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나라도 괜찮아?

처음 너에게

by 염미정



자녀는 어머니의 지능에 큰 영향을 받는대.

나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그거 맞는 말인 것 같아.


내 어머니는 이과생에 컴퓨터 관련과를 졸업하셨지만,

나를 낳으신 다음 그 소회에 관한 수필을

모 신문사에 제출해 등단하셨다.


그런데 30년이 지나고 보니

재미있게도 나 역시 글을 쓰고 앉아 있는 거야.

짧은 가방끈, 부족한 독서량 탓에

다룰 수 있었던 주제가 한정적이긴 해도

자전을 서술하는 방식이 재미있다는 말도 가끔 들었어.


그러니까 넌 공부 머리가 좀 안 좋을 수는 있어도

아마 EQ는 꽤 높을 거야.

미안하게 생각해, 그렇지만 너 좀 매력 있을 걸.

이런 나라도 괜찮겠어?




네가 태어나면 ‘수저론’이라는 말을 듣게 될 거야.

그러니까 부모가 입에 물려준 ‘수저’의 재질에 따라

자녀의 운명은 80% 정도 미리 정해진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거지.


네 아버지와 어머니는 평범한 직장인이니

금수저나 은수저는 기대하지 마렴.

아, 지방에서 태어나게 해서 미안하다!

동수저마저 어렵겠구나.


비록 물려줄 것이 평범한 스테인리스일지라도

검지와 약지로 젓가락질하는 법 잘 알려줄게.

이런 나라도 괜찮다면.




네가 남자 아이라고 해서 하는 말인데,

불행히도 나는 키가 작은 편이란다.

네 아버지 쪽은 유전자가 좋은 편이지만

아무래도 그 중간 어디쯤으로 넌 자라나겠지.


하지만 걱정 마,

머리 크기 하난 타고나게 작아서 비율은 괜찮을 거야.

그리고 성능 최대치를 뽑아낼 수 있게

먹고 싶은 것도 건강한 음식도 부족하지 않게 할게.

말만 해, 네 엄마 요리 솜씨가 좋거든.

그럼 괜찮겠지?




인간의 성격이라는 건 타고난 기질도 있겠지만,

성인이 되면서 겪는 경험과 환경 속에서

더 크게 완성되어 간대.

특히 만 3세까지 놓이는 환경이

아이의 마음결에 깊은 영향을 남긴다고 하더구나.


내 성격이 조금 모가 나서

어른답지 못한 모습으로 널 당황시킬 수도 있을 거야.

사실 엄마도 아직 철이 덜 들어서

너와 함께 자라 가야 하는 사람이거든.


그렇지만 다행히 네 곁에는

든든하고 멋진 아버지가 늘 울타리처럼 있어 줄 거야.

이런 아빠, 엄마가 직접 고른 사람이란 거 잊지 말아줘.




네가 살아갈 세상은 불공평하다.

때로는 잔인하다고 느껴질 만큼.

어릴 적엔 모두가 너를 귀하게 여기며 찬사 하겠지만,

사실 너는 세상 속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 중 하나야.


그렇다고 너무 쉬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

스테인리스 수저라도 힘껏 휘저으며 살아가다 보면

여전히 기쁘고 행복한 순간이 가득하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야.


늘 곁에서 등불이 되어줄 테니 우리 함께 용기를 내자.

이런 세상에서라도 괜찮다면 말이다.


화, 목 연재
이전 14화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