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원이 Jul 07. 2024

삼촌들, 친삼촌이 아닌 당신들

끝말잇기 놀이

삼촌 → 촌락 → 락커 → 커서 → 서산 → 산삼 → 삼촌


 



 삼촌- 들은 사실 친삼촌들은 아니었다. 삼촌들은 아빠라 부르기 애매한 나이대의 남자들이었다. 애인이 되기엔 나이가 많고, 그렇다고 아빠나 아저씨라 부르기도 애매할 때, 친근한 표시로, 이모처럼 삼촌이라 부르기도 했다. 말하자면 삼촌은 부담 없는 호칭, 애매한 상황에서 부르기에 적합했는데, 그런 만큼 책임감이 많이 느껴지는 호칭도 아니었다. 완전히 외따로 떨어져버린 소원한 관계 같지도 않았다. 때로는 격식이나 습관만이 남은 무미건조한 호칭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만큼 무난한 호칭도 없었다.


 촌락- 에는 삼촌들이 많았다. 삼촌들이 아니지만, 삼촌이 되어버린 삼촌들은 이모들의 일을 돕기도 했고, 어정쩡한 호칭만큼이나 희미한 흔적만을 남기고는 마을을 떠나기도 했다. 그러면 그 이유를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한동안 보이지 않는 삼촌이 어느 날 마을에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기도 했다. 저마다 문제가 있었겠지만, 굳이 알려 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나쁜 일이기만 하다면야 안타까워 할 수도 있지만, 도와주어야 할 번거로운 일이 생길까 봐 애써 더 알려 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잠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동네의 마을 회관에 들어왔던 삼촌들 중에는 그런 부류의 삼촌이 종종 있었다. 회관에 마련된 숙소에서 잠을 청하고 숙식을 해결하며, 그곳


 락커- 에 자기 물품을 두고 다니던 삼촌들이었다. 락커에 웬만해서는 모두 들어갈 정도, 그러니까 가방 하나에 모두 들어갈 정도의 필수품 정도를 락커에 놓아두었다. 어떤 물건은 그대로 유류품으로 남았다. 다른 삼촌들이 그 물건들을 창고에 넣어두었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버려야 했다. 그중 쓸 만한 것은 거의 없었고, 그나마 쓸 법했던 물건은 유통 기한이 지나서 어차피 버려야 했다. 돌아오지 않을 거면 애초에 물건을 모두 들고 갈 것이지, 그런 식으로 물건을 두고 가면 그걸 치우고 창고에 한 자리를 오래도록 채워두어야 했다. 누구도 삼촌이 돌아올 것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때로는 한두 달 뒤 나타나서는 갚아야 할 돈을 갚고는 자기 물건을 마저 챙겨서 떠나기도 했다. 물론 대개는 100일이 지나도 오지 않았고, 창고가 채워질 때마다 오래 묵은 물건부터 버렸다.


  커서- 도 떠나는 사람들은 떠났다. 떠나야 할 사람들,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었고, 삼촌들도 그랬다. 그건 오래도록 자주 아빠 따라 이사를 다녀야 했던 아이도 그랬다. 그건 아이의 일만도 아니고, 자기 가족만의 일도 아니며, 많은 여러 삼촌들의 일이기도 하다가는 것을 그 촌락에서 알았다. 그만큼 다행히도 그때부터는 아이도 그 촌락에 제법 오래 살았다.


 서산- 너머의 일몰과 노을을 자주 보았다. 그러면서 컸다.


 산삼-을 찾으러 다니던 삼촌은 오래도록 그곳에서 버텼고, 홀로 살았다. 산 중턱에 허름한 창고 같은 곳을 집으로 개조해서 살았다.


 삼촌- 은 운이 좋았는지 나빴는지, 그곳을 떠나지 않을 수 있었고, 떠날 수 없는 채로 오래 살다가, 그곳에서 혼자 죽었다. 그래도 종종 산을 오르던 삼촌들 덕분에 그 삼촌의 시신은 부패하기 전에 거두어 장사를 치를 수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사는 산책 하다 책 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