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랜드

저 먼, 환상의 나라

by 염미정



나의 아버지는 이미 서른 살에 직원을 다섯 명 둔 소형 건축설계사무소의 소장이었다. 현재 나의 처지와 비교하자면 정말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에 놀랍기도 하지만, 당연히도 일곱 살 어린아이의 눈에 그런 건 단지 하나의 현상일 뿐이었다. 나는 초량에 위치한 아버지의 사무실에 종종 숙제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비디오게임도 하러 오가곤 했는데, 그런 나를 귀여워해 주던 삼촌, 이모. 어느샌가 그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 사라져 가던 기억이 난다. 그 무렵이 바로 IMF였다.




어제 아버지가 챗GPT에서 합성한 사진을 보내왔는데, 당신과 나의 어머니가 뉴욕 고층 빌딩에서 함께 찍은 사진 같은 것이었다. 작년에 두 분은 동생의 미국 대학원 졸업식 참석을 위해 LA에 다녀오셨고 그 이후로 미국 앓이 중이셔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기억을 더듬으니 내 유년 시절에도 아버지의 미국병은 발병해 있었더라.




아버지의 설계사무소는 설립한 지 얼마 안 돼 굵직한 사업을 여럿 맡았고 아버지는 한동안 밤낮없이 일하셨다. 그리고 늦은 밤 퇴근 후 나를 재우거나 술에 취해 나를 깨우고는 늘 하시던 말씀이 있었는데, 바로 내가 초등학생이 되면 저 멀리 미국 땅에 미키마우스가 있는 ‘디즈니랜드’에 가자는 약속. 나는 디즈니랜드가 뭐하는 곳인지도 몰랐지만 아버지 말씀으론 미키, 미니마우스가 춤추고 백설공주가 노래를 부른다고 해서 처음에는 영문도 모른채 좋다고 했다. 하지만 어린애 마음엔 꿈과 환상의 세계에 대한 묘한 기대감이 점점 싹텄고, 그때부터 디즈니랜드에 가는 일은 내가 태어나 처음 가져본 목표가 됐다.




초등학생이 돼서 “아빠, 디즈니랜드 언제 가?” 물었는데, 아버지 말이 바뀐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가잔다. 힘없이 수긍한 나는 다시 달력을 세며 3학년이 될 때를 기다렸고, 비로소 3학년이 되어 다시 “아빠, 디즈니 언제 가?” 했다. 6학년 때 가잔다. 그리고 6학년이 된 이후로는 눈치가 생겼는지 굳이 묻지 않았던 것 같다.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니 디즈니랜드는 나의 목표가 아니라 아버지의 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으로서 처음 기획했지만 실패한 대형 프로젝트. 자식처럼 여기던 사무실을 손수 정리하고 직원들의 집안 사정까지 일일이 살펴야 했을 그 심정은 과연 어땠을지. 생때같은 자식이 졸라대는 성화가 벼린 칼보다 날카롭진 않았을지. 디즈니랜드는 여전히 지키지 못한 약속으로 남았지만 그것은 실패한 여행이 아니라, 가장으로서 지켜내지 못한 꿈에 대한 아버지의 고백이었다. 미국 환상의 나라보다 훨씬 가까운, 그 시절 버거웠던 현실의 무게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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