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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양 Feb 28. 2022

우린 언제부터 서로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걸까

하염없이 길을 걸었다. 공기는 쉴 새 없이 날아들고 무게를 더해 어깻죽지는 축 가라앉았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섰다. 


사람은 걸음 하지 말라는 빨간 신호가 머리 위로 깜빡거렸고 나는 그 암묵적인 동의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잠자코 있었다. 


내 옆에는 학생들로 보이는 아이들 서너 명이 무리를 지어 그들만이 아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곧 초록불이 들어왔다. 


도로를 건너려는 아이들 앞으로 차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지나갔다. 아이들이 서툰 마음에 섣불리 튀어나가기라도 했다면 차와 부딪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만큼 그 차는 멀지 않은 거리에서 위태롭게 스쳐갔다. 


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선팅된 창문에 안도 보이지 않아 나만 들리는 목소리로 작게 화를 속삭인 후 다시 걸음을 옮겼다.


집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 횡단보도에 이르렀다. 다만 이번에는 신호등이 없어 알아서 자신만의 신호에 알맞게 지나가야 하는 곳이었다. 


내 앞에는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있는 사람 한 명이 서 있었다. 


신기하게도 차들은 강아지를 보더니 멀찌감치부터 속도를 줄여 작게 움직이는 그 생명체로부터 멀찍이 멈추어 섰다. 


우린 언제부터 인간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게 된 것일까. 


우리는 언제부터 서로에 대한 기대와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사랑에 대한 가능성을 까먹게 된 것일까. 


문득 생각이 오갔다. 


단지 유해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지나치게 불신하고 먼저 손 내밀기를 주저하게 된 것은 아닐까. 


우린 언제부터 우리가 가진 따스함을 잊어버리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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