡아놓은 ‘약한’ 콜라주처럼 놓이면서 하나의 방향성을 함의한다는 점에서, 집단 창작의 요소가 스민다. ‘제한된 규칙’의 성격도 약하다고 할 만큼 자유롭게 여러 형식에서 택하고, 순서를 크게 의식하지 않고 배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과정과 놀이의 속성이 매우 약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역설적으로 그 요소를 모두 갖춘 집단 창작의 요소를 지닌다.
무엇보다 자기가 잘하는 것을 배치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내밀한 밀도를 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시민적이다. 이것을 픽션적으로 의도한다는 점에서는 분명 놀이적이지만, ‘제한된 규칙’이나 ‘단계적 마감(콜라주적 배치, 빌드업된 버전들의 병렬 배치, 여러 작가가 하나의 내용으로 각자 다시 쓰기 등)’이 적용되면서도 느슨하다. 느슨해서, 수용력이 크다.
‘과정과 놀이의 관점’에서 그 특성이 약하지만, 매거진 방식은 형식의 헐거움 때문에 ‘결과와 예술의 관점’에서도 미완의 형식으로 남는다. 언제나 여러 글을 다른 스타일과 내용으로 교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콜라주나 모음집 방식보다도 느슨하다. 그렇기에 결과는 임의적으로 마감일을 통해 규정될 뿐 여전히 과정의 현재진행형이라 할 만하다. 다양한 경우의 수를 조합한 배치는 선택되지 않았을 뿐 그 허용도가 높은 채로 괄호로 남겨진다.
일반적으로 매거진 방식을 연상하자면, 모두가 협의해서 주 편집자의 주관 아래 전체의 콘셉트와 세부 내용을 구상하고, 그것에 맞춰 각자의 장기를 발휘하여 글을 싣는다.
물론 그러한 역할을 다중 정체성을 두고 혼자서 작성하는 매거진 놀이를 할 수도 있다. 이때는 비교적 놀이성이 선명해진다. 이러한 놀이를 통하면 빡빡한 완성도보다는 하고자 하는 말의 방향에 더 초점을 맞춘다는 장점이 있다. 분명 기술적 숙련도보다는 배치와 편집의 안목으로도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어디를 읽어도 큰 맥락을 염두에 두지 않고도 읽을 수 있게 한다는 점, 쓰는 입장에서도 다양한 형식을 적용해 볼 수 있다는 점, 내용에 맞는 형식을 붙여서 전체 통일성에 크게 문제 되지 않고 배치할 수 있다는 점, 그렇게 콜라주적으로 놓인 글을 통하여 어쨌든 무언가를 말할 수도 있다는 점이 이 방식(내적 스타일)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