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글씨

가나다라마바사

by 윤밤
미세스 조는 나의 외할머니이다. 즉 우리 엄마의 엄마이다.

어렸을 때부터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을 대신해 나를 보살펴주셨다.

미세스 조는 요리를 하다 문득, 또 빨래를 개다가 문득 어린 시절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그녀의 한탄 섞인 이야기보따리를 함께 풀고 있노라면

지독한 한글 사랑이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그녀의 삐뚤빼뚤한 '글씨'이다.



미세스 조가 태어난 곳은 일본이다.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 땅에서 일한 그녀의 아버지 때문에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대부분의 조선 사람들처럼 배를 타고 부산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배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했던 데다

설상가상으로 배에 물이 차기 시작해 죽을 고비를 겨우 넘겼다고 한다.

미세스 조를 포함한 어린아이들이 떠내려 가지 않게 하려고

배 기둥에 아이들을 묶어두었을 만큼 위급한 상황이었다.

그때 미세스 조는 귀에 물이 가득 들어간 채로 놔둘 수밖에 없었는데

이후로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한 쪽 귀가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

석 달 열흘 만에 부산항에 도착한 미세스 조와 그녀의 가족들은

즐비하게 늘어선 으리으리한 일본식 저택에 입이 떡 벌어졌다고 한다.

여기서 재밌는 건 해방 직후 집 주인인 일본인이 모두 도주해 저택이 다 빈집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기만 하면 바로 내 것이 되었다는 점이다.

미세스 조는 아직까지도 그때 좋은 집을 하나 장만해야 했다고 땅을 치며 후회한다.


빈 저택들을 뒤로 두고

미세스 조와 그녀의 가족들은 가문의 고향인 경남 하동으로 돌아갔다.

자신이 살아있노라 가족들에게 알리기 위해 말이다.

그리고 그 후 하동 땅에서 영원히 평화롭게 살 것만 같았던 그들 앞에는

6.25 전쟁이 터졌다.

그녀는 평생 학교라곤 다녀본 적이 없다.

아니, 다닐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목숨 부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공부는 무슨 공부랴.

그녀의 가족들은 당시 여느 집안이 그러했듯 집안의 장남을 위해

돈을 벌었고 집안의 모든 재산을 바쳤다.

대통령이 바뀌고 아들딸 구분 없이 배워야 한다는 방침에도

딸이 무슨 공부냐며 그녀의 아버지는 끝내 미세스 조가 학교에 가는 걸 반대했다.


그 후 강산이 네 번 정도 바뀐 뒤에야, 미세스 조는 마음 편히 한글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나는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미세스 조는 천재가 틀림없다'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오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와 나는 함께 '미운 우리 새끼'를 시청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이상민이 빚이 몇십 억 된다던데?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여튼 진짜 많아요."

그 말을 들은 미세스 조는

"이상민이 빚은 '67억'. 10년 동안이나 갚고 있댄다. 아이고."

"...???!"

평소에도 그녀는 가볍게 스쳐 지나간 가십거리도 칼같이 기억했고

숫자 하나 틀리지 않는 비상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

그녀가 십 년만 더 일찍 한글을 배웠어도 나라를 바꿨을 것이다.


늦게 배운 한글이라, 그리고 손에 힘을 주기가 어려워서

삐뚤빼뚤 못난이 한글이지만

미세스 조의 글씨는 평생에 걸쳐 숱한 고난과 반대를 물리치고 우리들 앞에 왔다.

나는 그녀의 글씨를 사랑한다.

그녀의 삶을 사랑한다.

앞으로도 그녀가 비닐봉지든 영수증이든 영양크림이든 어디든

마음껏 글씨를 휘갈기도록 지켜볼 것이다.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게.




사랑해요 미세스 조
(내 물건엔 글씨 쓰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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