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단체전 방문하자!
누군가를 위해서 사는 인생이 나를 위해서 사는 일이라 믿어왔었다. 단순히 타인을 도울 때 행복하고 여러 복합적이지만 긍정적인 감정들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가지는 책임, 개중에는 누군가에게, 더 나아가 세상에게 도움이 되는 인생을 사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굳게 믿어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 타인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나 자신을 잊을 권리를 스스로에게 부여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세상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행위 자체에서 위안을 얻어 자신의 인생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 스스로의 상태를 점검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해왔던 시간들, 그 시간들을 복기하기 위해 최근 많은 시간을 그곳에 할애하는 중이다.
좋은 기회를 얻어 전시에 참여하게 되었다. '바람'과 '내면'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는 총 네 명의 아티스트들이 전시관 내부에 자기만의 공간을 꾸며 방문해주시는 관람객들이 본인들의 내면과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가지고 있는 생각과 고민들을 개인적인 형태로 풀어냈다.
전시를 시작하기 2주가 채 되지도 않는 시점에 전시에 참여하게 되어 영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거의 매일같이 전시관에 출근을 해 하루 종일 몸을 쓰며 작품을 만드는 일은 꽤나 행복한 행위였다. 이번 전시를 위해 나는 2017년부터 꾸준히 써온 나의 일기를 처음 펼쳐보았고, 2년 전에 작업하고 꺼내보지 않았던 그림들을 다시 재배열해 전시를 해보고, 찍어놓고 방치해두기만 했던 사진들을 직접 인화해 바닥에 깔아 두고 그 색감들을 음미했다.
이렇게 많은 작업들을 해온 내가 어찌 최근에는 한 번도 이런 곳에 시간을 쓸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 문득 의문이 들었다. 핑계 삼을 만한 것들은 여럿 있었다. 일을 하고 있었고, 뭔가 개인적인 작업을 하기에 아직 올바른 시점이 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미루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전시를 위해 다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내가 과거에 무얼 할 때 정말 진심으로 행복해했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사는 것에 큰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인 것은 맞지만 나를 위해 사는 인생을 살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나를 위해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들, 내가 한 번 주어진 이 인생 속에서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시간을 보내는 게 내가 원하는 삶이자 나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 글을 쓰고 그것들을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예술가들과 나눌 때 진정한 행복감을 느꼈다. 이번 일주일간 정말 많은 예술가들이 전시관을 새롭게 오가며 전에 없던 대화들이 줄을 이었는데, 그 과정들 가운데 나는 살아있음을 실감했다. 내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아낼 수 있는지, 그리고 세상에 얼마나 재능이 얼마나 가득한지를 보며 왠지 모르게 벅차오르고 감동적인 기분을 멈추지 않고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보니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다시 방황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지금껏 해왔던 것들에 대한 흥미를 뛰어넘을 만큼 나에게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으니 나는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하는 기로에 놓이게 된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누구와 함께 해야 할지 등의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찾기도 전이지만 이 길에 들어서게 된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값진 경험이자 많은 변화의 시작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나에게 집중한다는 것.
내가 나라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에 있어서 스스로에게 존중을 표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타인이나 세상을 위해 희생하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면 자연히 자신의 일부는 떨어져 나가고 그것들이 익숙해지면 몸집 자체가 줄어들어 나중에는 바람에라도 날아갈 만큼 가벼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나를 위해 살기로 마음먹는다. 내가 누구인지를 찾기 위한 여정을 다시금 떠나기로 한다. 지금껏 해왔던 것들을 다시 한번 상기해 그 모든 감사함 들을 품에 껴안고 새롭게 살아보기로 한다. 아무 생각도 없이 조금도 손을 멈추지 않고 써 내려가는 이 글의 무식함과 정렬되지 않는 번잡함이 지금의 내 마음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오히려 글을 열심히 쓰려했을 때보다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듯하다.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만큼 더 큰 변화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에, 나는 이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나를 묶어두는 것들을 떨쳐내며 더 큰 위험과 환경에 스스로를 던져 생존하는 방법을 터득해 인격적으로, 사회적으로 성숙함을 키워나갈 준비를 말이다. 현실에 안주하는 삶이 지쳤다고 매일같이 이야기하지만서도 막상 그것을 벗어나기에는 용기가 부족했던 스스로를 부끄럽게 생각하진 않겠다. 그러나 이런 선택들이 반복되어 나중에 손 쓸 수 없을 만큼 상황이 쉽지 않아 졌다면 그때는 지난날의 시간들을 훑어보며 후회 가득한 망상들을 할 게 분명하기에 더는 지체할 수 없다.
구체적인 계획은 적지 않겠다. 나도 내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고 이제 그 누구도 나의 선택을 방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성장시켜줄 수 있는 영혼들이 춤을 추는 곳으로 몸을 옮기겠다. 그게 어디인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에 대해 아는 바가 전무하지만 말이다. 이 모든 방황과 혼란이 다시 한번 나의 성장을 부르짖는 표시가 되어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오랜 고통이 지속된 후 드디어 스스로가 살아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찾을 수 있는 그 입구에 들어섰다는 것으로 충분하다. 내가 무엇을 할 때 즐겁고 행복한지에 대한 감을 찾았으니 이제 이 혼란마저도 나의 춤을 풍성하게 해 줄 음악이 되어줄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 이 글을 읽는다면 같은 마음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남들에게 이끌리며 그들이 무언가를 해주기만을 바라지 말고, 온전히 스스로 설 수 있다고 자부했다면 실로 그것의 결정체를 만들어냄으로써 스스로에게 증명하라. 결국 자기 스스로의 인정이 가장 필요한 우리들 아닌가. 떳떳한 사람이 되자. 진짜 떳떳함, 부끄러움 없이 자신의 인생을 살아낼 용기를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내가. 그리고 그러길 바라는 모두가.
아, 그건 그렇고. 이번 전시에 나는 그림과, 사진, 글로 참여하게 됐다. 왜 하나 제대로 안 하고 이것저것 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으나 대답은 간단하다. 그게 내가 하는 것들이고, 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것들의 기준이 무너진 시점이 도래하지 않았는가. 나는 전시관의 작은 공간을 나의 방처럼 꾸며놓을 예정이다. 책상에 스탠드를 올려 방문하는 관람객들이 직접 글을 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고, 그 주변으로는 내 그림들과 일기를 나열하여 지금껏 내가 살아왔던 과정이나 경험의 기억들을 감정적으로 관찰할 수 있도록 배치할 예정이다. 책상 위에는 관람객 분들이 방명록처럼 적어 넣을 수 있는 공책을 올려둘 예정인데, 그 공책에는 '나에게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적어주었으면 한다. 우리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전시인 만큼 전시에 방문해 단순히 작품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찬찬히 살펴보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전시관 내부에 세부적인 설명을 적어놓을 예정이다.) 덤으로 본인이 상주할 때 심심하면 치려고 피아노도 배치했으니 방문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와서 노래를 마음껏 하고 가도 좋다. 그리고 내 공간 바깥으로는 내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촬영한 일상이 담긴 사진들과 그 시리즈에 맞는 시를 전시할 예정이다. 코로나 등 여러 이슈들로 자신의 바람을 손아귀에 쥐고 자유를 계획하고 있는 모두에게 자그마한 동기의 불씨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배치해 두었다.
방문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즐거이 맞이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여러 대화들을 나눌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삶에 진심인 모두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고, 자신의 인생에 다시 한번 동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 중에 있습니다. 시간이 되시는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오셔서 여러분의 의견을 가볍게 던져주고 가셨으면 합니다. 생맥 맛집인 만큼 제가 생맥을 대접하겠습니다 :)
일시: 2021/12/06 ~ 2021/12/19
위치: 용산구 한강대로 10길 13, 카페 디쿤스트
시간: 오전 11시 ~ 오후 10시
참여 작가: 단, AEIO, 석양(me), Goyi
환영합니다.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