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글 & 예정옥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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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하고 있었어요.
책을 드니, 무게감도 좋고 무엇보다 책 디자인이 깔끔하고 예뻤어요. 괜히 읽고 싶게 하는 그런 책이었어요.
하루 종일 피곤했는데, 택배로 온 책을 보고는,
일단 샤워부터 했어요. 아, 노곤하다.
노곤하다 보니, 깜빡 졸기도 하였어요.
바깥에서 당장 해결해야 할 이런저런 문제를 생각하다가, 점점, 이 생각이 저 생각 같고, 저 생각이 이 생각 같아질 때 몽롱하였던 것이죠.
생각은 점점 욕조 바깥까지 넘쳐 흘렀어요.
점점 고인 물에 하나의 종이배만이 떠올랐어요. '그냥 죽 쉬고 싶다, 돈만 있다면.' 이런 단상 같은 종이배였어요.
그런데 사실 이런 단상은 모두가 스치듯 해보던 단상이기도 하고, 너무도 많다 보니 더는 개인적인 단상이라 할 수도 없었어요. 단상이 우리를 지배하듯, 종이배는 우리를 모두 태웠어요.
분명 세속적인 동기로 띄워놓은 종이배였는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아주 먼곳까지 꿋꿋하게 나아갔고, 그러다 보면 그 자체로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었어요. 때로는 종이배는 종이배인 채로 아름다웠어요. 삶은 온실 속에 박제된 것이 아니라, 물결에 출렁이며 뱅뱅 돌다가도 어쨌든 나아가는 것이기도 하였어요. 예정되지 못한 모든 꿈처럼, 흔들리다가도, 어느 날엔가는 종이배가 나아간 뒤에 글자들이 남기도 하였어요.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굳게 믿어요! 예정옥"
파도가 데려온 글자들이
파도의 물결선에서 빠져나와
해변에 하나하나 남기도 하였지요. 노을이 물들어 오는 하늘 아래 해변에요.
졸던 사람이 노을 뒤 시간을 뒤에 남기고,
이런저런 생각을 욕조에 띄우고는
욕조에서 나와
책을 펼쳤어요. 책은 그리 두껍지 않았어요. 출판사 강가라는 이름이 박혀 있지 않았어요. 강물은
조용히 책 하단에 흘렀어요. 강가에 앉아 물 흐르는 풍경을 즐길 수도 있었어요.
책은 두껍지 않았어요.
얇은 책이라고 작가의 노고까지 얇은 건 아니었어요.
그 책을 다 읽고
감상평을 쓰겠다는 약속은 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서평단을 신청하지 않았어요.
약속을 하면 의무가 되었고, 책을 잘 못 읽는 사람으로서
읽다가,
'어우 눈 시려'라고 할 수도 있었기에, 약속을 하면 꼭 지켜야 한다고 여겨서
부담감이 커졌기에,
약속과 약속 사이로 난 무언의 길을 퇴근하는 직장인처럼 걸으며,
의자에 앉을 생각을 하다가
침대로 직행하곤 하였어요.
그런데 술은 또 그렇게 성실히 마셨어요. "그 시간에 글을 썼으면 대업을 이루었을 것"이라는 농담을 하기도 하였어요.
그런데 때로는 술보다, 쓰기보다, 읽기가 좋을 때도 있는데, 어쩐지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 하단으로 조용히 흐르는 강을 보면서 강가에
조용히 누워 있었는데, 풀밭에는 진드기도 없고, 불개미도 없고, 책을 펴는 족족
와닿는 문장들이 여럿 보였기 때문이에요.
삶을 아름답다고 믿는 것은 괜찮은 일 같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