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잠버릇

잘자요~

by 윤밤
미세스 조는 나의 외할머니이다. 즉 우리 엄마의 엄마이다.

어렸을 때부터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을 대신해 나를 보살펴주셨다.

미세스 조와 24시간 붙어있을 일이 많았던 나는 그녀를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녀가 굽은 허리로 뒤뚱뒤뚱 걸어가는 모습, 분홍색 헤어롤로 얼마 없는 머리숱을 정성스레 마는 모습.

무엇보다도 오늘 내가 말하고 싶은 주제는 바로 그녀의 예상치 못한 '잠버릇'이다.




미세스 조의 넘치는 에너지는 놀라움의 연속이다.

우선, 목소리가 우렁차다.

어느샌가부터 들리지 않는 한쪽 귀 때문에 제 목소리를 잘 들으려다 보니

남들보다 세 배는 더 큰 목소리로 말해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세스 조는 절대로 5분 이상 가만히 앉아있는 법이 없다.

손녀딸이 소파에 빈둥거리며 70분짜리 드라마 한편을 보고 있으면

그 사이 설거지, 청소는 물론이고 우엉조림 한 통을 뚝딱 만들어내는 시대의 진정한 일꾼이다.

손녀딸은 이렇게 말한다.

"가만히 놔두면 내가 할게요."

"제발 좀 앉아있어요. 좀 쉬면서 일해요."

옆에서 아무리 말린다 해도 미세스 조는 게으른 자신의 모습을 결코 용서치 않는다.


하지만 미세스 조 역시 나이가 나이인지라

그렇게 밑도 끝도 없이 체력을 소진해 버리면 점심 때 즈음 슬슬 자신의 한계가 찾아온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취해 꾸벅꾸벅 졸다가

어느 새 방안으로 들어가 곤히 잠들어 있는 그녀를 발견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잠든 모습을 봐왔다.

MT 때면 술에 떡이 되어 잠든 동아리 사람들

친구 집에 하룻밤 신세 질 때면 내 옆에서 코를 골며 잠든 친구

쉬는 시간을 틈타 책상에 업드려 자는 동기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가 봐온 수많은 잠 자는 사람들 중에서 미세스 조는 단연코 가장 '아기처럼' 잠을 자는 사람이다.



우선 미세스 조는 다리와 엉덩이가 아파 똑바로 눕지를 못한다.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한번 크게 넘어지고 난 후엔

시시때때로 다리에 통증을 느꼈고,

피부가 약한 탓에 무더운 여름을 나다 엉덩이 사이가 짓물러 버렸다.

그래서 그녀는 제 몸집만큼 커다란 베개 두 개를 다리 사이와 등 뒤에 끼우고

옆으로 누워 잠을 청한다. 그리고 참 금방 잠에 빠진다.

미세스 조가 그렇게 옆으로 늘어져 잠을 잘 때면

나는 몰래 그녀의 방에 들어가 그녀의 얼굴을 훔쳐보곤 한다. (정말 가끔은 사진도 찍는다.)


걱정 하나 없는 갓난 아이 같은 얼굴에
덩달아 내 마음도 편해지는 느낌이 든다.


생각해보면 참 대조적이다.

우렁찬 목소리, 거침없는 몸놀림. 이렇게 대장부가 따로 없는 평소의 미세스 조는

여섯 시간 가량의 쉴 새 없는 육체노동 끝에 방으로 들어가 아기가 된다.

그리고 다시 깨어나 대장부의 삶을 살아간다.

어쩌면 미세스 조는 한낮과 한밤 온전한 아기의 모습으로만 자신의 노고를 풀어왔을지 모른다.



이청준의 소설 '가면의 꿈'에서 '명식'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불을 끄고 앉아 있으니 밤이 좋군. 대낮은 얼굴이 너무 따가워서…….

누구나 결국은 그렇게 되는 거지만 사실 사람들이 얼굴 가득히

그 엄청난 대낮의 햇빛을 스스럼없이 견디어 낼 수 있도록 잘 단련이 되고 있는 건 다행한 일이지.
하지만 그건 다행스럽다고만은 할 수가 없다면……

그런 식으로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의 가면을 든든하게 단련시켜 가고 있거든.

눈물을 흘릴 수가 없어…….



소설의 이 구절을 떠올리며

나는 어쩌면 미세스 조의 대장부 같은 모습이 삶의 고단함을 견디어 낼 수 있도록 단련된 가면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기 같은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아주 오랫동안 단련해 온 가면.



만약 정말 그렇다면 나는 미세스 조에게

이제는 정말 괜찮다고

우리 모두 당신의 아기처럼 사랑스러운 모습을 좋아한다고

당신이 살아온 방식처럼 더 이상 감추며 살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사랑해요 미세스 조
사진 몰래 몰래 많이 찍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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