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외국어영역
중국어는 또 어떤가. 독일어는 해보려다가 지루하고 어려워서 잘 하지 못한 것이라면, 중국어는 시절을 잘못 만나서 시도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언어였다. 고3 시절, 나는 이미 내신 성적에 대한 실망감을 안고 있었다. 학기 초 내신 성적표를 받아들었을 때, 그것은 마치 내 얼굴을 정면으로 때리는 한파 같았다. 몇 초간 멍하니 성적표를 바라보며 나는 결심했다.
‘내신을 포기하자.’
당시에는 이것이 선택과 집중의 전략처럼 보였다. 물론 결론적으로 말하면, 딴생각과 게으름에 집중했던 셈이지만, 그때의 나는 나름 현명한 전략이라 자부했다.
그때부터 내신 시험 준비는 일정에서 제외되었다. 교과서를 펴는 대신 창밖을 바라보며 미래의 막연한 자유를 상상하곤 했다. 시험 기간에 친구들이 교실 구석에서 문제집을 펴고 끙끙댈 때, 나는 책상 위에 얼굴을 묻고 다른 세상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시험이 다가오자 몇몇 친구들과 내기를 시작했다. ‘점수 덜 맞기 내기’였다. 내기의 규칙은 간단했다. 가장 낮은 점수를 맞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었다. 백지를 내면 반칙이므로, 진정한 0점은 오히려 더 어려웠다. 모든 정답을 알아야만 0점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한 답을 알아야 답을 비껴갈 수 있다는 역설!
시험지를 받아들었을 때, 중국어 시험지는 그야말로 하얗게 빛나는 성벽처럼 보였다. 나는 거의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답을 작성할 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마음속에서 “하나, 둘, 셋…”이라고 속삭이며 순진하게 일렬로 답을 적어 내려갔다. 시험지가 제출된 후, 친구들과 복도에서 만나 서로의 예상 점수를 주고받았다. 다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각자의 점수를 예상했지만, 나는 ‘이번엔 좀 괜찮게 덜 맞았겠지’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시험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나는 무려 28점을 받았다. 생각보다 훨씬 높은 점수에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내기에 참여했던 친구들 중에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고, 그 말인즉슨 내기가 끝난 순간 꼴찌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불명예스러운 1등에 주변 친구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특히 내기에 이긴 학생이 4점을 맞았다는 것을 들었을 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한 문제를 빼고 모든 정답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그가 진짜 고수였을지도 모르겠다. 4점을 맞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중국어 시험의 기억은 교묘한 역설을 남겼다. 정작 시험 문제의 답이 무엇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시험지를 채울 무의미한 답들을 줄지어 작성하고, 그 과정에서 약간의 스릴을 느끼곤 했다. 시험을 마치고 나면, 심장은 조금 빨리 뛰었고, 그 짧은 순간의 긴장감이 오히려 나를 깨웠다. 시험지 위에 무작위로 적은 답들은 마치 내신 포기 선언의 상징이었다. 그 상징은 웃음과 자조가 섞인 것이었지만, 어쨌든 28점은 기록에 남았다.
시험이 끝난 뒤, 친구들과 교실을 걸어 나갈 때면 우리는 마치 승부를 가늠하는 전사들처럼 어깨를 맞대고 지나갔다. 나는 내심 부끄러움과 자책감을 느끼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그래도 노력하지 않아서 편했다’라는 묘한 안도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시절의 중국어는 내게 언어 자체로는 큰 의미가 없었다. 그저 입시를 위해 선택과 집중을 하는 과정에서 내신을 포기했던 순간들의 기록이었을 뿐이었다.
그때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 보면, 내신을 포기하고도 안도의 미소를 짓던 나 자신이 떠오른다. 4점을 맞아 내기를 이긴 친구는 지금도 떠올리면 입 꼬리를 올리게 만든다. 어쩌면 그 친구는 내신포기파의 진정한 우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 28점으로 졌지만, 이상하게도 그 경험은 기억 속 한 페이지로 남아 있다.
※ 수능에 외국어영역이 영어만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때 중국어는 내신 시험 때에만 필요했습니다. 그러다 곧 수능에서도 제2외국어영역이 도입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