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삼촌 → 촌락 → 락커 → 커서 → 서산 → 산삼 → 삼촌
'촌락'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면 왠지 고즈넉하고 잔잔한 시골 풍경이 떠오를 것 같지만, 의외로 이 단어는 요즘 일상어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다. ‘촐랑촐랑’ 거리는 듯한 경쾌한 느낌의 단어 같기도 한데, 사실 ‘촌락’은 그런 경쾌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발음을 내다 보면 ‘락’이 뒷걸음질 치며 바닥으로 끌어앉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말 끝자락에서 꺾여버리는 듯한 어감은, 왠지 이 단어가 오래된 유물처럼 땅에 묻혀서 잊혀져가는 죽은 단어 같다는 인상을 준다.
예전엔 촌락이라는 단어가 한적하고 작은 공동체를 의미하는 데 자주 쓰였지만, 이제는 그 자리를 ‘동네’나 ‘시골’이라는 단어가 채우고 있다. 촌락이라는 단어를 억지로라도 다시 꺼내 쓰려 하면, 어쩐지 옛날 앨범 속에 들어있는 퇴색된 사진 한 장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어쩌면 촌락이라는 단어는 지금 시대에 잘 맞지 않는, 구식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언어의 한 자락에서 자연스레 자리를 내어주고, 잊혀져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요즘은 ‘지역 공동체’라는 표현이 오히려 더 자주 쓰인다.
촌락이라는 단어는 시대의 흐름과 언어의 변화를 묵묵히 따라가다가 결국 언어 유산의 한 켠으로 물러난 셈이다. 마치 오랜 시간 발목을 잡고 있던 촌락이 이제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촌스럽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요즘 ‘프로스펙스’나 ‘까발로’ 운동화를 떠올려보면, 촌락이라는 단어도 그 시절의 유물처럼 느껴진다. 지금도 마트 한구석이나 할머니 장롱 어딘가에 프로스펙스 운동화가 남아있을 수 있듯이, 우리 마음속에는 여전히 촌락이라는 단어의 흔적이 자리하고 있을지 모른다.
물론, 언어의 흐름 속에서 사라지는 단어들도 많다. 한국에서는 ‘여류 작가’나 ‘여배우’ 같은 단어가 성평등의 관점에서 점차 쓰이지 않으려는 흐름을 타고 있고, 이제는 ‘양성평등’이라는 단어조차 시대에 뒤처지는 표현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런 단어들은 성 역할이나 고정된 성별 개념을 강조한다는 이유로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그러나 ‘촌락’은 그러한 역사적, 사회적 의미의 잔해에 얽매인 것은 아니다. 단지 시대가 흐르며 잊혀진 단어일 뿐이다. 촌락이라는 단어에 부담스럽거나 불편한 의미가 덧씌워진 것도 아닌데, 그저 우리 언어의 한 켠에 뒹구는 고전적인 표현이 되어버렸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촌락이라는 단어가 현대의 일상적인 언어로 복귀하지 못한 채, 시대의 흔적을 간직한 채로 남아 있다.
촌락은 이제 그 의미와 무게를 잃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잔잔하게 존재감을 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누군가가 이 단어의 아름다움과 정서를 다시 발견해 내기를 바라본다. 단순히 지역 공동체를 뜻하는 단어에서 벗어나 더 다채로운 어감으로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