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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서: 쓰이는 단어지만 지금 쓰이기는 까다로운 단어

에세이

by 희원이
삼촌 → 촌락 → 락커 → 커서 → 서산 → 산삼 → 삼촌





'커서'라는 단어는 현재 일상에서도 자주 쓰이지만, 그 쓰임새가 미묘하게 달라 어색할 때가 있다. 요즘 사람들에게 ‘커서’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컴퓨터 화면에서 깜빡이는 그 작은 표시, 즉 ‘마우스 커서’일 것이다. 커서는 이동 위치나 작업의 지점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실 ‘커서’는 라틴어로 ‘달리는 자’나 ‘실행하는 자’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삼촌들과 촌락의 단어를 잇고 나면, ‘커서’를 연결하여 컴퓨터를 들이밀기가 난감해지는 면이 있었다. 하려면야 못할 것도 없지만, 농촌에서 노동을 하다가 햄버거와 맥주를 휴식 시간에 먹으면서 노트북을 펴놓고 문서 작업을 하거나, SNS를 한다고 하자니 ‘이것 참, 어쩔 수 없이’ 어색했다.


이건 누구에게나 “내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과거에 한 후배의 애인을 술자리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가 생각난다. 술에 취한 김에 무작정 “너무 예쁘십니다”라고 몇 번이고 반복해 말했는데, 술에 취해 생각 없이 던진 이 말이 다음 날 떠오를 때마다 주책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정말로 예뻤기 때문에 놀라운 마음에 한 말이었겠지만, 취중에 이렇게나 반복했던 자신이 참 우스웠다. 주변 사람들도 나와 비슷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모두 그 후배의 애인이 예쁘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내 주책에는 모두 혀를 찼던 기억이 생생하다.

만일 이 단어가 아이유나 김고은 같은 유명 연예인을 향해 팬으로서 외쳤다면 그 상황이 무척 적절했을 것이다. 팬으로서의 찬양과 감탄의 뜻을 담아, “너무 예쁘십니다!”라고 외치는 것은 누구나 납득할 만한 표현일 테니까. 하지만 상황에 맞지 않는 자리에선, ‘커서’라는 단어는 어디론가 겉돌게 되고 만다.

같은 말이라도 상황과 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크게 달라진다는 점에서, 삼촌과 촌락과 락커 다음의 커서는 낯선 자리에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커서’라는 단어도 언제나 정확한 위치를 잡고 모니터 안에서 깜빡이며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결국 꼭 명사가 아니더라도 안 된다는 법은 없으니 선회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커서 뭐가 될래?" 하고 물을 때의 ‘커서’. 성장하고 커가는 아이들에게 미래를 묻는 질문에서나 쓰일 법한 이 커서는, ‘자라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로, 어떤 발전의 가능성을 뜻하기도 한다. ‘커서’라는 단어는 지금도 시류에 맞게 쓰이고 있지만, 맥락상 전개에도 무리가 없었다.

이렇게 두 가지 서로 다른 뜻과 위치에서 깜빡이고 있는 ‘커서’를 생각하다 보면, 마치 우리가 방심하다 보면 있어야 할 자리를 잊고는 엉뚱한 곳을 표류하다가, 자신이 어느 곳에 서 있어야 할지 모르게 되는, 그런 어정쩡한 순간처럼 느껴진다. 익숙한 위치에서 벗어나 혼란을 겪는 그 순간.

어쩌면 이런 어색함은 특정한 상황과 잘 맞아떨어질 때가 아니면, 흔히 쓰는 단어라도 쓰기 어렵게 되는 것과 그 이유가 통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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