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글짓기
‘하루 15분, 4일 동안 부정적인 감정을
글로 썼더니 나타난 결과는…?’
제임스 W. 페니베이커 연구진이 실시한
[글을 쓰는 동안 동작에 따른 감정변화에 대한 실험]
에서 참가자들을 다음과 같이 두 그룹으로 나누고
매일 글을 쓰게 했는데,
첫 번째 그룹은
매일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글로 쓰게 하고
두 번째 그룹은
방에 대한 묘사 등 사실을 글을 쓰게 했다.
대부분 첫 번째 그룹이 두 번째 그룹보다
훨씬 더 부정적인 결과가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실험을 시작한 지 4개월 후,
첫 번째 그룹 구성원들의 정서는 개선됐고
컨디션이 나쁜 일수가 줄었다고 한다.
일시적으로는 부정적인 감정이 강해졌지만
장기적으로는 긍정적 감정이 강해졌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진은 ‘감정은 객관적으로 분석할 때
차분해지고 스스로를 잘 알게 된다.’고 답변했다.
글로서 현출 된 나의 감정을 마주할 때
비로소 치유의 길도 열리게 된다는 것이며
이처럼 부정적인 감정은
꽁꽁 숨기고 남몰래 앓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마주하고 객관적으로 느끼며
해결하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에 의해 알게 된
실험과 그 결과에 대한 내용인데
나 역시 글쓰기를 통한
치유의 경험을 하였기 때문에 상당히 공감했다.
특히 ‘할머니는 페미니스트’, ‘누드크로키’ 같은
자전적 글을 쓰며
잊고 있던 내 자격지심과 결핍을 진실되게 마주하였고
비로소 주변인들을 이해하고
지금의 나를 인정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감정적이며 솔직한 사람이다.
솔직하다는 말이 칭찬으로 느껴진 적은
태어나 단 한 번밖에 없었을 정도로
지나치게 솔직한 면모는
내 인생에 있어 장애물 같은 성정이었는데
여기에 감정적이기까지 하다면
사람들은 깜짝 놀라 도망가기 마련이다.
글을 쓰는 플랫폼을
블로그에서 브런치로 옮긴 것도 그 이유인데
블로그처럼 나에 대한 정보가 노출된 곳에서
내가 진짜 쓰고 싶은 글을 쓰게 된다면
본의 아니게 크고 작은 피해를 주고받을 것 같았다.
또 이렇게 마구 속을 내보이는 걸 보고
누군가는 나를 ‘알 수 없다’고도 했는데,
사실 나는 나를 너무 잘 알아서
더 자주 나 자신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 사람일 뿐이란
메아리를 크게 외치고 싶었다.
글을 쓰겠다는 생각이 든 역사는 길지 않지만
어쩠든 간에 글을 쓰는 건 재미있었다.
감정을 정리해서 솔직하게 기록하는 일은
나같이 평범한 사람도
세상에 궤를 두고 살아온 것처럼 느껴지게 했으니까.
그리고 당연하게도 감정이 동요할 때는
하고 싶은 말이 차고 넘쳤고
그 글쓰기를 통해 좀 차분해진 상태에서는
지금처럼 ‘키보드 벙어리’로
글 쓰는 일을 한동안 쉬기도 한다.
하지만 또 내 삶엔
스스로 예측하기 힘든 광경이 펼쳐질 것이고
이 파장은 죽기 직전까지 나를 따라다닐 것을 안다.
눈물이 아주 많던 사람이
쓸데없는 상념에 빠져 우는 일이 줄어든 시점도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시점과 맞물리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 사용법을 익혀가며
머무르지 않고 어른에 가까워진 모습이 되어가는 것이
내심 대견하다는, 조금은 쑥스러운 생각도 든다.