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펀 페스티벌 리뷰의 리뷰
펀펀 페스티벌은 21세기 한국 사회의 모순을 그려 놓은 소설이라고 느껴졌다. 지원은 찬휘의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외적인 묘사에 있어서 그의 외모를 시각적으로 소비하고 있다. 합동 면접 후에도 찬휘와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하지 않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몇 년이 지났음에도 연락을 간간히 주고받으며 그의 부탁에 홀로 연말 송년회에도 참석하기도 한다. 한편 찬휘 또한 지원만큼 모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편곡을 할 줄 안다고 하지만 실제 악기가 아닌 컴퓨터가 있어야 한다고 말을 바꾸기도, 지원의 “쪼”는 무시하면서 정작 자신은 가사도 모른 채 송년회 무대를 누비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합동 면접이라고 하는 경쟁 구도에서 협동을 하면서도 자신만 붙어야 하는 구조적 모순을 보여주기도 한다. “펀펀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면접자들을 즐거움의 장으로 초대하지만 정작 그 안에서 진정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은 면접자들이 아닌 면접관들이다.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 누구도 즐거워하지 않았다.
이처럼 이 소설은 사회 전반에 걸쳐진 모순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원의 눈을 통해 개인의 내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면서 독자로 하여금 통쾌함을 느끼게 하기도, 네오리얼리즘에 불편함과 우울함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한편 과잉 남성 사회에 대한 고발이라는 비평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공감이 어렵다. 소설은 지원이라는 인물을 통해 여성의 시각에서 찬휘라는 남성을 바라본다. 외모 지상주의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쁜 것, 하면 안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그렇게 외치는 자신조차 습관적인 외모 소비를 하고 있음을 꼬집어준다. 남성이 여성을 시각적으로 소비하는 행태에 있어서는 사회적인 비판 여론이 강하지만 반대로 여성이 남성을 시각적으로 소비하는 행태는 쿨한 것, 멋진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여론이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지원의 눈으로 찬휘를 평가하는 행위가 남성에 대한 여성의 역차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이 소설이 과잉 남성 사회에 대한 고발이라는 비평이 유효할까 싶다.
소설을 읽은 후 나눴던 토론문들을 보면 21세기 대한민국 청년들의 고군 분투기라는 평이 대부분이다. 비평문에서 청년들을 젠더화를 한 점은 오히려 사라지고 있는 성차별 의식에 기름을 붓는 행위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취업을 준비하면서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한 상대적 박탈감, 무력감, 스스로에 대한 자조적 태도를 취하게 된다. 소설을 읽으면서도 지나치게 현실적인 면접을 간접 경험하며 좌절과 우울을 느끼기도, 지원의 행보에 연민을 느끼기도, 지원의 취업에 대신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 소설을 단순히 남성과 여성이라는 등장인물의 갈등으로 젠더화하는 것은 오히려 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성별 나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별이 아닌 성격에 집중하여 글을 읽기 때문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어쩌면 성별 이데올로기에 잠식되어가던 독자에게 따끔한 지적을 했다는 점에서 비평문이 쓸모 없거나 무가치하다는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러한 젠더 문제를 다룬 비평문을 읽음으로써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평등을 지향하고 평등 의식을 고취할 수 있게 되었음에 상당한 가치가 있는 비평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