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 말고 내 생각을 적기 위한 대학원생의 몸부림
정책평가는 정책이 시행된 이후 더 좋은 정책으로 수정해 나가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환류 과정이다. 정책평가에서는 비용-편익, 집행 과정의 전달 체계 등 다양한 요소에 대한 분석 및 평가가 이루어 지지만 정책의 효과성(effective)을 평가하는 것을 정책평가의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볼 수 있다.
정책의 효과성 평가는 단순히 정책이 시행되었을 때와 시행되지 않았을 때의 두 상황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오직 그 정책으로 인하여 발생한 변화분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발견된 변화분의 크기에 따라 정책의 효과성을 판별하고 효과 없는 정책에 돈을 낭비하는 일을 멈추라는 피드백을 한다. 이처럼 정책평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국민의 소중한 세금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다.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해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연구자들이 서로의 생각에 대해 끊임없이 소통해 왔기 때문이다. 이는 학술대회, 포럼처럼 면대면(face-to-face) 소통일 수도 있겠으나, 선행연구와 후속연구의 관계처럼 과거와 현재의 소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거의 선행연구를 읽고 새로운 나의 의견을 덧붙이면, 다른 학자들에 의하여 비판받기도 하면서 이론이 형성된다. 이론들이 축적되어 과학 공동체의 기본적인 관점으로 정립되면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처럼 과학은 더 나은 현실을 만들기 위한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치인들에게서 이와 같은 숭고한 과학의 소통 과정을 무시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는 것이다.
외국 언론의 기사 한 줄을 달랑 인용하며 외국은 이러한데 우리나라는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며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강연을 펼친다. 과학적 근거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더 나은 답을 찾으려 노력하지 않는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그리고 자신이 할 줄 아는 대답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게 과연 그들의 주장대로 국민을 위한 일일까.
최근 미국에서는 공공기관들이 정책평가에 기반을 둔 정책 수립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법을 제정하였다. 탈리도마이드 사건을 비롯한 끔찍한 보건 재앙 속에서 미국이 국민들의 안전을 지켜낼 수 있었던 이유는 과학에 기반을 둔 정책을 수립하고 오직 정해진 원칙에 따라 집행 과정을 고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책 중 과연 정밀한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수립했다고 볼 수 있을 만한 것이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오직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정치적 성공을 위하여 이론이 빈약한 정책들이 마구 남발되는 상황이다.
사실 그들은 오래전부터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보수도 진보도 아닌 오직 과학에 기반을 둔 정책만이 진정한 국민을 위한 정책이다. 답이 있는 것을 보이지 않는 척 피하기만 하느라 국민들의 소중한 혈세는 제대로 된 쓰임새를 가져보지 못한 채 버려지고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