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외국어영역
수능 시험장에 들어설 때의 공기는
팽팽했다. 시험지 배부 소리와 함께 조용한
긴장감이 내 귀를 두드렸다.
볼펜을 굳게 쥐고 심호흡을 했다.
영어 듣기 시험이 시작되자 스피커 너머로 들리는
첫 번째 음성은 낯설게
울렸다. 내 머릿속은 갑자기 하얘졌다.
‘이건 시작부터 뭔가 이상해. 왜 무슨 소리인지 잘 안 들리지?’
속으로 외치며 마음을 다잡아 보았다.
첫 문제부터 집중력이 흐트러졌다는 것을 직감했다.
한 문장을 놓친 순간, 이어지는 내용은
내 귀에서 멀어졌다. 무언가를 쫓는 기분으로
다시 따라 잡으려 했지만, 그사이 음성은 이미
다음 문제로 넘어가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내 시야가 흔들리고
손에 땀이 맺혔다.
‘제발, 다음 문제라도 제대로 들어야 해.’
애써 침착하려 했지만, 이미 듣기는 내 귀를 떠난 것 같았다.
듣기 시험이 끝나고
독해로 넘어갈 때,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남아있었다.
문제지를 넘기자 줄글로 빽빽하게 채워진 독해 지문이 내 앞에 펼쳐졌다.
전쟁터에서 적군의 군대가 눈앞에 선 것처럼 위압적이었다.
첫 번째 문단을 읽으며 이해하려 애썼지만, 단어들이
도무지 머릿속에 자리 잡히지 않았다.
한 단어, 한 문장이
나를 시험하듯 비웃었다.
단어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가시처럼 눈앞에서 반짝였고, 손가락이 종이 위에서 밀려나가며 글자를 가리켰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무겁고 두꺼운 커튼에 머릿속이 가로막혔다. 속으로는 ‘안 돼, 이러면 안 돼’라고 외쳤지만, 시선은 다음 문제로 향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했다.
글자들은 서로 엉켜 춤을 추듯 흔들렸고,
나는 문맥을 따라가려 애썼다.
“어디까지 읽었지?”라는 생각이 들면
이미 놓친 부분이 어디인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문장 속에 숨어있는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고, 읽다 보면 지엽적으로는 이해되더라도
전체가 이해되지 않아 결국에는
감으로 답을 골라야 했다.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그럴 때면
늘 성적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시계를 보니 시간이 줄어들고 있었다. 문제는 계속해서 나를 압박했다.
그 와중에 갑자기 들리는 시험 감독의 기침 소리와 창밖에서 들리는 작은 소음이 집중력을 더 흩트렸다. 누군가 내 귀에 대고 “이번엔 못 넘을 거야”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문제지를 넘겼을 때 이미 시간을 촉박해서, 미리 답안지에 컴퓨터펜으로 마킹하고 나서, 남은 문제들을 바라보았다.
남은 문제들은 이미 늦었다며 나를 조롱하는 듯했다.
“이제 10분 남았습니다.”
감독관의 목소리가 울리자
손이 떨렸다. 글씨는 점점 흐릿해졌고,
머릿속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자’는 생각과
‘이미 늦었어’라는 생각이 교차했다.
마지막 결승선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바랐지만,
결국엔 비틀거리며 맨 뒤에서 간신히 결승선을 통과하고 말 것이다.
그런 초조한 생각으로 한숨이 나왔다.
시계 초침이 심장 박동처럼 빠르게 느껴졌다. 문제의 빈칸을 마주할 때마다
그 빈칸이 불안과 무력감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 답안을 쓰고 손을 떼는 순간, 숨이 막히도록 답답했다. 머리 위로 깍짓손을 얹었고 시험지를 제출될 때
한마디로 허탈했다. 시험장을 나서면서 머릿속이 텅 빈 공간에 흩어진 먼지처럼 부유했다. 뿌연 먼지들이 햇볕에 반사되어 흩날렸다.
문을 나서며 그날의 모든 실패를 되짚었지만, 자꾸만 되짚어 보았지만,
더 이상
잡을 수 없는 것들을 붙들려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