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낳는다해서 인간이 되질 않는다.
또래에 비해 면역력이 좋은 편인 나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큰 산을 넘는 동안에도 건강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흔한 입덧이나 잔병치레도 없었고, 부푼 피부에 튼살 하나 생기질 않았으니 여기서 더 이야기하면 정말 재수 없겠다.
평온한 탓에 여유만만했던 나는 늘 그랬듯 깊은 감상에 빠지곤 했는데, 특히 과거의 실수들, 소위 말하는 흑역사를 머릿속에 진열해 놓고 자책하는 일이 잦아졌다. 아이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과정이 부모에게 정신적 진화를 요구한다는 내 무의식의 발로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진열대 속의 나는 미성숙하기 짝이 없다. 당장 며칠 전의 나부터 십수 년 전의 나까지 소환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바보 등신같이 왜 그랬는지를 끊임없이 채근한다. 미디어 속에서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사회적 성공과 훌륭한 인격을 갖춘 이들을 볼 때면, ‘나는 저 나이 때 무얼 했나’ 하는 부끄러움이 싹트곤 했으니까.
부끄러움이 욕망에 닿으면 시간의 흐름이 나를 강제로라도 ‘어른’의 자리에 데려다 놓기를 바랐다. 부모라는 이름표를 달면 당연히 사그라들 줄 알았던 감정을 마주할 때면 더 그랬다. 부푼 배 너머 불쑥 그 축축한 기억이 포개질 때면, 어른이라는 상태는 나에겐 결코 닿을 수 없는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생겼다. 멀쩡해 보이는 껍데기 안에 여전히 비루한 욕망을 갈무리하지 못한 채, 진짜이지만 가짜를, 가짜이지만 진짜를 연기해야만 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